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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밀라 Feb 06. 2024

나는 유치원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늘 7시 20분.

저녁을 먹으면 8시.

딱히 하는 것도 없이 어영부영하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9시가 훌쩍 넘는 게 나의 일상.


아이를 재우고 싶은 시간은 늦어도 9시 반인데, 엄마와 함께 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아이는 9시 반이면 한창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6시 반일 땐 아이랑 할 일 조금 하면서 이가 매일 해야 하는 것을 다 하고 패드 보여주고, 아이랑 놀아주고서 9시 반에는 잘 수 있었는데 퇴근시간이 근 한 시간이 늘어나니 취침시간도 자연스레 한 시간이 늘어나버렸다.






현실 저녁 시간


6시 30분 아이가 집 도착 - 아빠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는 혼자 논다

7시 20분 내가 집에 도착 - 저녁식사 시작

8시 아이랑 놀기 (윙크 오늘의 학습, 윙크 학습지 풀기, 패드보기, 장난감 가지고 놀기 등)

9시 30분 샤워 

10시 침대에서 책 읽기

10시 20분 - 11시 아이는 꿈나라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저녁 시간


6시 30분 아이가 집 도착 후 아이랑 아빠랑 저녁 먹기

7시 20분 내가 집에 도착 - 씻고 옷 갈아입기

7시 30분 아이랑 놀기 (윙크 오늘의 학습, 윙크 학습지 풀기, 패드보기, 장난감 가지고 놀기 등)

8시 30분 샤워 

9시 침대에서 책 읽기

9시 30분 - 10시 아이는 꿈나라







이상과 현실의 이 큰 괴리감. 이를 어찌할 것인가.


아이의 저녁루틴을 소화하자니 아이가 잠에 드는 시간이 늦어지고, 그렇다고 하지 않고 재우자니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없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먹은 대로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속 시끄러운 나날들로 힘겨운 중에 아이가 윙크 학습지를 울면서 푸는 일이 생겼다.

우리 집에는 티비가 없다.


대신 티비의 대체제로 패드로 내가 승인한 콘텐츠들만 보여주는 튜브 키즈를 볼 수 있게 해 주는데 이 패드를 보려면 아이는 그날 자기가 해야 할 학습분량을 다 끝내야만 할 수 있다.


(매일 아이가 하는 분량: 윙크 기기 속 오늘의 학습, 한글 3장, 한글 쓰기 1 단어 3번, 수학 3장, 덧셈 연산 1페이지, 영어 워크북 1장, 알파벳 쓰기 2줄)


눈물 사건의 발단은 아이가 앉아서 집중하지 않고 한 문제 풀고 다른 행동을 하고, 딴 이야기를 하고 놀다가 다시 또 하나 풀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엔 좋게 타일렀다.

"대박아, 집중하자. 집중하면 금방 끝나는 건데 대박이가 집중을 안 해서 계속 늘어지고 있네."

"대박아, 이건 무엇일까? 한번 해볼까?"


그러나 아이는 말을 듣지 않았고, 여전히 딴짓을 했으며, 내 말은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 중.

그 모습을 보다 보다 화가 난 나는 그만하라고 이야기했다.


"대박아. 윙크하기 싫으면 그만해. 집중 안 하고 딴짓하는데 그냥 이거 그만해. 이제 잘 시간이야. 그만하고 자자."

"아니에요, 할 거예요."

"알겠어. 그럼 집중해서 해."


아이가 한다고 해서 참았다.

그리고 하기를 기다리며 앞에서 함께 한글을 쓰고 있었는데 여전히 다른 행동을 하는 대박이.

집중하면 금방 끝나는 건데 딴짓하면서 안 하는 대박이에게 짜증이 났고, 지금 자야 할 시간인데 이러고 있는 것도 화가 났고, 내일 늦게 일어날 것이 뻔해서 열받고. 


속에 화가 잔뜩 들어찬 나는 아이가 쓰고 있는 한글 쓰기 책을 덮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나름 화를 가라앉히고 아이에게 말한다고 했지만 어조와 말투, 그리고 표정에서 짜증이 잔뜩 묻어나지 않았을까.


"그만, 엄마는 기회를 줬어. 근데 집중 안 한 친구는 누구지? 이제 그만 자자. 시간이 많이 늦었어."

내가 이렇게 행동하며 말하자 바로 눈물을 터트리는 대박이.

