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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춥다물 Jan 19. 2024

아벨의 집

핀란드 원룸과 채식주의자

Helsinki, Finland 2011


 헬싱키의 6월은 눈이 부셨다. 말 그대로 눈이 너무 부시게 밤 12시까지 해가 지지 않았다. 지난한 겨울을 이겨낸 사람들이 내가 여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며, 공원으로 나와 하나둘씩 수건, 담요를 깔고 누울 준비를 했다. 오후 5시였다. 5시에 퇴근한다는 아벨을 여기서 만나기로 해서 나도 그늘에 앉았다. 그늘에 앉은 건 나밖에 없다. 북유럽 사람들은 햇빛 알러지가 없는 건가 의아해하며, 책을 두어 페이지나 읽었을까. 그림자가 책 위로 드리웠다. 아주 기다란 그림자였다.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의 건축을 보고자 헬싱키를 마지막으로 유럽여행을 끝내기로 한 나는, 아는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카우치 서핑(무료로 자신의 카우치(소파)를 여행객에서 내어주는 웹사이트)을 이용하기로 했다. 카우치 서핑이 아직은 다른 의미들이 남아 있었던 시절이었다. 건축가로 일하며, 헬싱키 시내에 살고, 파티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 보이는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이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배낭여행객, 학생 커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그의 카우치 서퍼들의 리뷰가 믿음직스러웠다. 그는 내가 메시지를 보냈을 때 특이한 두 가지를 요구해 왔다.


[반갑다. 춥다물.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한테 헬싱키는 여행하기 정말 좋은 곳이야. 아래의 조건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너의 요청을 수락할게. 자세히 읽어보고 결정하길 바랄게.


- 나와 동시에 출퇴근하기

 나의 출퇴근 시간은 8시-5시야. 이 집에는 내가 있을 때만 머물 수 있어. 내가 없는 집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싫거든. 물론, 내가 퇴근하고 난 후 귀가하는 것은 상관없어.

- 동물성 식품 반입 금지

 나는 비건이야. 그래서 내 집에서는 고기를 먹거나 요리할 수가 없어.


 위의 조건을 지키지 못한다면 미안하지만 우리 집에서 지낼 수 없어. 나는 새로운 곳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다려. 부디 나의 공간을 존중해 주기를 바랄게. 이해해 줘서 고마워.]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비싼 숙소료를 아끼면서 저 두 가지 지키지 못할 이유가, 가난한 대학생 배낭여행객에는 없었다. 그리고 사람이 신세를 지면 당연히 친절하기라도 해야지.


[아벨, 답장 고마워. 그리고 너의 규칙들을 존중하고 잘 지킬게. 더치 건축가에게 핀란드의 건물에 대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나도 기대하고 있어. 나는 알바 알토 건축물을 보러 돌아다녀야 해서 낮에는 바쁠 거고,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너의 주방에 동물성 식품을 반입하지는 않을게. 너의 집에서 무료로 재워주는 것만으로 정말 감사해. 여건이 되면 한국식 채식 팬케이크를 만들어 줄게. 또 내가 지켜줘야 하는 것이 있으면 알려줘.]


아벨은 내가 자신의 규칙에 어떠한 이의 없이 오히려 파전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전에 없이 빠른 답장을 보냈다.


[한국식 채식 요리라니, 너무 기다려진다. 알바 알토 정말 대단하지. 나도 헬싱키 와서 한 동안 알토의 건축만 보러 다녔었었어. 너는 운이 좋구나. 내가 알바알토 건축물 방문 팁을 모두 줄게. 그럼 헬싱키에서 보자!]


 나보다 머리 하나 반이 더 큰 아벨을 따라 간 그의 아파트는 거실이 따로 없는 원룸형 아파트였다. 이런 구조를 Studio Type(스튜디오 형)이라고 부른다.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집주인과 함께 자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코펜하겐에서 히피들과 살면서 나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래도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리된 소파 베드를 보고 마음을 놓기로 했다.

 이 원룸은 욕실을 제외하고 모두 열린 구조다. 그러나 침대가 쏙 들어가게 벽을 치고 침대 상부로는 깊은 수납장을 단 덕에 자는 공간은 충분히 아늑했다. 세간을 간소하게 들이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외국인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아벨은 말했다. 원룸이었던 덕분에 나는 아침저녁으로 옷을 들고 엉거주춤 욕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나 아벨이 '나 옷 갈아입을 거니까 보고 싶지 않으면 이쪽을 보지 말라고' 말하며 옷을 훌렁훌렁 벗길래, 나중에는 나도 따로 욕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아무 벽 뒤로 가서 '나 옷 갈아입는다. 그냥 그렇다고.' 외치며 옷을 잽싸게 갈아입을 수 있게 됐다.

