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구하기의 시작
뉴질랜드에서의 아홉 번째 날
한국은 오늘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나 보다. 우리도 아침에 양가 부모님께 추석인사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했다. 모두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길. 오늘은 이력서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로 한날이다. 정말 너무 두려웠던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늘이 시작된 것이 너무 마음을 어렵게 할 정도로 부담이 가득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8시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숙소에서 10시 반에는 출발을 했어야 했는데 씻고 오니 10시가 되었다. 어김없이 아침을 챙겨 먹었다. 오늘은 시리얼과 요거트. 시리얼 없었으면 어떻게 할뻔했나 몰라 정말. 아침을 먹고 덜덜덜. 이력서를 돌리러 출발했다. 여기서는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Cover Letter, CV라고 한다. 우리의 CV를 챙겨서 출발하기 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검색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나 일 구하는 중인데, 혹시 자리 있니?' 생각만 해도 무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일주일 사이 뉴질랜드는 날씨가 많이 풀린 것 같다. 한국은 아직 덥다던데, 여기도 곧 더워질 것 같다. 좋은 날씨에 설레면서도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 그래도 사진 한 장 남겼다. 오늘도 많이 걸어야 할 것 같아서 무리하지 않고 운동화를 신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우리가 살게 된 Ricarton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내려서 따로 움직이자고 제안했다. 신랑한테. 같이 다니면 서로 의지하니까 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같이 있는 게 서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면서 그런 무서운 제안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가 원한 정류장에서 내려서 CV를 돌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2군데, 신랑은 3군데에 CV를 제출했다. 나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많은지라 한국식당에서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대로 신랑은 부딪히더라도 영어, 영어! 이런 느낌이었다. 내가 CV를 제출한 두 군데 중 한 군데는 한국음식점이었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 고모가 밥을 사주신다고 먹고 싶은 거 말하라고 해서 뉴질랜드에는 없을 것 같은 감자탕을 배 터지게 먹었는데 여기도 판다. 메뉴를 보니 감자탕, 제육볶음, 사골 국밥, 삼겹살 등등 없는 게 없는 한국음식점이었다. 심지어 노래방도 함께 있었다. 문 앞에서 10분을 망설였다. 한 손에는 이력서를 들고 덜덜 떨면서 세뇌하기 시작했다. 들어가자, 문을 열자, 들어가자, 문을 열자. 정말 마음을 굳게 먹고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 CV를 제출했다. 지금은 일하는 사람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력서를 두고 가면 필요할 때 연락을 주시겠다고 했다. 아쉬운 대로 나의 첫 CV 돌리기는 성공이다. 두 번째로 CV를 돌린 곳은 한국의 김밥천국과 같은 뉴질랜드 스시집이다. 뉴질랜드 여행이나, 워킹홀리데이를 와본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리게 된다는 스시집.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을 구한다고 붙여놓은 것도 아니었고 알바를 구한다고 사이트에 올린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그냥 무작정 들어갔다. 들어가서 제일 착하게 보이는 사람을 눈으로 스캔한 다음, 익스큐즈미.... 영어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반응이 좋았다. 매니저라는 분이 나오시더니 좋다, 좋다 하면서 내일 연락 주겠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오자마자 신랑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쉽게도 신랑은 세 군데 정도 CV를 돌렸지만 안 구한다, 미안하다는 얘기만 듣고 퇴짜 맞았다고 했다. 신랑이 너무 속상해하면서 풀이 죽어있었다. 정말 뭐라고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풀이 죽어있는 신랑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에이, 밥이나 먹자 하고 신랑이 먹고 싶은 음식점으로 향했다. 햄버거를 좋아하는 신랑은 오늘도 햄버거를 선택했다. 파인애플이 들어간 햄버거였다. 비주얼이 마음에 들었다. 파인애플도 있고, 야채도 많고. 맛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기분이 좀 풀어졌나 신랑 눈치를 보던 그때 신랑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뉴질랜드 번호로 전화 올 곳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신랑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신랑이 갑자기 신랑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신랑에게 물어보니 퇴짜 맞고 우울해서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인터넷에 올라온 구인구직 글을 보며 연락을 했다고 한다. 한국인이 하는 스시집에. 그런데 그새 거기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면접 보러 오라고. 신랑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내 기분도 좋아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신랑은 면접시간을 정하고 면접까지 보러 다녀왔다. 결론적으로 신랑은 2016년 9월 16일 금요일부터 스시가게에서 풀타임 잡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어를 쓰는 가게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신랑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장이라서 한다고 했어. 가장이 아니어서 돈걱정이 없었으면 한국인이 하는 스시집 안 했을 거야.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 그렇지만 어쩌겠어. 우리 둘이 살아남아야 하잖아. "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눈물이 날뻔했다. 갑자기 외국에 와있는 것이 확 와 닿는 순간이었다. 오후에 나에게도 전화가 왔다. 내가 오늘 CV를 돌린 스시집에서. 토요일에 2시간 정도 일을 해보고 결정하겠다는 전화였다. 그날 일을 잘하면 나도 풀타임 잡을 구하는 거고, 그날 일을 못하면 또다시 구직난에 들어가게 되는 거다. 그렇게 우리의 CV 돌리기는 마무리되었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은 오늘 하루. 저녁을 해먹을 힘이 없어 3분 요리 같은 것들을 사서 저녁을 챙겨 먹었다. 힘들었지만 잊지 못할 하루가 끝났다.
*나의 C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