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산다는 것은
뉴질랜드에서의 여섯째 날
오늘은 매우 매우 바쁜 날이었다. 일단, 목회자 가정인 우리가 뉴질랜드에서 맞이하는 첫 주일이기도 했고, 플랫 주인들과 약속을 잡아 집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뉴질랜드에서의 플랫은 우리가 흔히 아는 셰어하우스를 말한다. 각자 방을 하나씩 쓰면서 주방을 공유하고, 화장실을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게 될 플랫을 구하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는 오전 6시부터 시작했다. 진짜 너무 추워서 씻기 싫었지만 주일이니까 안 씻을 수도 없고. 추위를 꾹 참고 씻고 아침을 먹었다. 이건 그냥 해보는 말이지만 어제 뉴월드마트 갔을 때 콘스프가 있길래 사 왔는데, 너무 맛이 없었다.
오늘 찾아갈 집은 두 군데였다. 쉽게 1번 집, 2번 집이라고 해야겠다. 1번 집은 오전 8시 30분에 약속을 잡았고, 2번 집은 오후 4시에 약속을 잡았다. 왜 이렇게 애매하게 시간을 잡았냐면, 10시에 주일예배를 드리러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1번 집까지의 거리는 버스를 타면 1시간이 걸리고, 걸어서 가면 1시간 40분이 걸리는 집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걸어서 가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출발했다. 운동화를 신고 출발했어야 하는데, 슬립온을 신고 걸었으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뉴질랜드를 잔뜩 느낄 수 있는 초록 초록한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었다. 정말 너무 예뻤다. 아침부터 운동하는 사람도 많았고, 사람 따라 운동하는 강아지도 많았다. 풍경을 감상하는 건 너무나도 잠깐뿐. "아 추워, 얼마나 더 가야 해?"를 반복하며 계속 걷기 시작했다. 걷고 또 걷고 또 걷고 걷고 걷고 그렇게 1시간 반쯤 걸었다. 결국 1번 집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차라리 버스를 탈걸 그랬다. 뉴질랜드에서 택시 타기라니. 정말 별짓을 다했다. 택시를 타야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뉴질랜드에서 택시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택시를 길에서 잡아도 되는 것인가? 택시를 잡을 때 손을 흔드나? 택시가 이 동네에 오기는 하나? 정말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을 끝없이 했다. 검색을 해보니 대부분 우버택시를 부르는 것 같았다. 카카오 택시 같은 콜택시. 택시를 불렀더니 5분도 안 걸려 택시가 도착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가본 1번 집은 대 실패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집도 작고, 냄새나고, 주인아주머니가 말도 빠르시고. 말이 너무 빨라 못 알아듣겠다니까 기다려주지도 않고, 영어 못한다고 그러고. 화가 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가격이 인터넷에서 본 가격과 달랐다. 그래서 한 시간 반을 걷고, 택시까지 타며 도착한 1번 집에서 5분도 안돼서 나왔다. 부들부들.
속상한 마음, 허무한 마음으로 서로를 달래며 오늘 함께 예배드리기로 한 교회를 찾아서 출발했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현지 교회를 갈지, 한인교회를 갈지, 감리교회를 갈지, 다른 교단을 갈지. 그리고 결정한 오늘의 교회. 현지 교회, 그리고 감리교회였다. 1번 집에서부터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현지 교회. 가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파서 빵도 사 먹었다. 그렇게 도착한 교회, 건물이 예뻤다. 예배실 들어가기 전에 목사님이 한 명 한 명 인사해주시고 안내위원분들이 주보를 나눠주시는 전형적인 따뜻한 교회의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만 있는 주보를 받아 들었다. 오늘 예배는 특별히 성찬식으로 진행되었다. 성경봉독 할 때는 한국 성경책을 펴서 읽었고, 이게 기도인지 설명인지.. 알아들은 건 3% 정도 되는 것 같다. 예배드린 후 인증샷도 찍었다. 그래도 첫 예배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예배였다. 