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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호수 May 10. 2024

얼굴로 일하는 직업

인상이 험상궂을수록 잘 나가는 직업

나는 평소 인상이 좋다는 소리를 종종 들어왔다. 이 직장을 들어오기 전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내가 가진 인상이 단점이 된 적은 거의 없었다.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난 지금 '내가 잘생겼다', '인상이 좋다'고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직업을 하는 데 있어서 내가 가진 심각한 얼굴 콤플렉스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교도관은 많은 수용자들을 통제해야 하는 직업이다. 수용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눈치 백 단에 세상에 오만가지 안 경험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고단수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교도관이 그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카리스마라고 해서 옛날 군대식으로 명령하고 복종하는 그런 구시대적 리더십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농담 속에 뼈가 있고, 한 마디를 해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람 자체에서 풍겨 나오는 그런 자연스러운 카리스마를 말하는 것이다. 


똑같은 말 한마디를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때가 있다. 

"조용히 안 해?"

이 말을 마동석이 한다고 생각해 보라. 당연히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겁을 먹겠지. 그것은 본능적인 것이다. 마동석처럼 인상이 세 보이고 온몸이 근육질인 사람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조건 반사적으로 눈을 깔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하지만 저 말을 인상이 한없이 착하고 약해 보이는 누군가가 한다면 말이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도리어 만만하게 보여 듣는 사람의 반발심만 사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사람은 외모로만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지만 외모도 분명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이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왜 뷰티산업이 그렇게 발달했고, 헬스장에는 너도 나도 몸을 만들려는 사람으로 북적이겠는가? 태초부터 인간이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은 본능적인 것이다. 


외모. 특히 험상궂고 드세 보이는 인상은 교도관 생활을 하는 데 가장 큰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선하고 좋은 인상과 어려 보이는 외모는 이곳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일반적인 사회에서의 기준과는 정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교도관 생활을 하는 동안 정말 부러운 사람이 한 분 계셨다. 그 계장님을 처음 뵀을 때 나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분이실 거라고 생각했다. 말을 붙이기도 힘들 정도로 인상이 무뚝뚝해 보이셨다. 말 수가 없으실뿐더러 그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어 무서운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실제로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다. 동료 직원들이나 수용자들 모두 그 계장님을 무서워했다. 이것저것 난리를 치고 요구사항이 많던 수용자들도 그 계장님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할 정도로 그 계장님께서 가진 얼굴의 힘은 강력했다. 다른 직원들이 여러 마디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그 계장님은 카리스마 있는 단 몇 마디로 해결하는 것을 볼 때 정말 저 계장님은 '얼굴로 일하시는구나'라는 말을 실감했다. 


나중에 회식자리에서 그 오해가 풀렸다. 처음에 인상이 무서워서 말도 걸기 힘들었다고 고백하니 그분은 '그거 다 컨셉'이라고 하셨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잘 웃으시고 유머감각도 있으셨다. 오히려 반전 매력이 있으신 분이셨다. 아무튼 계장님께서 가진 타고난 외모조건은 교도관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와 반대로 나는 교도관을 하기에 불리한 외모조건을 타고났다. 교도관이 아닌 다른 일을 했으면 상관없었겠지만 내가 교도관이 된 이상 이러한 외모를 가졌다는 것은 콤플렉스를 하나 가지고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를 어리고 만만하게 보는 수용자들도 꽤 있어 나를 힘들게 할 때, 나는 '교도관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나는 이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다. 그렇게 매너리즘과 슬럼프에 빠져 교도관이라는 직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타고난 얼굴과 인상은 바꿀 수 없는 거야. 

교도관으로서 일하는데 내 외모가 콤플렉스로 작용하지 않도록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건설적인 생각 아닐까?"

 

얼굴이 꼭 험상궂지 않아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에게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만만하게 대하지 못한다. 실제로 다양한 유형의 교도관들이 각자만의 스타일로 수용자들을 대하며 근무하고 있다. 꼭 얼굴이 아니더라도 각자만의 무기로 수용자들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얼굴로 일하시는 그 계장님이 너무나도 부럽지만 나는 나만이 가진 다른 무기로 승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꾸준히 운동도 해서 몸도 키워야겠다. 얼굴을 바꿀 순 없지만 운동으로 몸은 충분히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다 보면 자연스레 수용자를 대할 때 자신감이 붙고 그 기세가 충분히 내 단점을 커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해 놓고 몇 주째 헬스장을 가지 않고 있는 나 자신.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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