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 《경제학 철학 수고》, 필로소픽, 2024, 김태희역
카를 마르크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는 그의 초기 저작 중 하나로, 일명 청년 시기의 마르크스를 상징하는 저작이다. 물론, 청년 마르크스라는 용어가 오용되고 있기에 사용하는데 있어 조심스럽다. (청년 마르크스가 변증법을 버린 후기 마르크스와
'인식론적 단절'되었다는 알튀세르의 주장은 크리스하먼의 글 <철학과 혁명>에 반박어 있으니 참고하빌 바란다.)
《경제학 철학 수고》, 일명 <경철수고>는 1844년에 쓰인 철학적이고 경제학 수고(노트)이다. 이 글은 마르크스가 당대의 정치경제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인간소외와 노동의 문제를 탐구한 중요한 저술로 평가받는다. 이는 마르크스가 헤겔철학,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유물론, 그리고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고전 경제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독창적인 이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다.
다만 정치경제학자들의 글에 대한 각주 및 메모에 해당하는 글이라 가독성이 떨어진다. 특히 한국에 나온 이전 번역본은 번역도, 편집도 엉망이라 강독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반갑게도 2024년 12월에 필로소픽에서 나온 김태희역의 새 번역본은 깔끔하고, 정갈하게 번역되어 있다. 특히 청년 마르크스를 사진하는 초상과 양장본은 청년 마르크스 세대의 감성을 자극한다. 제1수고 의 주요문장들을 강독해보자
"거대 작업장은 여성과 아동의 노동을 사는 것을 좋아한다. 남자보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p.45)
산업 자본주의 초기에는 여성과 아동이 주요 노동력으로 활용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남성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여성과 아동은 더 낮은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본 측에서는 이들을 선호했다. 이런 방식은 자본주의가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동자의 인권이나 존엄성 같은 문제를 무시한다는 걸 보여준다. 노동자가 인간으로 존중받기보다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모습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노동이 상품이라면, 가장 비참한 특성을 가진 상품이다. 그러나 국민경제학의 원칙에 따르더라도,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자유로운 거래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p.46)
마르크스는 노동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관점을 비판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이 사고팔리는 상품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상품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상품은 자유로운 계약과 교환을 전제로 하지만, 노동은 대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공되는 일종의 강제적 거래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 몰려 있기 때문에, 똑같은 상품으로 보는 건 부당하다. 노동의 상품화는 인간 소외와 착취를 심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다.
"자본이란 무엇인가? '비축되고 저장된 일정량의 노동' 자본은 비축된 노동이다." (p.50)
자본은 단순히 물질적 재산이나 화폐가 아니라, 과거에 이뤄진 노동의 결과물이 축적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본은 과거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가치가 저장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 축적된 노동이 자본가에게 소유되며, 노동자와는 분리되어 버린다. 자본은 결국 노동의 산물이지만, 자본주의는 이를 노동자보다 자본 소유자의 힘으로 간주하고, 그 결과 노동자들의 기여가 착취되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자본가는 이중으로 이익을 얻는다. 첫째로 분업에서 이익을 얻고, 둘째로 일반적으로는 자연생산물을 다루는 인간 노동의 발전에서 이익을 얻는다. 상품에서 인간의 기여분이 커질수록, 죽은 자본의 이익이 커진다. (p.56)
자본가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익을 얻는다. 첫째는 분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노동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분업은 생산 과정을 세분화해 더 많은 결과물을 낼 수 있게 하지만, 노동을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계적 행위로 전락시켜 노동자가 소외되게 만든다. 둘째는 인간 노동이 자연 자원을 가공하면서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건, 상품의 가치에서 인간 노동의 기여가 클수록 이 노동의 결과물이 자본화되어 자본가의 이익이 배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결국, 노동자의 창조적 활동은 자본가의 이윤을 위한 도구로 전환된다.
"(가령 지폐 같이) 유통수단이 사용하기 쉬워지거나 비용이 낮아지면, 자본이윤도 상승하는 것은 자명하다."
유통수단의 효율성은 자본 축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폐처럼 사용하기 편리한 유통수단이 등장하거나 유통 비용이 낮아질수록, 화폐와 자본이 더 빠르게 순환하게 된다. 이는 자본가들이 더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으로 상품을 거래할 수 있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더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유통 구조를 개선하면서 수익성을 강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술적 발전을 추구한다.
이 문장들을 통해 마르크스는 <제1수고>에서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와 그 안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효율성과 수익성을 강조하지만, 그 속에서 노동자는 필연적으로 소외되고 착취를 경험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소외의 본질을 밝힌다. 소외는 결국 통제 불능인데, 네 가지 유형의 소외는 다음글에서 완벽히 풀어내고 있으므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https://marx21.or.kr/article/466
초기 저술에서 언급된 자본, 죽은 노동, 지대 문제 등은 마르크스의 후기 저술에서 발전 및 계승되고 있다. 《경제학-철학 수고》는 혁명적 사상의 시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