신기하게도 신랑은 설교를 얼추 알아듣고 나한테 설명도 해줬다. 난 하나도 모르겠던데. 신기하다. 예배가 끝난 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그렇게 유명하다는 선데이 플리마켓으로 향했다. 주일에만 열리는, 그것도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열리는 마켓이었다. 음식도 팔고, 공연도 볼 수 있고,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고 살 수 있는 마켓이었다. 플리마켓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다양한 음식도 팔고, 귀여운 인형도 1달러로 득템 할 수 있었다. 그래 봤자 한국돈으로 800원. 잔디밭에 널브러진 인형들 꼬질꼬질해서 빨아야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1달러에 득템 하기에는 괜찮은 것 같다. 추가 요금 때문에 한국에서 가져오지 못한 기타가 생각나게, 기타도 팔고 있었다. 너무 비싸서 구경만 했다. 정말 다양한 것들이 많았던 플리마켓. 교회에서 플리마켓까지 걸어서 30분, 플리마켓에서 2번 집까지 걸어서 1시간, 포기했다. 버스를 타고 2번 집으로 가기로 했다. 아,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2번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사진은 좀 별로 같아 보인다. 옛날 건물이기는 하지만 뉴질랜드 같아서 너무 좋았다. 잔디밭도 너무 좋았다. 특히 주인아저씨인 마이크 아저씨가 너무 좋았다. 일단 한국에 관심이 있으셔서, 신발도 한국스타일로 벗고 들어가게 해 주셨고 뉴질랜드 음식점에서 찾기 힘든 젓가락을 가지고 계셨으며 만나자마자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마이크의 인상에 반해버렸다. 방도 1번 집보다 넓고, 쾌적하고 가격도 1번 집보다 훨씬 저렴한데 위치는 훨씬 좋은 집. 고민할 것 없이 바로 OK 했다. 주변에 큰 마트가 두 개 있었고, 시티 잡을 구할 가능성이 높은 집, 가격선이 적당했고 교통편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주인아저씨 인상이 정말 너무 좋았다. 집은 목요일에 이사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지금 숙소에서 조금 더 지내면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계좌 개설 등등. 할 일이 많았다. 마트까지 가는 길에, 엄청난 규모의 맥도날드도 있었고, 백화점, 수선집, 스시집, 옷가게, 핸드폰 가게, 애플스토어 등등 없는 게 없는 멋진 웨스트필드 몰 Pak'n save가 있었다. 아주 좋았다. 이미 홀딱 반한 듯하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무려 삼겹살이다. 고기를 굽는데 연기가 어찌나 나던지, 라면 끓일 때도 눈치 보고, 계란 프라이할 때도 눈치 보고, 오늘도 눈치 봤다. 외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이렇게 오늘의 하루도 무사히 마무리했다. 집 구하느라 이동하기 위해 4시간을 걸어 다녔더니 발에 물집도 잡혔다. 그래도 너무 다행인 하루다. 걱정했던 집 구하기도 마무리되었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뉴질랜드에서의 열 번째 날
오늘은 결혼 후 첫 명절, 이곳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생각보다 뜻있게 보냈다. 또 오늘은 드디어 플랫으로 들어가는 날. 그동안 지낸 숙소는 오전 10시가 퇴실이라 일찍 움직였다. 게다가 우리가 중고차를 구매하기로 결정한지라 오늘은 차를 알아보러 여기저기 다니기로 했다. 7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남은 시리얼과 우유를 모두 없애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시리얼을 먹었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준비를 다 마친 후 정들었던 숙소와 작별인사를 했다. 정말 이 숙소 덕분에 편하게 지낼 수 있었고, 이력서도 쓰고 빨래도 하고. 이래저래 정이 많이 들었다. 우리는 큰 캐리어 2개, 각자 백팩 하나씩 그리고 보조가방까지 메고 버스를 타러 출발했다. 조금 걸었나, 눈앞에서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지나갔다. 30분마다 한 대씩 오는 버스인데, 놓쳐버렸다. 그래서 30분 기다렸다. 그래, 이런 것도 여유고 재미지.
