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트로
새벽녘 탈린 공항은 제법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코로나를 잊은 듯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날 생각에 들떠있었다. 체크인을 마친 뒤 짐을 맡기고 의자에 앉아 활주로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 기분 좋은 나른함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난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몰려왔다.
스타트업과 혁신의 나라답게 탈린 공항에는 참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공항 곳곳의 전광판에는 세계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는 전자 영주권(e-residency) 광고와 외국인들의 에스토니아 취업 프로젝트 workinestonia에 대한 소개가 가득했다. 이탈리아에서 에스토니아로 넘어온지 벌써 5년이 되었다는 화면 속 남자는 지치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외국인들이 에스토니아에서 일하면 좋은 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VR과 스마트카 등 최첨단 디지털 디바이스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에스토니아를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한 그들 나름의 노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세 달간 이곳에 머무르면서 느낀 에스토니아의 진짜 매력은 최첨단이나 디지털 혁신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독특한 문화와 역사가 깃든 마을 풍경과 독일과 소련이라는 거대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에스토니아인들 특유의 낙천적이고 개방적인 태도와 성격이 그들의 진정한 매력이라는 것을 그들 자신은 알고 있을까?
경유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탈린은 장난감같이 작았다. 해가 떠오르면서 구름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세 달간의 특별한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도시가 그렇게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