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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Jun 12. 2023

[코츠월드 여행] 에이본 강의 작은 마을

브래드포드 온 에이본(Bradford-on-Avon)


"브래드포드 온 에이본? 이름 참 길고 특이하네."

"근데 여기 너무 예쁜데? 별로 멀지도 않고, 우리 여기 갔다오자!"


앞선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브리스톨에 머무는 동안 근교로 당일 여행을 이틀 동안 다녀왔다. 지도를 보면서 우리가 갈만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다소 특이한 이름의 지명이 내 눈에 들어왔다. 브래드포드 온 에이본(Bradford-on-Avon). 이 장소에 대한 정보가 무지한 상태에서 나는 막연하게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Stratford-upon-Avon)을 떠올렸다. 스트랫포트 어폰 에이본은 버밍엄 근처에 있는 지역으로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장소로 유명하고, 나와 짝꿍이 다녀온 적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이 지역을 참 마음에 들어했고, 그래서 다소 긴 지명임에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지역과 비슷한 이름이 나타난 것이다. 그 이름을 보고 나는 짝꿍에게 이 지역 이름을 보여주면서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브래드포드 온 에이본이라는 지역에 갈 거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짝꿍이 무심결에 이 지역을 구글에서 찾아봤고, 지역의 설명을 읽었고, 사진을 봤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 다녀와야겠다고 바로 결정했다. 무심결에 찾은 장소이지만, 그 장소가 우리를 끌어당겼고 우리는 그에 응했다. 더군다가 브리스톨에서 기차로 20분 정도면 도착하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고, 그 사이에 바스가 있어서 브래드포드 온 에이본을 먼저 갔다가 바스까지 하루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 일정을 결정했고, 이날 바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이전 포스팅에서 다룬 것이다. 이번 포스팅은 우리가 바스에 도착하기 전, 오전에 갔었던 브래드포드 온 에이본이라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에게 생소한 이 지역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와! 진짜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 기차역도 너무 아담하고 귀여워!"

브래드포드 온 에이본 기차역에 도착한 우리는 역 건물을 나오자마자 감탄사를 내뱉었다. 기차역부터 주변 마을의 모습까지 온통 영국 고유의 전통 마을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차역은 정말 작은 건물이었는데, 그 건물마저 아담하면서 아름다웠다. 중심가로 걸어가는 내내 우리는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앞으로 코츠월드 여행기를 계속 써내려갈 텐데, 미리 언급하자면 우리는 코츠월드를 여행하는 내내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아'라는 표현을 정말 많이 사용했다. 마을이 그렇게 크지는 않아서 조금 걷다 보니 금방 중심가에 도착했다. 사실 중심가라고 해도 식당과 펍, 일부 상점이 전부일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오기 전에 사진으로 마을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보고 오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까 직접 눈으로 볼 때 느껴지는 감동이 훨씬 더 컸다. 


우리는 이 마을을 사진만 보고 왔기 때문에 마을에 대해 아는 것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그리고 중간중간 이 마을에 대해 찾아봤는데, 우연히 지도에서 발견해서 찾아온 이 장소에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었다. 이 마을은 이미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영국에서도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히는 곳이다. 한 조사 결과는 브래드포드 온 에이본이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위로 선정되기도 했고, 다른 조사 결과는 영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마을로 꼽히기도 했다. 그리고 한 언론사는 이 마을은 '바스 미니 버전'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이 마을은 영국의 역사를 담고 있으면서 아름다운 마을로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곳을 막연하게 지도만 보고 오게 되다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우리가 마을을 보고 가지게 된 첫인상은 이런 정보와 설명이 결코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아름다웠다. 



마을 중심가로 가는 길에 작은 공원 하나를 먼저 마주치게 된다. 이 공원 옆에는 에이본 강이 흐르고 있는데, 공원에서 바라보는 강 건너편의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무엇보다 마을 중심가로 연결되는 다리(타운 브릿지, Town Bridge)를 이 공원에서 볼 수 있는데, 한 눈에 보기에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다리이다. 우리는 이 다리를 건너서 마을 중심가에 도착했다. 마을 규모가 워낙 작아서 모든 장소에 금방 도착하게 된다. 기차역에서 중심가까지 쉬지 않고 걸어온다면 약 5분 남짓 걸릴 정도로 가깝다. 우리처럼 중간에 공원에 잠시 멈춰서기도 하고 마을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면서 가더라도 금방 도착할 것이다. 


"정말 조용하네. 일요일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서 그런가봐." 


마을 중심가는 고요하고 적막했다.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차들도 별로 다니지 않아서 마을이 정말 조용했다. 이곳까지 오는 기차 안에서 찾아본 정보에 따르면 이 마을에 여행객이 정말 많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마을 중심가에서 여행객을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가 이 마을에 도착한 시간이 일요일 오전이라서, 마을 사람들은 집에서 쉬고 여행객들은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마을에 있는 많은 상점도 문을 닫고 있었다. 고즈넉한 공간에 자리잡은 카페에는 한두 테이블에만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조명이 아름다운 골목길 식당은 영업 준비가 한창이었다. '마을 중심가가 이렇게 조용해도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마을은 숨죽이고 있었다. 우리는 시끄럽지 않고 평화롭게 마을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활기가 있는 마을도 보고 싶었는데 그 부분이 살짝 아쉬웠다. 



