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톺아보기 02: 바샤커피(BACHA COFFEE)
한국에도 상륙해 어느새 수많은 가정집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황색 상자가 있죠. 반짝거리는 금박 코팅에 고풍스럽게 적힌 BACHA 만 봐도 고급 제품인지는 바로 알아봅니다.
참, 바차 커피라고 읽었다간 한 소리 들을지도 몰라요. 오늘 톺아볼 브랜드는 모로코에서 영감을 받은 고급 드립커피 브랜드, 바샤 커피(BACHA COFFEE)입니다.
바샤 커피의 시작은 어딘고 하니, 모로코랍니다. 1910년, 모로코에는 화려한 궁전이 지어지는데요. 우리말로 ‘파샤의 집’이라 불리는 다르 엘 바차 궁전은 유명한 사람들에게 커피를 내어주며 교류할 장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미국 전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찰리 채플린,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도 다녀갔죠. 하지만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궁전은 폐쇄되고 맙니다. 이후 2017년 말에 문화 융합 박물관으로 다시 개관했습니다.
이 스토리를 알게 된 프랑스의 사업가 타하 부크딥은 새로운 사업에 착수합니다. 그는 이미 유명 티 브랜드 TWG(2004년 만들어진 싱가포르의 고급 차 브랜드)를 성공시킨 이력이 있었습니다. 타하는 TWG를 만들 때 사용한 전략을 다시 한번 써먹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합리적인 명품"과 "숫자 브랜딩"!
타하는 명품을 구매할 돈은 없고, 명품의 기분은 느끼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을 노립니다. '400만 원을 내서 가방을 사지 못해 슬퍼? 4만 원만 내고 최고급 드립 커피로 기분 내보는 건 어때!' 하며 속삭이는 거예요. 어때요, 혹하시지 않나요?
그럼에도 여전히 높아 보이는 바샤커피의 가격. 타하는 숫자에서 답을 찾습니다. 타하의 브랜드인 TWG와 바샤커피는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개별 포장과 전체 패키징에 연도를 써넣죠.
하지만 이 숫자는 사실 브랜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숫자입니다. TWG의 1834년은 싱가포르의 상공회의소가 설립된 날짜고, BACHA 커피의 1910은 위에서 언급한 모로코 궁전이 지어진 날짜거든요. 타하가 무슨 관련이 있나, 싶으실 텐데요. 상공회의소와 연고가 있지도, 모로코 사람이지도 않아요. 정말 아~무 상관이 없죠? 그래서인지, 최근 TWG 패키징에는 1834라는 숫자가 없어져 있답니다. 지난번 다뤘던 불리도 비슷한 전략을 선택한 걸 보면, 명품 분야에서 먹히는 방법이라 볼 수 있겠어요.
레거시 브랜드와 경쟁하려면
레거시처럼 보여야지 않겠어?
타하가 뛰어든 프리미엄 차, 커피 분야는 이미 레거시 브랜드(업력이 오래되어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브랜드)가 많아요. 맛도 역사도 증명되어 그 정도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의견이 많죠. 그렇다고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자니 글로벌 시장성이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타하는 프리미엄 시장에 진입하고 자리 잡기 위해 레거시 브랜드를 흉내 내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고풍스럽고 엔틱한 폰트, 디자인 안에 숫자 네 자리를 집어넣어요. 흘끗 보는 소비자는 당연히 이 브랜드의 시작 연도라고 생각하게 되고, 레거시 브랜드가 아님에도 선택하기 시작합니다. 어찌 보면 소비자 기만이고, 다르게 보면 '보이는 소비' 행태를 노린 거겠죠.
레거시 브랜드가 많은 업계에 신생 브랜드가 뛰어들 때는 ‘브랜드를 사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가격대에 오랜 역사가 있는 브랜드가 이미 있는데, 왜 우리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요. 그 이유는 제품 하나의 마케팅 방안보다는 전체 브랜드의 브랜딩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고요. 여러분이라면 약간의 꼼수처럼 숫자 브랜딩을 사용하실 건가요? 아니라면 어떤 방법으로 고객의 구매와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하시겠어요?
바샤커피처럼 고객군을 세분화해서 틈새시장을 노린 브랜드가 또 있습니다. 바로 푸푸리! 실내 방향제보다 더 대명사 같은 페브리즈를 상대로, 화장실 방향제를 내세우며 시장에서 자리 잡은 브랜드.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나요!
브랜드 톺아보기는 매주 월, 금 저녁 7시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