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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May 05. 2023

[코츠월드 여행] 코츠월드 여행의 시작

브리스톨(Bristol)

잉글랜드 서쪽에는 웨일즈와 경계를 이루는 거점도시가 하나 있다. 이 도시는 바로 브리스톨(Bristol)로, 콘월을 드나드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기도 해서 우리가 코츠월드 여행의 시작 지점으로 선택한 곳이다. 영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큰 도시기도 하고, 이곳에 가볼만한 곳이 많을 것 같아서 우리는 브리스톨에서 3박 4일을 머물렀다. 오늘은 우리의 코츠월드 여정의 시작점, 브리스톨에 대한 첫번째 이야기이다. 



"오래 전부터 브리스톨 가보고 싶었는데! 어떨지 궁금하네." 

"그냥 평범한 큰 도시야. 너무 큰 기대는 하지마." 


나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 브리스톨을 두 번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되려 영국인인 짝꿍은 브리스톨을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다. 브리스톨 공항을 이용한 적은 있어도, 브리스톨에 머물거나 시내로 들어간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런 짝꿍은 브리스톨에 대한 큰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영국 서부의 거점 도시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아름다운 무엇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브리스톨이 다른 영국 도시와 별반 다를 바가 없고, 그냥 평범하게 사람 사는 큰 도시라면서, 짝꿍의 기대치를 조금은 낮추려고 했다. 기대치가 높으면 그만큼 실망할 가능성도 큰 법이니까 말이다. 그저 짝꿍에게 실망이란 감정이 깃들지 않기를 바랐다. 


콘월을 출발한 우리는 약 3시간 후에 브리스톨에 도착했다. 브리스톨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교통체증 속에 갇히자 비로소 우리가 큰 도시에 왔음을 실감했다. 계속 콘월이라는 시골에만 머물다가 차도 많도 사람도 많은 큰 도시에 오니까 뭔가 어색했다. 브리스톨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한 서울에서 살고 있음에도 약 3주 간 콘월에 머무르는 기간에 도시의 느낌을 많이 잊었던 것 같다. 북적거리는 길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의 활력을 느끼기도 했지만, 하염없이 밀리는 도로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내 우리는 한적한 콘월을 떠올렸다. 교통체증을 뚫고 시내에 위치한 우리 숙소에 도착했다. 브리스톨 역 뒤편에 위치한 우리 숙소는 에어비엔비를 통해 예약했는데,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서 비교적 깨끗하고 시설도 좋았다. 위치도 브리스톨 역이랑 가까워서 시내도 멀지 않았고, 기차 타고 근교를 다녀오기도 편했다. 



"오랜만에 문명을 경험하네."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고 도심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영국 특유의 오래된 건물과 현대식 건물들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나타났다. 낮은 건물 뿐이었던 콘월이 비해 비교적 높은 건물도 많았고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들도 볼 수 있었다. 짝꿍은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문명' 속으로 다시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콘월은 워낙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탓에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었다면, 브리스톨은 서울의 삶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문명과 함께 하는 시간이 될 것이었다. 시내로 향하는 길에 에이본 강(River Avon)강을 건넜고, 도시의 모습을 감상하면서 조금씩 시내로 접어들었다. 시내로 다가갈수록 사람도 많아졌고 차들도 많아졌다. 


