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왔습니다, 둘이 왔습니다, 셋이 왔습니다' 미션#2
여자 셋의 이야기입니다. 스무살에 처음 만난 여자 대학생 세 명의 15년 뒤, 그때는 같았지만 지금은 달라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입학과 동시에 거의 매일을 붙어다녔던 술친구 셋은 이제 누군가(편)는 혼자, 누군가(욜)는 1.5인 가구의 느낌으로, 누군가(뉠)는 빼박 3인 가족을 꾸렸습니다. 여전히 만나 함께 술을 마시지만 한 개의 주제, 각기 다른 세 명의 삶을 소주 한 병의 시간에 담기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세 명의 카톡방에서 누군가가 던진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각의 시선으로 끄적끄적 적습니다. 혼둘셋의 프롤로그 보러가기
(편)
지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한때는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시기가 있었다. 의미 없이 새벽 4시, 5시까지 멍하니 채널을 돌리고 있던 그 시기. TV가 나를 망치는 것 같아서 브라운관 앞면에 시청 금지를 뜻하는 잡다한 사진들을 잔뜩 붙여놨던 그 시기.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TV는 나에게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보고 싶은 드라마나 방송은 인터넷에서 다시보기를 하면 됐고, TV보다도 노트북이, 노트북보다도 스마트폰이 더 편했다. 나는 언제나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하는데 8할 이상의 이유가 '영상'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보니까. 하지만 지난달 이사를 하면서 5만원 관리비에 유선 TV가 포함되어 있고, 친오빠가 버린다고 했던 TV 겸용 모니터를 받아온 게 있어서 다시 TV를 보기 시작했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아무 생각 없이 TV를 튼다. 그냥 뭐라도 사람 목소리가 나는 게, 그래도 좀 낫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직은 식사를 하거나 마음에 드는 드라마 본방사수 용 정도로 보고 있는데, 점점 더 의미 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날까 솔직히 조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멍하니 바라보고는 있지만 TV에서는 결코 사람의 온기는 느낄 수 없으니 말이다.
(뉠)
남편과 내가 사는 집엔 TV가 필수이자 신적인 존재였다. 눈을 뜨면 거실에서 둘 중 한 명이 켜놓은 TV소리가 들렸고,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나가 TV 앞에 함께 앉았다. 점심 먹고 다시 앉아서 TV를 보다가, 다시 저녁 시간이 되면 저녁 먹으면서 TV를 보고, 밤에는 TV를 보다 잠드는 게 주말 일상이었다.
남편의 한때 꿈은 ‘드라마 PD’였으며, 고3 때도 대하드라마 ‘대장금’을 놓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매직키드 마수리’ 광팬이기도 했다. 그런 우리였는데, 그런 우리가 집에서 TV를 치웠다. 작은 생명체가 태어나면서 결정한 일이다.
TV를 보는 습관보다는 책을 읽는 습관을 먼저 길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TV가 우리집에서 사라진 뒤 우리는 모바일로 볼 수 있는 모든 플랫폼의 최우수 회원이 됐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모두 존재만으로 감사한 분들이다. 딸아이가 잠들고 나면 남편과 나는 각각 거실의 적당한 장소를 찾아 헤맨 뒤 시청을 시작했다. 예전엔 서로 기대서 같은 화면을 봤다면, 지금은 각자 와인이나 맥주를 옆에 끼고 다른 화면을 본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되면, 함께 아이를 바라본다. 마치 TV와 담 쌓고 지내온 사람들처럼 ‘책 읽는 엄마 아빠’ 코스프레를 시작한다.
(욜)
아빠의 은퇴와 함께 우리집 TV는 아빠의 보물상자가 되었다. 거의 종편 뉴스가 나오는 그 상자는 똑같은 사람의 이름들만 줄줄줄 외는 녹음기 같은 느낌이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탄핵사건부터 최근의 법무부장관 사건까지, 줄기차게 떠들고있다. 유일하게 흥겨워지는 시간이라면 구성진 트로트자락이 흘러나올때 뿐이다.
TV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요즘 참 살맛 안날 것 같아보인다. 한창 내가 TV를 보던 시절, 이 친구는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미남미녀 스타들의 시랑이야기를 들려주고, 전국 구경을 하며 여행하는 예능과 밥만 먹어도 웃긴 사람들의 무모한 도전이야기를 보여줬는데. 그 시절에 비하면 요즈음이 얼마나 괴로울런지. 이러려고 바보상자라는 구박을 견뎠을까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평생 TV를 보지 않던 아빠가 TV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볼때 표현하지 않지만 속으로 한마디 하곤 한다. ‘참아주게, 친구’ 이제 TV는 내 삶에서 거의 없는 존재가 되었다. TV보다 더 작지만 똑똑한 녀석이 등장한 탓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창구일 것이다. 갑자기 비어버린 하루의 시간들을 채워주는 친구. 아빠에게 이 친구라도 있어 참 다행이다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