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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호수 May 07. 2024

간질과의 사투

어느 무덥고 한가한 주말 오후 발생한 일

어느 유난히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이 날은 주말이기도 했다.

주말은 평소보다 한가로운 날이기에 다들 여유로운 마음으로 퇴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늘 집에 가면 삼겹살을 구워 먹어야지'

'아니다. 집에 가면 에어컨을 만땅 틀어넣고 찬 물로 샤워부터 해야지'

별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그때,


"띵~동"

비상벨이 울렸다.

이윽고 TRS(무전기)로 상황이 전파되었다.

"2수용동 하층 5실에 환자 발생. 286번 이XX 수용자 간질증세로 발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즉시 지원 바랍니다."

"젠장. 오늘따라 한가롭더라니... 퇴근 직전에 이게 무슨 일이람"

짜증 섞인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평소에도 간질환자의 발작은 종종 있는 일이라 직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의 경우는 뭔가 심상치 않은 듯했다.

간질은 발작증세가 있고 난 후 몇 분이면 증세가 대부분 호전되지만 오늘은 발작증세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TRS로 후속상황이 전파되었다.

"286번 이XX 수용자 간질증세가 멈추지 않고 증세가 심각하여 외부병원으로 즉시 이송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발작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간질 수용자의 생명이 위독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즉시 병원으로 이송하여 외부진료를 봐야 한다는 판단이 내려진 듯했다.


평생 살면서 간질환자는 본 적이 없었기에 발작을 일으키는 수용자를 마주한 순간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온몸이 빳빳하게 굳은 상태로 눈의 초점을 잃은 채 발작을 하고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 발작이 이미 수십 분 간 지속되고 있는 상태였다. 당직 의료과 직원분 말씀에 의하면 제 때 처치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직원들로 급히 외부진료팀이 꾸려져 근방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아 죄송한데 어쩌죠. 저희 병원은 간질환자 처치있는 장비가 없어서 도시에 병원으로 가보셔야 같습니다."


첫 번째로 간 병원은 앰뷸런스로 10분 정도 거리의 가까운 병원이었으나 미비한 의료시설로 인해 1시간이나 더 걸리는 대도시의 병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더 큰 병원으로 차를 돌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매우 무더웠기 때문에 차 안은 이미 찜통이었고, 에어컨을 가동해도 땀이 쏟아졌다. 간질 수용자는 지속적으로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고정시키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우리 직원들은 이동하는 내내 팔다리로 이 수용자의 몸을 최대한 부여잡고 발작으로 인한 충돌을 방지했다. 발작으로 인한 힘이 어찌나 세었는지 건장한 직원 두세 명이 잡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발작으로 인해 몸이 밀려나고 머리를 부딪칠 뻔한 것을 간신히 막으면서 1시간 동안 악전고투를 벌였다. 위급상황이었기 때문에 앰뷸런스는 가속페달을 밟아 빠르게 출동 중이었고 가뜩이나 멀미가 심한 내겐 무척 고역이었다. 당장이라도 뛰쳐 내리고 싶은 충동이 가득한 이 와중에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올라왔다. 설상가상으로 간질 수용자가 무의식 중에 변을 본 것이다. 그 더운 찜통 같은 앰뷸런스 안에 땀이 뒤범벅된 상태로 똥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그 현장의 상황이란... 나는 멀미증세가 더욱 심각해졌다. 예전에 군대에서 무더운 여름날 이등병 때 전차를 타고 훈련에 참가하면서 생겼던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듯하여 잠시 정신을 잃을 뻔했다. 앰뷸런스로 이동하던 그 1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1시간이었다.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하여 차 문을 열고 간질 수용자를 응급실로 후송했다. 땀이 범벅이 되고 멀미가 심하여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응급실 내에서 대기해야 했다. 수용자를 홀로 놔두고 교도관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응급실로 옮겨진 수용자는 증세가 약간 호전된 듯하였지만 여전히 발작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주말에 휴무로 쉬고 계시던 직원들이 급하게 연락을 받고 입원근무조로 투입되었다. 어느 공무원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비상상황에는 휴일도 없다.


교도소로 복귀하고 퇴근한 뒤 나는 무작정 사우나로 달려갔다. 오늘은 교도관 생활을 하면서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날이었다. 거울 속에는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한 남자가 눈의 초점을 잃은 채 초췌한 모습으로 거울을 응시하고 있었다. 옷은 땀에 절어있고 차 안의 꼬릿한 냄새도 배인 듯하다. 목욕탕 안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며 긴장도 내려놓고 땀과 냄새를 깨끗이 씻어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돌아와 한결 개운한 마음으로 잠을 청다. 하지만 오늘의 기억은 좀 오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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