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오전 6시부터 시작되는 하루일과.
방학인 지금은 출근 전 아이들이 집에 있는 동안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동안에는 일어나서 먹을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나의 하루는 항상 6시부터 시작된다.
오늘은 햄야채 볶음밥을 해놓고, 함께 먹을 오이냉국도 또 만들어 둘 것이다.
간식으로 먹을 토마토 주스도 만들어 놓으려고 모든 재료를 다 꺼내 놓았다.
그리고, 오래된 나의 평생친구이자 평생의 동반자가 될 그것,
습. 관.
그 습관으로 주방에 있는 조그마한 창문을 여느 때처럼 열었다.
여는 순간 후회하면서 닫을 거란 걸 알면서도 한겨울에도 한 번은 열었고,
여는 순간 덮쳐오는 후끈한 공기를 알면서도 한 여름에도 꼭 한 번은 열어보는 그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빌라와 골목과 가로수와 상가들의 간판들이 밤새 변했을 리 만무한데도
꼭 목을 쭉 빼고 상체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바라보는 조그마한 창문.
그 창문을 오늘도 여전히 열어젖혔다.
그래, 더운 거 안다~~~~!!
나는 창문을 열며 아침에 어울리지 않는 후끈한 더운 공기를 맞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웬걸, 오늘은 살랑~하고, 시원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후끈하지도 않은 한줄기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어...? 덥진 않은가.....?
덥지 않을 리가 없다.
이젠 외우겠다 싶을 정도로 매일같이 오는 폭염경보 재난문자가 어제까지 내 핸드폰을 울려댔는데, 오늘 갑자기 덥지 않을 리가 없다.
어젯밤,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빙수를 사기 위해 집 앞 슈퍼에 나갔다 오는 잠깐 동안에도 땀을 흘리고 답답했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덥지 않을 리가 없다.
작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잠을 자는 동안 더위에 잠을 얼마나 설쳤는데 아침부터 갑자기 덥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뭔가가 변했다.
날씨가 주는 느낌과 분위기,
몸으로 느껴지는 공기가 변했다.
숨을 턱 막히게 하던 후끈한 공기는 적어도 아니었다.
더운 날씨가 조금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살랑바람이었고,
끈적함을 품은 무거움만 있는 공기가 아닌, 약간의 가벼움이 살짝 느껴지는 공기였다.
더위가 조금은 나아지려나 보다.
올여름, 무더위에 지치고 바닥에 떨어진 우리 가족의 식욕을 책임져 준 오이냉국을 아침마다 만들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농장에서 따 온 오이로, 마트에서 사 온 오이로 꾸준히 만든 오이냉국.
바빠도 더워도 빈 속으로 절대 나가지 않는 남편의 아침식사를, 매일은 아니지만(가끔 다른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자주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방학 중에, 반찬을 하나하나 꺼내는 정성을 들이면서 까지, 굳이 밥을 먹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볶음밥과 몇 가지의 삼각김밥 그리고 오이냉국은 내가 출근해 있는 동안 아이들의 끼니를 책임져 주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밥이고 뭐고 만사 다 귀찮을 때, 후다닥 삶은 소면에 후다닥 만든 오이냉국을 부어 김치와 함께 내면 피곤한 저녁, 가족들의 식사는 해결되었다.
너무나 더웠기에 보내기에 아쉽지만은 않은 여름,
아삭한 식감의 오이에
새콤달콤한 국물에 동동 띄운 얼음과 듬뿍 뿌린 깨가 자리다툼 하는 오이냉국, 그동안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