조용하긴 했지만, 마을 중심가는 영국 고유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우리는 중심가를 지나 마을을 한 바퀴 돌 요량으로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우리가 향한 곳은 기차역 근처에서 봤던 언덕 위 마을이었다. 브래드포드 온 에이본 기차역이 있는 지역은 지대가 조금 낮고, 에이본 강을 건너서 조금 더 가다 보면 비교적 고지대가 나온다. 고지대라고 해도 언덕을 5분 정도만 올라가면 될 정도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는 마을의 모습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우리는 언덕을 오르고 아름답고 중후한 멋이 가득한 골목골목을 지나 마을이 보이는 내려다 보이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바라본 마을은 너무 아늑하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세월을 한껏 머금은 주택들이 넓게 퍼져있고 그 사이사이 보이는 나무들이 싱그러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나무 사이사이 자리한 집들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 같았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우리는 한 장소에서 마을을 바라보고 길을 따라 걷다가 멈춰 서고 싶은 장소가 나오면 다시 멈춰서는 일을 반복했다. 언덕 위에 있는 길에는 건물과 건물 사이로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 많다. 따로 전망대라고 만들어져 있지는 않지만, 이런 공간에서 소소하고 편안하게 마을을 감상했다. 그러다가 어느 집 앞에서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과 마주쳤는데 그는 우리에게 방긋 웃으면서 여행 즐겁게 하라고 인사를 건넸다. 여행객이 많이 찾아오면 여행객이 싫증나고 다소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그렇게 웃어주고 살가운 인사 한마디를 건네는 그의 태도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이 마을 전체의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그 전에도 아름답고 멋진 마을이라고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의 웃는 얼굴과 따뜻한 인사를 대하는 순간 이 마을은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름답고 멋진 마을이 되었다. 이렇듯 비록 한 사람이지만,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운이 좋게도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을 만났고, 한결 따뜻해진 마음으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중후한 건물 사이로 이어진 길을 따라갔는데 어느 순간 우리 주변에 건물이 사라지고 공원과 숲이 나타났다.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 풍경에 우리는 다소 당황하기도 했고,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온 길을 되돌아가지 않았다. 그저 우리 앞에 난 길을 어느정도 가보고,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그 때 되돌아 가기로 했다. 같은 길을 두 번 가는 것보다 그래도 새로운 길을 탐방하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니까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맞는 길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기차역이 있는 마을 중심부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우리가 들어선 공원을 가로지르면 기차역 뒤쪽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지도를 보고 알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마음 놓고 편안하게 우리의 여정을 즐겼다. 

"우리 저 기차 타야했던 거 아닌가? 다음 기차가 언제 있으려나...?"


공원의 분위기는 마을의 분위기와 달랐다. 훨씬 더 평화로웠고 싱그러웠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청량함을 더했다. 사방이 온통 녹색이라서 눈과 마음이 편안해졌고, 우리는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갔다. 어느 순간 강을 건너는 다리가 나왔는데, 이 강이 바로 에이본 강이다. 강 주변으로는 숲이 무성했고, 강 위에는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 기차가 지나는 철교가 하나 있었는데, 타이밍이 좋아서 그 다리를 건너는 기차를 볼 수 있었다. 녹색의 기차는 숲 사이를 아름답게 지나갔고, 우리는 그 모습을 잠시 서서 바라봤다. 그런데 그 기차가 지나간 후에 우리는 저 기차를 우리가 탔어야 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이 마을 여행을 마치고 바스로 가는 것이 우리 계획이었는데, 저 기차가 바스로 가는 기차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얼른 앱에서 다음 기차 시간을 알아봤는데 바스 가는 기차는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에이본 강을 건넌 후에 조금만 더 가니까 꽤 넓은 공원 나왔다. 그곳에는 아이들 놀이터도 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잔디밭도 꽤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이 공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 중심가에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 여기에 몰려있는 것 같았다. 공원은 다른 공원과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공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특히 도시에 있는 공원과 비교하면 이 마을의 공원이 훨씬 차분했다. 그리고 주변에 현대식 건물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공원이 더욱 고즈넉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지만 이 소리는 공원 분위기에 활기를 더할 뿐,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을을 거니는 동안 미처 느끼지 못했던 마을의 활기를 비로소 느낄 수 있어서, 나와 짝꿍의 감정도 기분 좋게 올라왔다. 


이 공원에는 과거 곡식 창고로 쓰이던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제는 창고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사료로 그 역할이 바뀌긴 했지만, 공원 한복판에 이런 건물을 그대로 남겨둔 것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지역에도 많았을 창고 건물 중 하나로 치부하고 다른 목적을 위해 공간을 재창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 마을은 이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고 이제는 마을을 찾는 여행객이 한번쯤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 이렇게 공원에서 사람을 구경하고 역사적 건물도 보고 난 후에 우리는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기차역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기차 시간을 봤는데, 약 20분이란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 들렀던 작은 공원에서 봤던 에이본 강을 건너는 보행자 전용 다리를 잠깐 다녀왔다. 이 다리를 건너면 정말 오래된 교회가 나오고, 그 주변으로도 중후한 건물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자세하게 둘러보지는 못하고 기차역으로 돌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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