돌아오니 보인다 2

사랑하지 못한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

by 브라보연진아

돌아오고 나서 6개월이 지나서야
그 여행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즐거운 여행이었는데,
돌아와서는 이상하게 여독이 오래갔다.
의욕도 없었고, 사진도 보기 싫었다.
무언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몸도 마음도 가만히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그냥 그 시간 속에 내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이 흐르니까
조금씩 정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이젠 사진을 보면서
‘여기 좋았는데’, ‘정말 맛있었는데’
하고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정말 정말 유물은 많았지만,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문화의 차이라기보단,
그냥 ‘고고학’의 세계 자체가 낯설었다.
모두가 의미 있는 유물일 텐데,
내겐 그냥 예쁜 돌덩이들처럼 보였다.

설명도 거의 영어뿐이고,
그날따라 인터넷도 안 됐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건 더더욱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리가 너무 아팠다.
박물관을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다.
정말, 왜 그렇게 다리가 아픈 건지 모르겠다.

결국은 대충 돌아보고 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조금 아쉽다.


베벡 스타벅스에서 해돋이

해돋이를 보기 좋은 스타벅스가 있다고
숙소에서 알려줬다.
스타벅스 뒤쪽 테라스는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겨울이었지만 새벽 공기가 그리 춥지 않아,
야외 테라스에 앉아 해가 떠오르는 걸 지켜봤다.
해가 수면 위로 천천히 올라오는 걸 바라보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졌다.
아무 말 없이 그 장면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돌마바흐체 궁전이 보였다.
그 순간 해가 딱 그 궁전을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진짜, 그쪽 해가 유난히 크고 예뻤다.
왕이 머물던 자리라면,
당연히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을 골랐겠지.
햇살이 닿는 자리가 곧 권력의 자리였다는 걸
그 장면을 보며 실감했다.


파티흐 모스크

테오도시오스 성벽 근처였던 것 같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쯤에서 파티흐 모스크를 만났던 기억이 있다.

대 모스크나 대성당도 물론 인상 깊지만,
가끔은 동네 어귀 작은 성당이 더 마음에 들어올 때가 있다.
파티흐 모스크가 그랬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단정했다.

이 성벽과 이 작은 모스크,

여기가 도시의 ‘진짜 일상’이었구나 싶었다.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의외로 오래 마음에 남았다.


트램 타고 갈라타 타워로...

갈라타 타워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험했다.

트램을 타기 위해
그 입구를 한참이나 헤맸다.
솔직히 트램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는 건지,
도대체 이걸 타도 되는 건지조차 몰랐다.
“머지? 여긴 맞나?” 하며
지도와 표지판을 번갈아보다
결국은 감으로 움직였다.

입구를 찾고, 길을 찾아내고,
조금씩 이 도시의 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복잡하고 낯설기만 했던 길이
이제는 수수께끼처럼 흥미로워졌다.
도시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잠깐 스며들었던 느낌.

그때부터였다.
이스탄불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이스티클랄 거리

갈라타 포트에서 언덕을 올라
이스티클랄 거리로 넘어갔다.
여행의 첫날도, 마지막 날도 결국 이 거리였다.

처음엔 그저 복잡하고 낯선 거리였는데,
돌아올 때쯤 되니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들, 건물들, 붉은 트램,
그리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아잔 소리까지.

이스탄불의 거리를 걷다 보면,
오후쯤엔 어김없이 아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엔 그 구슬픈 소리가 좋았다.
어딘가 우리의 한(恨) 같은 것도 느껴졌고,
낯섦에서 오는 호감도 있었다.

하지만 여행 내내 듣자니 조금 지치기도 했다.
보는 건 피할 수 있지만
소리는 끝까지 따라왔다.


이집션바자르

이스탄불에는 대표적인 두 개의 큰 시장이 있다.
하나는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
다른 하나는 이집션 바자르(Egyptian Bazaar).
둘 다 역사도 오래되고, 규모도 크다.

그랜드 바자르는 15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에 세워진 시장으로
실크로드의 끝에 닿는 곳이라 불린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교역로가
이곳, 콘스탄티노플에서 멈췄다고 했다.

이집션 바자르는 주로 향신료 시장으로 시작되었고,
예전엔 ‘향신료 시장(Spice Bazaar)’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이집트에서 수입된 향신료가 이곳으로 들어와 팔렸기 때문에
‘이집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랜드 바자르는 미로처럼 얽힌 상점 골목과

수공예품, 카펫, 골동품, 보석, 가죽 제품들이 가득하고,

이집션 바자르는 향신료, 차, 견과류, 그리고
좀 더 ‘먹는 것들’이 중심이 되는 느낌이다.


이집션 바자르 안에는 31번 가게가 유명하다고 했다.
한국어를 아주 잘하는 분이 있고,
물건 추천도, 인심도 정말 좋다고.

그 얘기를 듣고 마지막 날, 그 가게를 찾아갔다.
장미 오일, 로쿰, 꿀, 카이막, 올리브 오일까지.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선물들을 한가득 샀다.

다양한 로쿰을 아낌없이 시식하게 해 줬고,
선택 장애가 있는 여행자들을 위해
직접 선물 박스를 골라 구성해주기도 했다.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정도, 향도, 맛도 다 이스탄불이었다.



안녕 이스탄불

이집션 바자르와 이스티클랄 거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오전엔 국지성 호우처럼 짧고 강한 비가 내렸다.
잠깐이었고, 다행히 여행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호텔에서 짐을 정리하고 나올 때
직원분들이 친절하게 도와주셨다.
원래는 이스탄불에서 남은 현금을
팁으로 두고 가려했는데,
깜빡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그게 아직도 아쉽다.

이스탄불 공항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공간도 크고, 물가도 높았다.
500ml짜리 생수랑 콜라가
8천 원에서 9천 원이라니, 뒷목을 잡을 정도였다.

여행을 같이한 친구가
알파벳 C가 튀르키예 국기처럼 보인다고 했다.
진짜 그렇게 보였다.
그 친구 덕분에 여행을 마친 지금도

이스탄불 이야기를 계속 나눌 수 있어 좋다.


내가 짜증을 낼 때도,
이건 별로라고 말할 때도
굳이 반박하지 않고
조용히 동의해 주던 친구였다.
똘똘한 이 친구 덕분에
우리는 길을 거의 잃지 않았고,
여행이 무척 수월하게 흘러갔다.



이스탄불을 걸으며

몇 번이나 이런 얘기를 했다.

“이 도시가 모스크 대신 성당의 둥근 돔이었다면,”

“미나레 대신 고딕 성당의 첨탑이었더라면,”

“카잔 소리 대신 종소리가 들렸더라면…”

아마 그랬다면,

나는 이 도시를 정말정말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넘을 수 없는 문화의 차이 때문에,

이 도시를 조금 더 가까이하는 데는

늘 마음 한편이 망설여졌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익숙해질 무렵 떠나야 했던 도시,
그 아쉬움과 망설임까지 함께 따라와 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여행은 끝났지만,
기억은 아직도 조금씩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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