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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바트로스 Sep 21. 2024

파슈파티나트,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힌두교의 성지 파슈파티나트에서 죽음을 생각하다

우리는 왜 태어나고 왜 죽는 걸까?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까? 태어난 김에 그냥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쿨하게 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썩 만족스러운 답은 아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는 나에게 있어서 일생에 걸쳐 풀어야 할 숙제와도 같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분명한 이유가 있고, 살아있는 동안 이 땅 위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가 심어준 생각이라기보다는 막연하지만 본능적인 느낌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인도의 바라나시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시신을 태우는 자욱한 연기와 갠지스강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서 자신의 죄를 씻어내고자 기도를 하는 산 사람들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고 한다.


여기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도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전 세계 힌두교인들의 성지이자 메카와도 같은 파슈파티나트 사원이다. 힌두교 최고 신인 시바신의 사원인 이곳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모든 힌두교인들이 일생에 한 번쯤은 꼭 찾는 성스러운 장소라고 한다.



이곳에는 매일 수많은 망자들의 시신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화장터가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일생동안 쌓은 카르마(업)를 청산하고 무의 상태로 돌아간다. 믿거나 말거나 좋은 업을 쌓은 사람일수록 시신을 태우는데 드는 시간이 적다고 한다. 그만큼 청산해야 할 악업이 적기 때문이란다. 이곳에서 일생동안의 모든 죄를 씻어내고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한 줌의 재로 강물에 떠내려가 자연의 일부가 된다.



힌두교인들의 성지라고는 하는 이곳에는 하루종일 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의 담담한 모습이 있는가 하면, 누가 봐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들의 절규하는듯한 울부짖음도 있다.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이곳 힌두교인들에게 마치 죽음너머 그 어딘가로 향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관문과도 같다. 다소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곳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찾는 모든 이가 강 건너편에서 이들의 장례 절차를 가감 없이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사원은 현지인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도 멋진 관광지이기도 하다. 약 477년경 만들어진 이 오래된 사원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스투파(Stupa)가 많이 있다. 그 안에는 시바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링가들이 장관을 이룬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곳에서 우리를 먼저 기다리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게 될까?

그곳에는 절대자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물학적 활동이 멈춘 뒤 레코드판과 같은 우리의 뉴런에 새겨진 기억들은 모두 어떻게 될까?

이 사람들이 믿는대로 윤회가 있다면, 충분히 발달한 컴퓨터에 우리의 의식이 깃들 수 있을까?

우리는 컴퓨터 프로그램 속 메트릭스의 시뮬레이션일까?

죽으면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멀티버스의 그 어딘가로 향하게 되는 건 아닐까?


수많은 가능성을 뒤로한 채 사원을 나섰다. 다소 심각한 나의 마음상태와는 다르게 날씨는 맑기만 하다. 어쨌든 삶의 유한함을 생각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이 삶에 대한 감사와 삶의 목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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