시내로 접어들자마자 우리가 찾아간 곳은 오래된 건물이 가득한 브리스톨 올드 타운(Bristol Old Town)과, 그 안에 있는 유명한 시장인 성 니콜라스 시장(St. Nicholas Market)이다. 기대감을 않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우리의 기대는 와장창 무너졌다. 시장은 너무도 한적했고, 장사하고 있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평일이라 그랬던 것일까, 예상과 다른 모습에 우리는 서둘러 시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올드타운을 벗어나서 신시가지로 향했다. 신시가지에 접어들자 차들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훨씬 많아졌다. 이곳은 차들이 다니지 않는 보행자 전용 구간이기 때문이다. 신시가지는 영국의 다른 도시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브리스톨만의 특색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곳에 있는 상점이나 거리 모습은 영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브리스톨 시내에 실망한 우리는 시내를 뒤로하고 근처에 있는 캐슬 공원(Castle Park)으로 향했다. 이 공원은 시내와 에이본 강 사이에 있고, 브리스톨 시민들에게 만남의 장소나 쉼터의 공간이다. 그리고 도심에 있는 꽤 큰 공원으로, 안에는 성처럼 생긴 건물도 있고 공원에서 바라보는 에이본 강 풍경도 나쁘지 않아서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비록 날씨가 흐리긴 했지만 공원 안에는 우리처럼 휴식을 취하러 온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우리도 여행객이 아닌, 브리스톨 시민인 된 것처럼 그들처럼 잔디밭 위에 앉았다. 


"역시 우리는 자연 친화적인가봐. 오랜만에 도시에 왔는데도 결국 자연을 찾아오네." 


이곳에 앉아서 우리는 브리스톨에서 3박을 하는 동안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했다. 브리스톨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도착한 짝꿍은 브리스톨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래서 우리는 브리스톨 근교로 당일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정했고 지도를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내 당일 여행을 다녀올 장소를 정했고, 다음날과 그 다음날까지 브리스톨을 잠시 나갔다 오기로 했다. 그리고 브리스톨 시내 구경은 오늘과 브리스톨을 떠나는 날만 하기로 했다. 브리스톨에서 3박을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들긴 했지만, 숙소를 모두 예약해 놓은 상황이라서 떠나는 날짜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의 방안을 찾았던 것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할 예정이다. 



그래도 이왕 브리스톨에 머물게 된 우리는 브리스톨 시내를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그러면 뭔가 재밌는 거라든지, 브리스톨만의 특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브리스톨을 가로질러 흐르는 에이본 강을 따라 걷기도 했고, 도심 속으로 다시 한번 들어가서 인파 속에 파묻혀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브리스톨만의 특징이 딱히 눈에 띄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도시와 그 모습이 당연히 다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르지만, 우리가 영국의 다른 도시에서 봤던 모습들과 비교하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세하게 다른 부분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기는 했지만 브리스톨에 매료될만큼 우리를 사로잡는 무언가를 찾기는 힘들었다.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할 가능성도 커지나 봐. 브리스톨 진짜 기대했는데, 실망스럽네." 


브리스톨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 우리는 간단하게 저녁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브리스톨 마리나가 있는 스파이크 섬(Spike Island)까지 가볼까도 했지만, 이미 흥미를 잃어버린 우리는 브리스톨 거리를 더 이상 탐방하지 않았다. 사실 시간도 저녁 먹을 때가 되어가고, 우리도 숙소에서 쉬고 싶었기 때문에 아직 날이 밝긴 했지만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브리스톨을 떠나는 날, 브리스톨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인 클리프톤 서스펜션 다리(Clifton Suspension Bridge)와 더불어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그날 스파이크 섬도 잠시 들르기로 했다. 그렇게 브리스톨에서의 첫번째 날은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아마 브리스톨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고, 다른 도시와 별반 다를게 없다는 사실을 예상했다면 우리(특히 짝꿍)의 실망감을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브리스톨이 항구도 끼고 있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도시라서 다른 도시보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그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서 실망감이 찾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영국을 여행하면서 런던 근교에 있는 다른 도시를 당일로 여행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브리스톨을 추천하기도 한다. (물론 브라이튼이나 바스를 먼저 추천한다.) 런던에서 2시간 정도면 다다를 수 있고, 규모도 꽤 큰 도시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객이라면 브리스톨도 방문하기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에이본 강과 영국스러운 건물들이 가득한 구시가지 등은 볼 만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영국에서 꽤 오랜 기간을 머물렀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에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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