원룸형(studio)의 아파트 평면

 

 정말 작았던 한국의 대학가 후문의 나의 첫 원룸을 떠올렸다. 현관을 열면 위 평면 중 홀(hall)에 말도 안 되게 작은 주방이 신발장 옆으로 있고 크기는 위의 1/2 쯤 되었나. 그리고 그것은 '주방 분리형 원룸' 매물이 되어 보통의 원룸보다 조금 더 비싸게 시세가 책정되었다. 그것보다는 조금 커진 지금의 내 원룸은 잘 있겠지? 빡빡이가 청소도 하고 환기도 잘 시켜준다고 했으니까, 이제 나도 내 침대에서 자고 싶다고 생각하며 잠든 다음 날 아침, 남쪽으로 난 창문으로 날카로운 햇살이 소파베드 옆으로 떨어진 내 팔을 지질 때 눈이 저절로 떠졌다. 햇빛 알러지 때문에 팔뚝이 따끔거렸다. 곧이어 알람이 울렸다. 기다란 아벨이 마른세수를 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나도 주섬주섬 일어난다. 집주인의 시간표에 맞춰 부지런하게 지내야 이 집에서 3일 더 평화가 지속될 것이니. 그가 샤워를 할 동안 나는 내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반대로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그는 오트밀과 오트 우유를 그릇에 담았다. 내가 어제 사둔 바나나도 작게 잘라 서로의 그릇에 덜어냈다. 그는 다시 일어나 사둔 것이 조금 남았다고 블루베리도 작은 접시에 담아냈다. 서로의 시간을 비껴서 부딪히지 않게 잘 자르고 붙이며 아침을 함께 보냈다. 또 서로가 준비한 식재료를 사이좋게 나눠 간소한 비건 아침을 함께 먹으며 오늘의 계획에 대해서 2인용 식탁에 앉아서 얘기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알바 알토가 마스터플랜을 맡은 알토 대학(Aalto University)에 갈 거라고 말하자, 그중에 메인홀과 예배당을 꼭 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해 같이 산 사람들처럼 1층으로 함께 내려와 이따가 보자며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타인과 함께 잘 산다는 건 이런 뜻이었을까? 동시에 ‘잘’과 '이런'을 정의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아직 덜 마른 머리를 훌훌 털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서로의 하루를 각자 보내고 5시가 가까워지면 나는 다시 그를 만나러 정해진 공원으로 간다. 아벨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는데 퇴근 후에 공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항상 뒤에 태우고 시내를 여기저기 다녀줬다. 비건 식재료를 매주 포장해 가는 베지 시장에도 가고, artek(알바 알토와 그의 부인 Aino Aalto의 가구회사) 파티에도 데려가 나를 한국에서 온 건축과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아래위로 한번 보고, 아벨을 위아래로 다시 봤다. 그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은 것 같았고 나는 왠지 조금 더 작아졌다.

    "아벨 덕분에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정말 정말 고마워."

    "(웃음) 너 하루에도 고맙다는 말을 열 번도 넘게 하는 거 알아? 나도 한국에서 온 건축을 사랑하는 재밌는 학생과 하루의 끝에 대화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 그러니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심지어 나를 위해 채식 요리를 해주는 손님은 네가 처음이야!"


 아벨의 친절과 존중은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과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처음 이 작은 아파트에 왔을 때 그는 내 배낭을 보며 도움이 필요하냐고 친절히 물어봤다. 자신의 방이 꼭대기라고 덧붙이면서. 나는 괜찮다고 내 가방은 내가 들겠다고 거절했다. 그는 알겠다고 답하고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한번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친절을 베푼다는 것은 자신이 아닌, 남이 원할 때만 가능해진다는 것을 아벨을 통해 들여다본다. 또 한 번은, 내가 너의 침대도 함께 정리했다고 샤워를 마친 그에게 뿌듯하게 말하자, 그는 정색한 적이 있다. 자신이 부탁하지 않은 것을 하지는 말아 달라고 조심스럽게 요구할 때였다. 나를 존중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존중'의 반대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때 나는 아직 몰랐던 터라 내 얼굴은 새 빨게 졌다. 다른 모양의 정의를 보는 것은 언제나 이렇게 귀가 새 빨개지도록 부끄럽고 감사했다.


 헬싱키를 마지막으로 2달간의 유럽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내 원룸에 돌아와 큰 충격을 받는다. 너무 작아서가 아니다. 빡빡이가 내기로 하고 미뤄둔 공과금 고지서들이 내 책상을 뒤덮고 있었고, 그가 애지중지하는 자전거가 바퀴의 흙을 그대로 묻힌 채로 방 떡하니 들어와 있었다. 정확히 내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던 방식 그대로. '네가 없을 때만, 두 달만 지내고 있을게. 월세도, 공과금도 내가 다 낼게' 했던 그는 심지어 내가 돌아오는 날 그 난리통을 숨길 생각도 전혀 없어 보였다. 오후 비행기로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전거 옆에서 자다가 일어났으니까. 내가 돌아왔는대도 자신의 본가로 돌아가지 않고 버티는 그와 며칠을 내내 싸우다가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모양이 다른 존중이 아니라는 것을. 어떤 사람은 자신도, 타인도 존중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헬싱키를 다녀와서야, 남자친구였던 그를 내 인생에서 쫓아냈다. 월세도 공과금도 내지 않고 청소도 하지 않은 채로 그는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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