"아니에요, 주세요. 집중할게요."


아이가 덮은 책을 펴고 연필을 잡고서 다시 쓰기 시작하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왜 저렇게 애를 울리면서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애가 울면서 한글을 쓰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난 아이의 눈을 보며 다시 말했다.


"대박아, 엄마는 네가 울면서 할 거면 이거 안 해도 돼. 이건 울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거야. 그러니 울면서 할 거면 차라리 하지 마."

"(울면서) 아니에요, 죄송해요. 저 안 울 거예요. 안 울고 이거 할 거예요."

"이건 엄마에게 죄송할 일이 아니야. 네가 계속 울면서 하잖아. 울면서 할 거면 그만하고 자자."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면서) 엄마 죄송해요. 저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그 모습을 보는데 계속하겠다는 애한테 운다고 그만하라는 소리도 못하겠고 하게 두었다.

근데 참 드는 생각이 '아. 이거 진짜 못할 짓이다.'라는 마음.

저게 뭐라고 저렇게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빌어가며 계속하겠다는 걸까.

복잡한 마음으로 그냥 두었는데 계속 울면서 하는 아이.


진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책을 뺏으며 말했다.

"대박아, 그만해. 자자."

"(울면서) 아아악!! 책 주세요!!!"

책을 빼앗긴 아이는 소리를 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책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만. 잘 시간이 지났어.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자야 해."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광분하는 모습에 놀랐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이는 크게 소리치며 말했다.

"나는 유치원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대박이 말은 오늘 할 일을 다 하고서 자겠다는 거야?"

"네, 다 하고 잘 거예요. 패드도 볼 거예요."


오늘 할 일을 다 하고 자겠다는 대박이.

패드를 보겠다는 의지인 건지, 진짜 해야 할 걸 안 하면 못 잔다는 건지. 

여하튼 자신이 할 일은 포기하지 않고 다 하겠다는 대박이의 의지 표현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그래 좋아. 그럼 진짜 집중해서 하자. 그리고 오늘 할 일을 다 끝내자. 다만 시간이 늦었으니 패드는 두 개만 보고 자는 거야. 알겠지?"

"네, 엄마. 그렇게 할게요."


책을 돌려주자 아이는 화를 가라앉혔고 끝내 앉아서 오늘의 할 몫을 끝냈다.


"엄마, 이제 패드 보여주세요."

"응, 하지만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두 개만 보고 바로 끄는 거야."

"네, 엄마."


결국, 대박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고 다 해낸 뒤 패드를 보았다.

약속대로 두 개를 보고는 침대에 올라와서 내가 읽어주는 책 이야기를 들어며 잠이 들었다.




아이 놀이 공부하다 - Pixabay의 무료 사진 - Pixabay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는데 마음이 참 복잡 미묘했다.


아이가 잠잘 시간이 훨씬 지났다.

이때 아이가 잠을 자는 게 중요하니 하는 것을 모두 그만두게 시키고 잠을 재울 것인가.

아니면 하고 있는 것을 다 하게 한 뒤 잠을 재울 것인가.


이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잠자는 시간을 지키기를 원했으나, 아이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패드를 본 뒤 잠을 잘 것을 선택했다.


그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고, 나는 아이에게 시간이 늦었으니 자야 한다고 설득했으나,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자야 한다는 아이의 말에 내가 설득당했다.


자신이 왜 이걸 하겠다고 하는지 나에게 의견을 이야기했는데 그 순간 내가 "엄마말이 먼저야, 내 말이 법이야, 이렇게 해야 해."하고 아이에게 강요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강요하다 보면 아이가 더 이상 나에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고, 나중엔 스스로 뭔가를 하겠다는 의지조차 사라질 것 같아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이번엔 아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내가 이렇게 한발 물러서니 아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집중해서 끝냈고, 할 일을 끝낸 뒤 패드 두 개만 본다는 약속도 정확하게 지켜주었다.


비록 일찍 잠들지는 못했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얻은 최선의 결과물이 아니었나 싶다.


앞으로 이런 나날들이 늘어가겠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너의 마음과 의지를 존중해 주고, 나의 마음과 의지도 너에게 존중받을 수 있기를.


오늘도 너와 함께해서 행복했어, 대박아.





* 커버 이미지 : 포기하지 않는 동기 부여 글쓰기 - Pixabay의 무료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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