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철학적 에세이에는 신의 노여움을 사 크고 무거운 돌을 끊임없이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시시포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스의 시지프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는 인간 주제에 신들의 일에 참견한 죄로 끝이 보이지 않는 무용한 노동에 처해집니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리죠.
출처 : Rock of Ages
우리는 성인이 되고 은퇴하기 전까지(혹은 죽기 전까지) 별다른 의심 없이 일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글을 쓰는 것은 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자아실현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이 역시 어쩌면 고된 노동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 합리화일지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자신의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노동만큼 가혹한 형벌은 없을지 모릅니다.
지난 시간에는 인공지능과 디스토피아를 둘러싼 흔한 오해와 진실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현재 생성형 AI의 발전 방향을 보면 인공지능은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처럼 과격한 방식이 아닌 조용하지만 잔인한 방식으로 인류의 몰락을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편이 더욱 합리적일 것입니다. 생성형 AI의 기술적 특성과 이로 인한 기술 빈부격차가 초엘리트 주의를 야기하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중시하는 인본주의를 서서히 파괴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서'에서 살펴보았듯이 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입니다. 따라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으며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공지능은 산업혁명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인 농업혁명 시절부터 이어져온 시지프의 목적 없는 고된 노동으로부터 우리 우리 인류를 해방시켜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출처 : Pixabay
아직은 이상론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인공지능이 거의 모든 업계에 도입된다면 주 2~3회 하루 2~3시간 근무도 꿈같은 일은 아니겠지요. 한 발 나아가 우리는 더 이상 한정된 파이를 두고 나누어 먹으려는 경쟁을 하는 대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당장 시작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번 시간에는 다소 이상주의적이지만 인공지능이 가져다줄 유토피아(utopia)로 여행을 떠나 봅시다.
1. 인공지능 혁명의 현주소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의 실질적인 효용성을 아직 체감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지만 세상은 이미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에 맞추어 인공지능 도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다는 조사결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펌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세계 주요 15개국에서 시행한조사결과에 따르면인공지능(AI) 기술이 많이 도입된 금융, IT, 전문 서비스 같은 업종의 지난 4년 사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인공 지능 기술 도입이 낮은 타업종보다 무려 4.8배 높았다고 합니다.
출처 : PwC
AGI의 실현 가능성과 그 시기를 둘러싼 논의에는 여전히 엔지니어들과 기업가들 사이에 많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거의 모든 직업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는 학계와 산업계 모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입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인공지능이 5년 내로 인간이 치르는 모든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현재의 생성형 AI 기술 수준을 고려했을 때 5~10년 이내에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 변호사, 의사, 회계사와 만나게 될 확률은 매우 높습니다. 초거대언어모델(LLM)의 매개변수(Parameter)가 매년 10배 이상의 규모로 커지고 있는 NLP 무어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주장입니다.
Jensen Huang Nvidia CEO(출처 : norges bank investment management)
실제로 GPT-4는 미국 변호사 시험에서 상위 10%의 성적을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OpenAI는 전문적 지식 및 추론 능력에서도 GPT-4는 “인간 수준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이번 GPT-4의 약진은 기존 GPT-3.5가 미국 모의 변호사 시험에서 하위 10%에 해당하는 성적을 기록한 반면 GPT-4는 어떤 훈련 없이도 상위 10% 성적을 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2.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
기본소득이란 모든 사회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공동체가 모든 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말합니다. 전문직을 비롯해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일자리를 대체해 버린다고 가정하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따른 기본 소득 도입 혹은 그에 상응하는 대안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함에도 여전히 뚜렷한 대책은 없는 상황입니다.
샘 알트먼 오픈 AI 최고경영자(CEO)는 암호화폐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더 이상 AI와 사람을 구분할 수 없는 AI 시대가 도래하면 홍채 정보를 통해 인간임을 인증한 이들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구상으로 ‘월드코인(World Coin)’이라는 암호화폐를 만든 것이죠. 월드코인 백서(White Paper)에 따르면 홍채 인식 기구 '오브(Orb)'를 통해 개인의 홍채를 데이터화해 블록체인에 연결하고, 실제 사람인지 확인되면 월드 ID를 생성해 기본 소득을 보장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출처 : Worldcoin foundation
그러나 월드코인은 뚜렷한 자금원이 없고 암호화폐의 시가총액에 오롯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기본 소득을 마련했다고 하기 힘듭니다. 샘 알트먼의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 현상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또한 월드코인은 수많은 스캠 코인들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으려면 그 진정성에 대한 여러 의문점들을 해결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제 각국의 기관과 정부들은 5~10년 앞으로 다가온 일자리 대체를 먼 미래의 일이 아닌 눈앞의 일로 받아들이고 관련 시스템 도입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음시간에는 E.U(유럽연합)을 비롯한 각국 규제기관들의 노력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