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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May 12. 2023

[코츠월드 여행] #코츠월드 여행의 시작(2)

브리스톨_클리프톤 현수교

우리는 브리스톨에 3박을 머물렀는데, 그 중 이틀은 브리스톨 근교로 당일여행을 다녀왔다. 결국 우리가 브리스톨을 구경한 것은 첫날과 마지막날 뿐이었다. 첫날 구경한 것은 브리스톨 첫번째 포스팅에서 이야기했고, 오늘은 브리스톨을 떠나는 날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브리스톨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갔던 곳은 브리스톨의 명물, 클리프톤 서스펜션 브릿지(Clifton Suspension Bridge; 클리프톤 현수교)이다. 



"브리스톨에 실망했어도 이 다리만큼은 보고 가야하지 않을까?"

"응 맞아. 워낙 유명한 곳이니까 가보자!"


앞선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브리스톨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느낀 브리스톨에 대한 인상과 감정은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렇게 실망한 우리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브리스톨을 둘러보기보다 근교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브리스톨을 떠나는 날, 그래도 브리스톨이 자랑하는 명소는 봐야하지 않겠냐면서 클리프톤 서스펜션 브릿지로 향했다. 이 다리는 브리스톨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꼭 들르는 곳으로, 이 다리를 보기 위해 브리스톨을 찾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도대체 어떤 다리이고, 어떤 모습이길래 그렇게 유명한 것일까. 우리는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다리로 향했다. 


클리프톤 다리는 브리스톨을 가로지르는 1864년에 에이본 강(River Avon)위에 건설된 다리이다. 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이 다리는 브리스톨 시내와 외곽을 연결하여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 위를 건너고 있다. 다만 차를 타고 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1파운드(약 1,600원)이라는 통행료를 내야하는데, 이 금액은 다리의 유지보수에 활용된다고 한다. 다리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비용을 징수하여 유지보수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출퇴근을 위해 이 다리를 매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합리할 수도 있을 듯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비교적 짧은 다리를 건너는데 매일 돈을 내야한다면 나 같아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이 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에이본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브리스톨 시내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 이런 이유로 돈을 내더라도 이 다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다만, 우리처럼 이 다리를 관광 목적으로 찾아와서 걸어서 건너는 것은 통행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클리프톤 다리로 곧장 향했다. 다리에서 가까운 곳에는 마땅히 주차할 만한 곳이 없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걸어가기로 했다. 스파이크 섬(Spike Island) 가장 끝자락 근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다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걸... 이때부터 계속 오르막이었다. 약 20분 남짓 걸어가는 길이 모두 오르막이었고, 우리는 별안간 등산하는 기분으로 걷게 되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브리스톨 시내는 비교적 고도가 낮은 반면, 클리프톤 다리는 에이본 강 협곡 위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그 고도 차이를 모두 걸어서 올라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 한들, 다리 근처에는 주차장이 딱히 없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언젠가 끝이 보이겠지라는 마음으로 그저 묵묵하게 오르막을 걸어올라갔다. 

얼마나 올랐을까, 클리프톤 다리의 한쪽 주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주탑이 조금씩 가까워졌고, 이내 다리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 다리를 바라보는데 지금까지 올라온 고생이 순간적으로 사라졌고, 그 순간 다리의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에 빠져들었다. 그곳에서 잠시 다리를 바라보다가 언덕길을 다시 올라갔다. 조금만 더 오르면 다리와 연결되는 도로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다리 위를 건널 수 있다. 우리는 다리 위를 걸어가다가 주변을 둘러봤는데, 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장관이었다. 클리프톤 다리가 높은 위치에 있어서 브리스톨 시내 모습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에이본 강과 브리스톨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다가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리의 높이를 체감하면서 아찔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최대한 아래를 보지 않은 채 다리를 건너려고 했지만, 눈 앞에 들어오는 풍경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이리저리 돌아가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래를 보게 된다. 그러면 또 화들짝 눈길을 끌어올린 채 다리 위를 다시 걸었다.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니까 다리를 다 건너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다리이긴 하지만 다리가 그렇게 길지는 않아서 걸어서 건너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다리를 다 건넌 후에야 비로소 마음 편하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가물어서 바닥의 진흙이 다 드러난 에이본 강과 그 강이 흘러서 만나게 되는 브리스톨 시내의 모습을 조금 더 세세하게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강에 물이 가득 흐르는 모습을 봤었는데, 오늘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다소 아쉬웠다. 강 주변으로 펼쳐지는 녹색 가득한 숲과 푸른 강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꽤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다리 양 쪽 풍경이 완전히 다르네. 이쪽은 온통 숲이야."


