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AGI란 한마디로 기존의 인공지능처럼 시키는 일만 하는 로봇이 아닌, 스스로 사고하고 새로운 것을 유추해내 스스로 실행할 줄 아는 인간과 같은 AI를 말합니다. 유명인사들 사이에서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AGI의 등장시점을 놓고 의견이 갈리기도 합니다. 얼마 전 NVIDIA의 CEO 젠슨 황(Jensen Huang)이 한 콘퍼런스에서 5년 안에 인간과 같은 수준의 지적능력을 가진 AGI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한 반면, 수십 년이 걸려도 결국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은 구현해 내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엔지니어와 연구자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Transformer부터 GPT 시리즈와 LLaMA 기반 모델까지 최신 기술의 세부적인 작동원리를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이 브런치북을 잘 따라오신 분들이라면 '생성형 AI는 어떻게 작동하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기술로 구현된 생성형 AI를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확률에 기반한 예측 모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방대한 양의 비정형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예측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생성형 AI의 기본 원리입니다.
생성형 AI의 결과물이 '확률에 기반한 예측'에서 나온다면, 우리 인간의 뇌는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고 지능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 뇌는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인공지능을 단순한 계산기라고 폄하할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뇌 속에는 컴퓨터와는 전혀 다른 그 어떤 신비로운 무언가가 깃들어 있기라도 한 것일까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인간은 잘 모르는 것을 신비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능의 정체를 파헤치고 이를 기계에 구현하고자 한다면 신비주의는 별로 도움이 안됩니다. 대신에 철저히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지금의 우리가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을 컴퓨터로 구현해 내려면 우선 지능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지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1. 인간의 지능이란?
뇌의 겉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신피질과 그것을 구성하는 피질 기둥 (출처 : https://github.com/max-talanov)
지능이란 무엇일까요? 컴퓨터 과학자이자 신경 과학자인 제프 호킨스는 인간의 지능을 '패턴화에 기반한 예측능력'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의 뇌에는 신피질(neocortex)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약 15만 개의 피질기둥(cortical column)이라는 기관이 존재하는데, 각각의 피질기둥들은 '세계 모형'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예측합니다. 이처럼 특정 모형을 바탕으로 패턴화 하고 예측하는 능력이 결국 지능의 핵심요소라는 주장이죠.
2. 우리 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메커니즘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매일 지나치는 출퇴근길 운전에 내비게이션을 매번 사용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한두 번 길을 헤매고 나면 우리의 뇌는 출퇴근길의 구조와 주변 풍경들을 학습하고 다음 사거리에 나타날 풍경들을 예측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우리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 매번 주의를 기울이며 걸어가지 않습니다. 몇 번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계단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어렵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다양한 감각기관들을 통해 계단의 위치를 예측해 내는 것입니다.
지능을 이야기할 때 '세계 모형'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 동안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라는 오감을 통해 다양한 자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극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인식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세계 모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현실들은 각기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향기롭게 느껴지는 냄새가 어떤 사람에게는 지독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 모형'은 개개인의 경험과 유전적 요소에 따라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색깔에서 특정 맛이나 향기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느끼는 것을 우리는 절대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세계 모형은 물리적 실체로서 세계를 특정한 패턴으로 인식하는 일종의 모형(model)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뇌의 작동 매커니즘을 배우고 나서 곧바로 철학책에서 읽었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라는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놀랍게도 고대 철학자들은 우리의 뇌가 본질적으로 갇혀있는 동굴속의 포로와 같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래의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에는 이러한 '세계 모형'에 대한 개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그 무언가는 '세계 모형'이라는 하나의 모형을 통과해 단순화된 그 무언가라는 것이지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 구속되어 벽을 마주본 사람들은 그림자만을 봐 그것을 실체라고 믿어 버리고 있다.
출처 : wikipedia
지하의 동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자. 빛으로 향한 동굴의 좁은 통로가 입구까지 달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손과 발, 목이 속박되고 있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쭉 동굴의 안쪽을 보면서, 되돌아보는 것도 할 수 없다. 입구의 아득한 위쪽에 불이 불타고 있고, 사람들을 뒤로부터 비추고 있다. 불과 사람들의 사이에 길이 있어, 길을 따라서 낮은 벽이 만들어져 있다. …… 벽을 따라서, 여러 가지 종류의 도구, 나무나 돌 등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나 동물의 상이 벽 위에 옮겨져 간다. 옮겨 가는 사람들 속에는 소리를 내는 것도 있으며, 입 다물고 있는 것도 있다.
이처럼 우리 뇌와 인공지능은 의외로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심층신경망(DNN)과 통계학에 기반한 것이든 피질 기둥에 의한 것이든 어찌 되었든 둘 다 '예측'을 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모형과 패턴화'는 사실 인간 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딥러닝 기반 모델들은 사실상 통계적 모형을 통한 패턴화를 합니다. 그리고 지도학습에 따라(supervised learning) 손실함수(loss function)를 줄이는 방향으로 학습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측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어떤면에서 인공지능과 매우 다르기도 합니다. 다음시간에는 인간과 뇌의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고 구체적으로 닮은점을 파해쳐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