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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사칠 Oct 27. 2024

20kg 가량을 빼면서 느낀 점

가장 중요한 것을 하기 위한 안 하기

이 즈음에서 쉬어갈 겸 처음 시합에 나가려고 결심했던 목적인 ‘살 빼기’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2022년 12월 첫 훈련을 할 때의 몸무게는 83kg. -75kg으로 첫 시합에 출전했으니 약 8kg 정도를 감량하고 시합에 나갔다. 물론 그때도 습관처럼 주말에 혼자 양꼬치와 맥주를 마셨으나 강도 높은 운동량으로 인해 자연스레 살이 빠졌다. 습관적인 주말 음주는 선수 생활을 하는 어느 시점부터 내 곁을 떠났다. 9전 가량 싸운 지금은 시합 한 두 달 전 즈음부터는 술도 멀리하며 쌓인 스트레스는 음악 감상과 명상으로 관리한다. 1년 중 거의 대부분의 날을 논알콜 상태로 지내는 것이다.


두 번째 시합에서 상대와 힘의 차이를 느껴 3전 때는 -72kg로 시합했다. 운동할 때 힘이 들어 매일 마시던 술을 자연스럽게 멀리 하고 높은 운동량은 유지하다 보니 첫 세미프로 시합인 4전은 -67kg, 5전은 -64kg. 올해 1월에 치른 6전은 -60kg로 치러 지금은 이 체급으로 시합을 나간다. 처음 선수 운동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1년 사이 약 23kg 정도가 빠졌다.


일부러 살을 빼려고 애쓴 건 아닌데 글을 쓰고 보니 참 많은 감량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운동하는 동료 사범님들이 나를 만날 때면 살이 빠지다 곧 소멸할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게 이해된다. 리게인을 노려 다이어트를 해 만드는 시합 체중이 아니더라도 평소 체중을 67~70kg 사이로 유지하니 처음과 비교했을 때 15kg 가량이 사라졌다. 시합을 나가기 전 세운 목적 하나는 이룬 셈이다.


이후의 시합에 관해 쓸 때 자세히 다루겠지만 올해 2월에 치른 동료 사범님의 시합을 보고 난 후 너무도 좋아하는 담배도 끊었다. 술은 안 마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담배만큼은 못 참는 나였다. 담배를 참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앞선 글에서 언급한 성실의 상징 레드맨을 쓰러트린 상대의 기량을 보고 호승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저 정도 기량의 선수와 맞붙어 보고 싶다는 이상한 생각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재능이 없는 나와 저런 사람이 겨루려면 적어도 신체 조건만큼은 맞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연 전화 상담을 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내가 그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기억하는 친구들이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이외에도 불필요한 사교 모임, 과도한 유튜브 시청 등 삶에서 참 많은 것을 걷어냈다. 본업과 선수 생활을 함께 해야 하기에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새로이 떠오를 많은 습관을 마주하고 이들과 작별할 것이다. 왜 나는 삶을 재미있게 채우던 여러 가지와 헤어졌나?




링 위에 들어서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상대와 마주한다. 진심으로 저 사람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선에 서면 뇌가 알아서 가장 필요한 동작을 몸에게 명령한다. 머릿속을 채운 잡념과 허세가 사라지고 본능이 움직인다. 음악가 김광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지”고 단 하나의 길로 이끌리는 느낌이다. 링 안에 들어서면 모든 진실이 드러난다.


1년 사이 몸무게와 여러 악습을 덜어낸 이유는 아마도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쫓기 위해서였나 보다. 사람은 죽는다. 죽음 앞에 서면 가장 중요한 진실이 드러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기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사실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안 한다. 안 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을 위해 나머지를 덜어내기. 인도의 경전 <요가수트라>에 등장하는 바이라갸 vairāgya, 우리말로 이욕이다. 아직은 동료들과 함께 수련하며 링 위에 서는 기분이 좋기 때문에 그것보다 덜 중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있나 보다.




존경하는 음악가 필립 글래스는 ‘미니멀리즘’이라는 기법을 기반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최소한의 음악적 요소를 활용해 단순하지만 강렬한 청각적 경험을 듣는 이에게 준다. 오페라 <Einstein On The Beach> 속 ‘Knee Play 1’에 나오는 곡을 들으면 곡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이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쌓인다. 꼭 필요한 소리가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을 느낀다. 어제까지 내가 진리라고 붙잡고 있던 지식, 영원할 것 같은 인간관계, 심지어 나라는 이름도 그의 곡 안에서는 덜어냄의 대상이다. 꼭 필요한 소리만 남기기 위해. 정수를 남기기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바를 덜어냈을 그의 노력이 스피커를 뚫고 나와 내 귀에 들린다.


도장 벽 한 편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수련은 어려운 것을 하되 사용할 때는 쉬운 것을 하라


오늘도 필요치 않은 바를 거두고 꼭 필요한 동작을 하기 위해 수련한다. 링 위에서도, 삶 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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