도시 감상을 끝낸 우리는 길을 건너서 다리 반대편으로 다서 걷기 시작했다. 길 건너편에는 숲으로 가득했고, 숲 사이로 에이본 강 협곡이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다리 위에는 1파운드의 통행료를 낸 차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다리 폭은 꽤 좁아서 차 두 대가 조심조심 지나쳐야 했다. 그 차들을 보면서 통행료까지 냈는데도 그렇게 빨리 가지 못하는 운전자들을 마음 속으로 위로했다. 반대편에서 다리를 건너다 보면 멀리 성처럼 생긴 하얀 건물이 보인다. 절벽 위에 멋드러지게 지어진 그 건물을 바라보면서 비교적 빠르게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오면서 한번 봤던 풍경이기 때문에 굳이 멈춰서서 둘러볼 필요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다리를 다 건넌 우리는 절벽 위에 지어진 하얀 건물을 향해 오르막을 올랐다. 다리에서 이 건물까지는 약 5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여기가 다리 전망대네! 여기서 보니까 다리 진짜 멋있네." 

우리가 올라간 건물은 클리프톤 전망대(Clifton Observatory)이다. 건물에 전망대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건물까지 가기도 전에 이미 다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 포인트를 만나게 된다. 언덕을 거의 다 오르면 왼쪽으로 조금씩 전망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내 우리 앞을 가리던 나무들이 모두 사라지고 클리프톤 다리를 비롯한 에이본 강 협곡, 그리고 그 주변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모습이 우리 눈 앞에 펼쳐졌다. 가까이서 다리만 오롯이 바라볼 때에는 다리가 정말 웅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곳에서 다리를 내려다 보니까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다리를 내려다 본 자리는 다리의 웅장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와 광할함이 한 눈에 조망되는 조망 포인트였다. 그 포인트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그곳에 우리가 아래에서 봤던 굴뚝처럼 생긴 하얀 첨탑이 있는 건물이 있다. 그 건물이 바로 클리프톤 전망대이고, 건물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우리는 건물 주변으로 잘 조성된 잔디밭을 서성였다. 잔디밭 위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조용히 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스런 커플도 있었다. 건물 주변을 관찰하던 우리는 자그마한 건물 입구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매표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두 개의 표를 판매하고 있었다. 하나는 전망대로 올라가는 표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 지하로 내려가는 표이다. 우리는 이미 다리 전망이나 주변 전망을 봤기 때문에 전망대로 올라가지는 않기로 결정했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표만 따로 구매했다. 이 표는 거인의 동굴(The Giant's Cave)이라는 이름으로 절벽 한가운데 뜬금없이 만들어져 있는 일종의 발코니로 가기 위한 것으로 좁고 어두운 계단을 꽤 많이 내려가야 했다. 이곳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그저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덥석 표부터 구매한 우리는 왜 미리 알아보지 않았을까하는 약간의 후회스런 감정을 가진 채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갔다. 



"여긴 자연 그대로의 동굴이네. 완전 좁고 가파르고 어둡고. 다 내려가면 어떤 풍경일지 궁금해지는데?" 

우리는 이 동굴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아보지 않고 갔기 때문에 이 동굴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좁고 가파르고, 정돈되지 않은 암벽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자연의 흔적을 최대한 남겨두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내려가는 내내 자연 느낌을 정말 잘 드러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 동굴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 동굴을 내려가는 길이 왜 그렇게 험난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을 거의 손대지 않은 채, 계단만 만들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동굴을 따라 내려가는 내내 자연 동굴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동굴 이름이 거인의 동굴인 것은 이곳에 브리스톨 지역의 거인인 고람과 빈센트(Goram and Vincent)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비좁은 동굴에 어떻게 거인이 살았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 한 명 오르내리기도 비좁은 공간에서 거인이 살았다는 전설이 그렇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계단을 다 내려가자 외부 전경이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아파트의 발코니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공간이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한 열명 남짓이면 공간이 꽉 찰 정도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사람이 없었다. 그 공간에서 밖을 바라보면 아래로는 에이본 강이 흐르고 양 옆으로는 절벽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절벽을 이어주는 클리프톤 서스펜션 다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위에서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지만 높이 차이 때문인지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절벽을 뚫고 내려와서 절벽 한가운데에서 이런 풍경을 감상한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더군다나 그 공간에 있는 사람이 우리뿐이라서 더욱 조용하면서도 아늑했다. 아래 강이 흐르는 소리까지 들렸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말라버려 진흙이 다 드러난 강은 흐르는 소리조차 들려주지 않았다. 



그곳에서 감상을 마친 후에 좁은 계단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전망대 건물 주변 잔디밭을 다시 한번 서성이다가 우리는 우리의 길을 이어가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차로 가는 길에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주탑 사이로 다리가 보였다. 다리 위로 지나다니는 차들과 자전거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누군가는 우리처럼 다리를 건널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전망대로 올라갈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의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브리스톨의 상징이라고도 여겨지는 클리프톤 서스펜션 다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브리스톨 시내 모습에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다리는 멋있고 웅장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정말 아름다웠고, 절벽을 뚫고 내려가는 거인의 동굴은 매우 흥미로웠다. 한 장소를 방문했지만 시간과 공간에 따라 여러 감정이 교차했던 순간이었다. 다음에 브리스톨을 또 오게 될까. 만약에 오게 된다면 이 다리는 분명히 다시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브리스톨을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이 다리는 꼭 다녀가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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