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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Nov 01. 2023

이국적인 가을

가장 익숙한 곳에서 느끼는 새로움이란



이 년 하고도 반년만에 한국으로 휴가를 왔다. 어린 시절부터 쭉 살아온 고향의 모습은 매년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꼭 하나쯤은 바뀌어 있어 놀라고는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익숙한 건물들과 익숙한 그 풍경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지만 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갈 때면 매일 보이던 낮은 동산이 사라져 있었다. 또 아파트 짓겠다고 그런 거지 뭐. 놀란 내게 동생은 이골이 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체코에서부터 바리바리 싸 온 짐을 풀었다. 자주 와봤자 일 년에 한 번이 고작인지라 내 방이 따로 있는 건 아니어서 동생 방에서 비어있는 공간 사이사이에 요령껏 내 물건을 두었다. 내 물건들을 두고 나니 그 방의 절반은 내 공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0월의 끝자락이었다. 한국의 가을이 대체 얼마만인지,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보낸 가을이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코로나와 이런저런 일들로 호되게 가을을 탔던 지난 해들과 비교하면 올해는 다시 일로 바빠진 일상 덕에 꽤나 덤덤한 10월을 보낼 수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만큼 진실된 격언이 또 있을까. 결국 이번에도 시간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시간이 해결하게 둘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는지 아니면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있는 곳이 남쪽 지역 이어서일까. 11월이 코 앞인데도 한낮에는 반팔 하나만 입어도 될 정도로 날씨가 화창했다. 저녁엔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게 마치 체코의 8월 끝자락 같이 사랑스러운 날씨였다. 언젠가부터 한국과 유럽을 오갈 때마다 일주일 정도는 시차적응을 하느라 고생을 했는데 이게 바로 나이 때문인가 싶어 진다.


새벽 세시가 꼬박 넘도록 깨어있다가 정오가 되도록 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시간을 하루라도 줄여보고자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엄마가 가게를 닫으시는 시간에 맞춰 뛰어서 가게에 가 함께 집으로 걸어오면 딱일 것 같았다.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를 지났다. 8살부터 다니던 피아노 학원이 있던 자리와 내 기억이 존재하던 시절부터 엄마와 손잡고 다녔던 동네 시장도 지났다. 쭉 뻗은 대로를 따라 뛰고 또 걸었다. 가족 친구 연인. 내 기억 속 많은 사람들과 수천수만번은 걸었던 길이다.


이 킬로쯤 달렸을까. 새콤하면서도 강렬한 향기가 선선한 공기 속에 홀로 뜨겁게 실려왔다. 생경한 와중에 익숙한 향기인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은목서 나무가 보인다. 학창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꽃나무다.


이맘때쯤의 체코에선 러닝을 할 때면 어렴풋한 겨울 냄새와 흠뻑 젖은 풀냄새가 차가운 공기를 가득 채우는데 겨울을 코앞에 두고서 꽃향기를 맡을 수 있다 너무 이국적이다. 그 순간  단어와 공간의 조합이 생경하면서도 재밌다. 나의 유년과 청소년기를 꼬박 보낸 곳에서 '이국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줄이야. 갑자기 익숙했던 이 공간이 새롭게 느껴진다. 내년 가을이 오면 나는 아마도 올해 고향 땅에서 맡았던 이국적인 그날의 가을밤 냄새를 기억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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