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영어의 늪

by 캔디부부

뉴질랜드에서의 열세 번째 날


오늘은 아주 여유로운 주일을 만끽했다. 쉬고, 쉬고 푹 쉬는 날이었다. 내일부터 또 생존의 시작이니까 쉴 때 푹 쉬어야 될 것 같았다. 오늘은 8시에 일어났다. 나름 늦잠이었다. 잠이 없는 사람에게 8시는 늦잠이다. 차량보험이 등록되어있으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현지 감리교회에 가보려고 했는데, 아직 차량보험이 등록되지 않은 상태라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까운 교회에 걸어가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청 추웠던 것 같은데, 가볍게 입어도 될 정도로 날이 많이 풀렸다. 옷차림이 금세 가벼워졌다. 금방 더워지려나. 더운 거 싫은데.

걸어서 도착한 교회 역시 뉴질랜드 교회다 보니 동양인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인사하면서 들어가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배는 오늘도 눈치로 드려야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흐름을 쫓아가느라 힘들었다. 신랑은 오늘도 알아들었으려나. 그래도 모두들 열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가 다니던 교회에 비해 작은 규모의 교회였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나름 중형교회인 것 같다. 너무 예쁜 교회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앞에서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겠으니까 자연스레 눈이 여기저기로 향했던 것 같다. 조명은 어디를 향해있는지, 피아노는 있는지, 오르간은 누가 연주하는지, 예배실은 어떻게 생겼는지.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 눈만 빠르게 돌아간다. 영어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교회에서 제일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지난주보다 뭘 좀 듣기는 한 것 같다. 예화 정도? 단어 몇 개? 영어를 공부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교회 주보도 챙겨 왔다. 이렇게라도 시작하면 언젠가 영어실력이 늘지 않을까 하고. 사실 예배 끝나고 티타임 시간이 있었는데 두려워서 도망쳤다. 지금 생각하면 뭔가 아쉽지만, 교회에 정착하게 되면 티타임 시간도 즐겨봐야겠다. 그럼 영어가 좀 늘지 않을까? 교회에 다녀와서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낮잠도 잤다. 주일에 낮잠을 자다니 신기했다. 낮잠을 자고 뭉그적거리고 뒹굴뒹굴거리다가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일하느라 바쁜 신랑 고기 먹이고 싶었는데 입맛 없다고 해서 실패했다. 화요일에 외식을 하기로 하고 오늘은 파스타를 해 먹었다. 후식으로 뉴질랜드에서 꼭 먹어줘야 한다는 키위까지 폭풍 흡입했다. 뉴질랜드에서 먹는 키위라니 행복했다. 내일도 신랑은 일을 하러 간다. 난 아직 일이 완전하게 구해지지 않아서 집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신랑한테 자꾸 미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다. 이래도 되는 걸까. 그래도 오늘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하며 하루를 보냈다. 특별할 것 없지만 아주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