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EJ. 올해 5월 당신에게 편지를 쓰듯 적어 내려간 터키의 생과일주스 이야기 이후로 한참 동안이나 글을 쓰지 못했어요. 그러다 얼마 전 당신의 연락이 거의 오 개월 만에 나를 다시 책상 앞에 앉혔군요.
이스탄불로 곧 휴가를 간다고요. 짧은 일정 탓에 터키가 아니라 '이스탄불'로 가는 휴가인 건 아쉽지만 단연코 이스탄불은 다시 당신을 터키로 이끌 완벽한 첫 여행지가 될 거예요. 터키에 아예 가보지 않은 이들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고들 하거든요.
사실 나도 터키에서 돌아온 지 고작 이주가 지났어요. 예년과 다름없이 체코의 이른 가을을 피해 터키로 도망을 갔었죠. 작년엔 판데믹으로 발이 묶였던 탓에 이 년만에 돌아가게 된 터키였는데 한적해진 관광지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모습이란..! 그리웠던 그곳은 동시에 생경함을 내게 안겨주었답니다.
이제 이스탄불은 내게 눈 감고도 걸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곳인데 나는 매번 그 익숙한 골목들 속에서 새로움과 변화를 발견하고는 해요. 비록 올해는 자주 가던 가게들이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는 슬픈 변화들로 인해 많이 낙담하긴 했지만요.
서글픈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고, 얼마 남지 않은 당신의 여행을 위해 가벼운 디저트 이야기로 맛있는 터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려고 해요. 혹시 바클라바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EJ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에도 터키 이민자들이 적지 않으니 필시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거예요.
반대편이 보일 정도로 얇디얇은 반죽을 40번 이상 겹쳐 올려 만드는 바클라바는 첫 만남이 아주 중요한 디저트예요. 정직하리만치 단맛 때문에 첫 한 입에 완전히 질려버릴 수도 있거든요. 자칫했다간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달콤함으로 기억되는 거죠.
그러니 그대의 첫(!) 이스탄불 여행에서 만날 첫 바클라바가 실망스럽지 않도록, 자신 있게 한 군데를 추천하려고 해요.
갈라타 다리 끝 카라쿄이에 위치한 카라쿄이 귤루올루(Karaköy Güllüoğlu) 라는 곳이랍니다. 사실 이 가게는 검색 몇 번이면 찾을 수 있는 아주 유명한 곳인데, 들리는 소문엔 이 바클라바를 먹기 위해 매주마다 비서를 이스탄불로 심부름을 보내 조달하는 중동의 부호도 있대요.
따로 지점을 만들지 않고 오로지 카라쿄이 본점에서만 판매하는 그들의 경영 철학 때문이죠.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 있는 모두가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것은 분명해요.
가게에 들어가서 주문을 할 때 일하시는 아저씨들의 이름표를 한 번 자세히 보세요. 누군가는 이름 위에 하나의 별을, 또 누군가는 세 개, 네 개의 별이 있을 거예요. 10년에 별 하나, 바로 그곳에서 근무한 햇수를 뜻해요. 제가 만나 중에 가장 오래 근무한 아저씨는 무려 다섯 개의 별을 가지고 있었고요. 가게에 들어가 진열장 너머의 아저씨들 중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면 이제 주문을 할 시간이에요. 한 조각, 두 조각씩도 주문이 가능하니 부담 없이 아저씨에게 원하는 바클라바의 이름과 개수를 이야기하면 된답니다.
너무 종류가 많아 그만 길을 잃고 만다면 여기 제가 추천하는 몇 가지를 한 번 시도해보세요. 그중 첫 번째는 수틀루 뉘리예(Sütlü Nuriye)예요. 달달한 설탕 시럽 대신 우유를 끼얹은 수틀루 뉘리예는 일반 바클라바에 비해 찾기가 어려운데, 제가 맛본 것 중에서는 단연 귤루올루의 수틀루 뉘리예가 가장 맛있었거든요.
그리고 피스타치오 쇼비엣(Fıstıklı Şöbiyet)도 한 조각 담아보세요. 일반 바클라바보다 피스타치오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아주 고소한 맛이 일품이에요. 보통 바클라바 사이에는 호두나 피스타치오를 넣는데, 호두를 좋아한다면 클래식한 호두 바클라바(Cevizli Baklava)를 대신 선택해도 좋아요.
마지막으로 요즘 아주 핫한 바클라바가 있어요. 소욱 바클라바(soğuk baklava)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차가운 바클라바라는 뜻이에요. 우유에 적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차갑게 먹는 이 바클라바가 유행인 줄도 모르고 주문했을 뿐인데 터키 친구들이 이건 또 어찌 알고 먹어봤냐며 신기해하더라고요. 바클라바에도 유행이 있구나, 처음 알았지 뭐예요.
달콤한 바클라바 위에 초콜렛과 피스타치오 가루, 그리고 우유를 적시다니. 솔직히 맛이 없을 수가 없네요.
바삭한 결이 부서지며 기존의 바클라바와는 달리 소욱 바클라바는 촉촉하고 차가운 첫인상을 선사해요. 클래식한 바클라바에 익숙하던 저는 주문을 할 때만 해도 당최 그 맛을 상상조차 하기가 어려웠지요. 그런데 한 입 먹고 나니 식문화에 있어서만큼은 큰 유행 없이 클래식으로 가득 찬 터키에서 왜 이 녀석이 '유행'이 되었는지 알겠더라고요. 가게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발 이 바클라바를 맛봐달라고 소리치고 싶은 정도였달까요.
그러니 당신의 첫 바클라바로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건 없을 것 같아요. 178년간 클래식한 바클라바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곳에서 맛보는 2021년 유행 아이템. 어때요?
가게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에는 포장을 위한 주문 코너예요. 먹고 가려면 바로 정면에 보이는 이 사진 속 코너에서 주문을 하면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