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기회의 땅인가?
보고타, 생소한 단어다. 처음 들을 때, 지명인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콜롬비아의 수도, 우리나라에서 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드는 곳이다.
주인공이 어떻게 보고타로 흘러 들어왔는지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간단히 말하면 IMF시기에 경제적 어려움을 피해 아버지의 성공한 지인이 있는 이곳으로 오게 된다. 오자마자 강도를 만나 전재산을 빼앗기고 믿었던 지인마저 도움을 주기 꺼려하여 주인공과 가족은 오갈 때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늘 그렇듯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삶을 이어나간다. 여기까지는 주인공을 둘러싼 어려운 상황을 보여주며 뻔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흐름을 이어간다.
주인공은 가족을 부양할 만큼 밥벌이를 시작하자, 조금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한인상인회를 잡고 있는 아버지의 지인을 돕고 그를 성공의 조력자로 삼고자 노력한다. 어찌어찌 성공하는 듯했으나, 현지인 상인회와의 다툼, 아버지의 배신 등으로 주인공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를 계기로 주인공은 각성 비슷한 것을 하고 살인을 포함한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성공한 한인이민자가 된다. 이후, 승승장구할 것 같지만 성공의 배경이 불법의 토대 위에 있었던지라 내부외부의 위기가 발생하고 결국 파국으로 마무리된다.
줄거리는 이 정도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길게 쓸 것도 없고 쓰고 싶지도 않다. 예고를 봤을 때, 조금은 기대를 했다. 남미 배경의 영화, 범죄와 연계된 내용 등 마약이나 총기가 나오리라 예상했지만, 실상은 여성속옷과 패딩재킷이었다. 물론,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먹고사는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맞다. 하지만, 영화란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고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나 알 수 있는 경험이라면 왜 우리는 굳이 영화를 봐야 하는가? 우리는 보고타에서 옷장사하는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처럼 우리는 누구나 다들 밥벌이를 위해 평생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충분히 밥벌이의 지겨움을 알고 있는데 그걸 영화에서도 봐야 하는가? 이 영화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생존의 문제를 생소한 배경에서 그 배경이 가지는 특징을 더해서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파악은 된다. 하지만 그게 잘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왜 보고타에 한인들이 밀수를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건지, 이방인으로 받는 서러움이 무엇이었는지? 왜 한인들이 그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지 주인공의 상황을 더 극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영화 후반부는 총이 나오는 걸 제외하면 아예 배경이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린다. 내부의 협력자들과의 마찰 갈등 그리고 배신 등 한국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일들의 연속이며, 결말도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보고타라는 영화의 배경이 가지는 신선함, 특이성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왜 보고타가 기회의 땅인가? 왜 굳이 보고타까지 가야만 했었나? 배경이 동대문 평화시장이라도 뭐가 다를까? 의문이 계속 드는 영화다. 끝맺음도 의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왜 봐야 하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