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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정 Dec 05. 2020

달리기 수업을 종료합니다

런데이 8주 코스를 완료했다

'코로나만 지나가면...'을 주문처럼 외우며 1년이 지났다. 회원권을 끊은 필라테스 스튜디오에는 거의 나갈 수 없었고, 다른 실내 운동도 엄두를 못 냈다. 어쩌다 보니 '혼자 야외에서 달리기'가 시대가 허락하는 유일한 운동처럼 느껴졌다. 꾸준히 달리고, 달렸다. 달린 날은 인스타그램에 인증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어제, 마침내 런데이 어플의 러닝 훈련 프로그램 30분 달리기 훈련 8주 코스를 완료했다.


8주 코스를 끝내는 데는 8주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제는 런데이 어플을 설치하고 달리기를 시작한 지 473일 차가 되는 날이다. 작년 8월, 런데이 어플로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1년도 더 넘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8주 코스를 마무리 한 셈이다. 런데이 선생님의 원칙은 1) 일주일에 3일은 달려야 한다  2) 3일을 달리지 못하면 전주 코스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한다 여서 끝없이 전주 코스로 돌아가다 보니... 8주 코스를 멀리도 왔다. 여전히 일주일에 3일을 뛰는 건 무리지만, 전주로 돌아가지 않아도 훈련을 따라잡을 수 있는 체력이 되어 점점 주차를 늘려갔다. 그리고 어제, 마침내 8주 코스를 완료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달리기 코스, 해운대


런데이 8주 코스를 하루 남기고 나서는, 어서 빨리 뛰어서 마무리를 짓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생리통으로 이틀 정도 진통제를 먹으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달리기를 시작할 수 없었다. 생리로 컨디션에 지장을 받지 않는 삶은 어떤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위인 김연아 선수를 생각했다. 김연아 선수는 이렇게 생각할 시간에 한번 더 달리지 않았을까? 생각하지 말고, 뛰자. 생리통이 낫자마자 어제, 8주 차의 마지막 코스를 시작했다. 선생님과의 마지막 날, 항상 뛰면서 듣던 음악을 듣지 않기로 했다. 선생님의 마지막 잔소리와 응원만 집중해서 들어야지. 마음을 먹고 선생님 목소리에만 집중하는데, 선생님이 뜻밖의 말을 한다. 오늘은 자기가 거의 말을 하지 않을 거고, 음악도 듣지 말라고. 오직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느껴보라고. 이럴 수가... 선생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서운했다. 선생님 말대로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느껴보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내가 달리는 코스는 4차선 도로 옆이라 자동차 소리만 가득했다.


런데이 8주 코스의 목표는 단 하나,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이다. 속도가 어쨌든 나만의 속도로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면 된다. 처음 1분, 2분을 뛰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길이의 달리기다. 30분 달리기가 끝난 후, 선생님이 그동안 달렸던 나를 칭찬하고 다독이는데 눈물이 글썽해졌다. 안돼, 여기서 울 순 없어... 난 울지 않기 위해 선생님이 이 응원의 말을 소파에 누워서 녹음하고 있는 장면을 억지로 상상했다. (아마 그렇지 않으셨을 테지만...) "위대한 러너의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말로 8주 코스가 끝났다. 다시 울컥한다. 선생님이 나한테 위대한 러너라고 하셨어...


달리기를 시작하고 달라진 신체의 변화를 기록한 글들을 자주 봤다. 살이 빠지고 몸이 탄탄해졌다거나, 더 이상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거나... 나는 살이 빠지진 않았고(오히려 조금 더 쪘다), 여전히 몸은 쉽게 피로하다. 그래도 4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얻은 게 있다면 성취감이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게 올해의 가장 큰 성과'라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 2020년의 말미에 얻은 가장 큰 성취다. 이제 정말 자신 있게 나를 '러너'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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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_jun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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