10시쯤 1번 차 아저씨를 만나서 중고차를 구경했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시동을 걸자마자 부와아아앙아아아아아아아앙아아앙 하는 정말 요란한 소리가 났다. 당황스러웠다. 이 가격엔 이런 차 밖에 못 사는 건가 하는 생각에 괜히 무섭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다. 일단 다른 차를 더 보는 게 좋겠다고 하고 급하게 두 군데에 더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았다. 다른 차를 보러 가기 전, 크라이스트처치 리카튼에 있는 은행에 갔다. 우리 부부 공동명의의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가 갔던 은행에 한국인 직원분이 계신다는 소문이 있어서 찾아갔다. 한국말로도 어려운 은행업무를 영어로 할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한국인 직원분이 친절하게 도와주셨다. 오늘 바로 해결할 수 없어서 내일 다시 은행에 들르기로 약속을 정한 뒤 다음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 플랫에는 4시 반 이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은행업무가 끝난 시간이 11시 30분쯤인데, 생각보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 짐이 많아서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다가 밥부터 먹기 위해 근처 푸드코트로 향했다. 오늘 점심은 각자 먹고 싶은 거 가져다 먹었다. 신랑은 치킨이 먹고 싶다고 KFC에서 치킨을 먹었고 나는 밥이 먹고 싶어서 밥이 보이는 곳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밥을 맛있게 먹었다. 계란볶음밥과 탕수육의 조합. 엄청나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먹을만했다. 신랑도 참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었더니 오후 1시,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제 남은 시간 뭐할지 슬퍼하고 있는데 스타벅스가 보였다. 크라이스트처치에 스타벅스가 많이 없다고 해서 슬퍼하고 있었는데 몇 없는 스타벅스중 하나가 우리가 살게 된 Ricarton에 있는 쇼핑몰 안에 있었다. 너무너무 반가웠다. 넓은 매장은 아니었지만 좋았다. 생각보다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한국보다는 저렴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여유롭게 커피 한잔 했다. 뉴질랜드는 인터넷이 귀한 곳이라 무료 와이파이의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인터넷 강국에서 살다와서 그런가. 그런 부분이 너무 아쉬웠다. 스타벅스 와이파이 시간을 모두 사용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점심도 맛있게 먹었고 후식으로 커피까지 딱 마셨으니 소화도 시킬 겸 쇼핑몰 옆에 있는 가구매장? 뭐 그런 곳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했다. 당장 오늘부터 플랫에 들어가서 살게 되니까 필요한 것들이 뭐가 있을까 탐방이라고 해야 할까. 한마디로 설명하면 조금 비싸고 질 좋은 다이소의 느낌이었다. 정말 많은걸 팔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생활용품도 있었고, 문구용품도 있고 옷도 있었다. 구경하기 좋아하는 우리가 시간 보내기 딱 좋은 장소였다. 안내데스크에 캐리어까지 맡겨놓고 구경을 시작했다. 오늘따라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가는 걸까. 구경을 다 했는데도 아직 시간이 남았다. 쉬는 타임으로 맥도날드에서 초콜릿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뉴질랜드 서점을 구경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서점 가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했던 우리는 뉴질랜드에서도 변함없이 서점을 찾았다. 하지만 여기는 뉴질랜드인걸. 정말 온통 영어뿐인 서점에서 내가 볼 수 있는 책은 동화책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책 냄새가 나는 것도 좋았고, 새 책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것도 좋았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플랫으로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왠지 신나고 가벼웠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집에 입성했다. 아직은 이불 시트도 없이 휑하지만 창문도 크고 풍경도 좋고 방도 너무 깨끗했다. 방을 허겁지겁 둘러보고 짐을 둔 후 2번 차와 3번 차 구경하기 위해 출발했다. 2번 차를 구경하기로 한 곳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1번 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차였다. 차주인 언니가 오클랜드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급하게 처분한다고 했다. 3번 차 주인 분과 약속을 잡지 않았다면 바로 샀을 정도로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보러 간 3번 차. 3번 차는 한국 사이트에서 찾게 된 중고차였다. 길을 헤매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우리를 태우러 오신 친절한 한국 주인분이셨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놀랍게도 나도, 차 주인분도 음악을 전공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대화가 더 잘 통한 것 같았다.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궁금한 것들을 많이 물어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결혼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신혼부부라는 이야기도 나눴다. 그리고 오늘이 추석인데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우리를 위해 따뜻한 잡채와 제육볶음을 준비해주시며 저녁식사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김치도 싸주셨는데 정신없이 나오는 바람에 두고 나왔다.
우리는 3번 차, 한국분과 거래를 하게 되었고 우리가 원했던 가격선에서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좋은 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차뿐만 아니라 앞으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새로 들어온 플랫에 밥솥이 없다고 하니까 집에 남는 거 있는지 찾아봐주시겠다고까지 하셨다. 그렇게 이제 우리 차가 된 파란색 차, 빠방이. 아직 보험을 들지 않은 데다가 차선도 반대방향이라 조심조심 차를 몰아서 마트에 들렸다 숙소로 돌아왔다. 친절한 3번 차 원래 주인분께서는 혹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시며 우리 차 뒤로 차를 끌고 함께 동행해주셨고, 우리가 무사히 마트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시고 집으로 떠나셨다. 정말 다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마트에서 당장 필요한 것들을 사 왔다. 당장 오늘부터 자야 하니까 침대커버 정도. 그리고 책상이 하나도 없어서 쿠션과 함께 책상이 붙어있는 쿠션 책상을 사 왔다. 그래도 신혼인데, 열흘을 따로 자다가 오늘 아주 오랜만에 같이 누웠다. 신랑은 벌써 꿈나라로 갔다. 당분간은 집이라고 하기는 뭐한, 우리의 방을 잘 정리하며 지내지 않을까 싶다. 이것저것 한 것이 많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