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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사칠 Oct 27. 2024

아직은 모자란 격투가

하지만 몸쓰기와 글쓰기를 겸비한

지금까지 아마추어 시합 1전부터 3전까지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며 10편의 글을 마무리한다. 다음 글부터는 4전부터 일어난 세미 프로 시합을 돌이켜보며 어떠한 일들이 있었나 돌아보려 한다.


아마 <링 위의 격투가> 쓰기는 내가 시합 출전을 멈추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언제가 마지막 시합이 될지 진심으로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다행히도 시간과 몸이 허락해 전적을 쌓고 있지만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격투가로서 적은 나이도 아니고 생업을 포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가인 내가 격투 선수로서 운동에 몰입하고 이러한 여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몸쓰기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몸 쓰기와 글 쓰기만이 동물과 사람을 구분 짓는다. 어떠한 동물도 몸 쓰기를 통해 한계를 겪으며 스스로를 극복하지 않는다. 어떠한 동물도 글 쓰기를 통해 무의식 속 자기를 발견하고 세상으로 꺼내지 않는다. 몸쓰기와 글쓰기. 두 가지 위대한 습관만이 사람 냄새를 더욱 짙게 하고 그를 어제보다 나은 자기 자신으로 만든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편안히 앉아서 감상하거나 만드는 것에 가깝다고 여겨져 온 음악은 사실 예술보다 체육에 가깝다. 음악 감상은 고막의 진동, 그리고 마음의 움직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좋은 음악에 압도되면 몸이 떨린다. 카타르시스다. 이보다 더 좋으면 몸이 움직인다. 가까운 테크노 클럽에만 가도 내일이 없는 듯이 스피커에 몸을 맡기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에게 음악은 예술이 아닌 체육이다. 흰 벽의 갤러리에 걸린 그림 감상이 아니라 손발을 내지르는 태권도다.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한 관찰이 있다. 어린이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춤을 춘다. 그들은 온몸으로 즐거움을 표현한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음악이 주는 즐거움에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반응한다. 누가 볼까 봐 춤을 멈추지는 않는다. 음악이 이끈 몸 쓰기는 오로지 나를 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음악은 예술이 아닌 체육이다. 부모님 손에 억지로 이끌려 머리로 하는 학습지 풀이가 아니라 온몸을 동원한 놀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글쓰기를 위해선, 그 외의 모든 정신적 활동을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다. 작가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신은 그저 몸에 기생하는 무엇”이다. 몸쓰기와 글쓰기는 함께 갈 수밖에 없다. 굳이 중요도를 따지자면 지덕체가 아닌 체덕지가 옳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 또한 어느 시점에는 몸쓰기를 경시하고 작업실에 파묻혔음을 고백한다. 그때 떨어진 체력으로 인해 마음의 우울이 20대 말미의 나를 집어삼켰나 보다.


지금의 내가 격투 시합에 몰입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몸의 저력을 무시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기 때문일까? 이 쪽으로 갈지 저 쪽으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때를 떠올린다. 책상에 앉아서 두 갈래를 고민하다가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기 일쑤였다. 방향에 대한 고민이 들 때 오히려 옳은 길로 빠르게 나아가기 위해선 몸의 힘을 끌어 와 어느 쪽이든 일단 가는 게 더 나은 방법이다. 몸쓰기에 능한 사람이라면 그 길이 막혔음을 깨달았을 때 빠르게 되돌아와 바른 길로 나아갈 체력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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