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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Jan 01. 2021

우리 아가는 잘 크고 있나요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초기는 생존, 중기는 기형 및 발달이 핵심이었다면, 후기는 성장이 메인 고민거리가 된다.


32주 차 5일, 아기 크기가 2.2kg로 평균보다 2주 정도 앞섰다. 머리는 3주, 배 둘레는 1주나 앞서는 크기였다. 워낙 덤덤하던 담당의 얼굴에 걱정이 스치자 나도 덩달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아기 머리가 너무 큰 건 아닌가요?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편인가요? 아기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요?


선생님은 담담하게 웃으며 아기가 상위 1%로 좀 큰 편이라고, 40주를 채우면 자연분만이 힘들 수 있으니 37주가 넘으면 운동을 많이 해서 진통 시기를 당겨보자고 했다. 출산 시 산모가 고생할 수 있어서 그렇지, 임신성 당뇨가 아니라서 아이가 우량아일 뿐 문제는 없다고 했다.  분명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상위 1%라는 말에 어찌나 마음이 심란하던지. 집에 가는 길에 곧장 동생에게 전화해 하소연을 했다. 엄마는 내가 3.6kg로 태어났고 동생들은 4kg가 넘었다고 늘 자랑스레 이야기해서 나도 내 아기가 우량아면 기쁠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큰 게 아닐까 싶어 걱정을 할 줄이야. 역시 아기를 갖는다는 건 걱정을 달고 살게 된다는 뜻이구나 싶었다.


34주 차 5일, 아기 크기가 2.5kg 정도로 평균보다 1주 정도 큰 크기였다. 머리는 여전히 3주나 컸지만, 배 둘레는 다행히 주차에 맞았다. 머리는 유전이지만 배 둘레는 산모가 먹는 것에 영향이 있는 거라, 평균에 맞게 크는 게 좋은 거라고 하더라. 의사 선생님은 이제 아기 크기가 상위 25% 정도라며, 식단관리를 잘했다며 칭찬해주셨다. 2주 전에 비해 아기가 조금 큰 게 아닐까 걱정하던 나는 선생님의 칭찬에 한시름 놓았다. 저번 검진 이후 2주간 정말 소화가 안 돼서 강제로 식단관리를 했었는데, 그게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대신 다른 문제가 있었다. 아기가 역아였다.


의사 선생님은 1월 산모가 많다며 제왕 날짜를 먼저 잡아두자고 했다. 아기는 37주까지 도는 경우가 많으니, 우선 제왕절개 날을 잡아두고 아기가 돌면 수술을 취소하자고. 그리고 하루 두 번 꾸준히 고양이 자세를 하면서 아기가 다시 돌길 기다리자 했다. 그리고 수술 날을 잡으니 38주 6일 차, 검진 날로부터 1달 뒤였다.


임신 중기에는 자연분만의 불확실성과 진통이 너무 무서워 선택제왕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조건이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우선 자연분만을 기다리기로 겨우 결심을 마친 터였다. 그런데 아기가 역아라서 제왕을 할 수도 있다니, 그리고 그게 한 달 뒤일지도 모른다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역시 임신이고 출산이고 내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남편은 병원에서 잡아준 날이 마음에 안 든다며 툴툴거렸다. 그래도 아기가 태어나는 귀중한 날인데 그렇게 병원 스케줄만 고려할 수 있냐며, 당연히 부모 보고 고르라고 할 줄 알았다고 말이다. 사실 나는 당장 한 달 뒤에 수술할 수도 있다는 소식에 패닉 한 터라 날짜 자체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부모님께 설명드리니, 시어머니가 기왕 하는 수술 좋은 날에 하자며 철학관에 날을 받으러 가셨다. 그런데 웬걸, 철학관에서 선택지를 두 개밖에 안 줄 줄은 몰랐다. 하나는 38주 차 0일, 하나는 39주 차 3일이었다.


39주 차 3일은 기다리다 진통이 올 거 같아, 38주 0일로 수술 일정을 변경해달라고 병원에 연락했다. 병원에서는 그때는 폐가 덜 성숙할 수 있어 아기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이 경우 전원을 해야 한다고, 동의하면 그날로 잡아주겠다고 했다. 이걸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좋은 날이 하나도 없다던 1월 셋째 주에 갑자기 진통이 와서 낳는 한이 있더라도 동의 못하겠다고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39주 차 3일로 다시 변경을 요청했다.


아이고, 그런데 이번에는 원하는 시간이 이미 마감이란다. 어머님은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고 했고, 나는 아기가 다시 돌아서 자분을 기다릴 수도 있으니 2주 뒤 병원에 내원해서 상황을 보고 제왕이 확정이면 시간을 조정해보겠다고 했다. 수술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간호사를 닦달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36주 차 5일, 아가가 다시 돌았다. 자연분만을 기다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신 기간 내내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는 아가가 이번에도 엄마 마음을 알아채 준 모양이었다. 혹시 몰라 수술 전 검사는 그대로 진행했고, 잡아놓은 제왕절개 일정도 다음 주까지 지켜본 다음 취소하기로 했다. 아기는 이미 3킬로, 머리는 2주나 더 커서 직경 9.5센티였다. 맘카페에서는 이 정도면 제왕을 잡는 경우도 많다고 했지만,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41주 전까지는 유도도 안 하고 제왕도 어지간하면 권하지 않아서 우선 기다리기로 했다.


1월 1일, 37주 차 0일. 언제 아가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진정한 막달의 시작이다. 이런 기분이 들 줄 몰랐는데, 태어나기도 전부터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입덧도 별로 없었고, 주기적으로 태동도 있고, 아픈 곳도 없고, 초음파 검사 때 얼굴도 잘 보여준 데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자라 주는 아가가 기특했다. 끔찍할 거라 예상했던 임신 기간이, 생각보다 꽤 즐겁고 행복했다. 덕분에 출산의 두려움보다 곧 아가를 본다는 설렘이 더 커진 거 같다. 곧 만나자,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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