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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Jun 22. 2023

[코츠월드 여행] 동화 속 작은 마을

캐슬콤(Castle Combe)

브리스톨에서 머문 지 3일째 되는 날, 우리는 다시 한 번 브리스톨 밖으로 나갔다. 둘째날에는 앞선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브래드포드 온 에이본(Bradford-on-Avon)과 바스(Bath)를 다녀왔는데, 그 다음 날도 브리스톨 근교로 당일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이날 우리가 간 곳은 코츠월드(Cotswolds) 안에 있는 작은 마을이자,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명한 마을, 바로 캐슬콤(Castle Combe)이다. 



"코츠월드에서 예쁜 마을을 찾아볼까? 브리스톨 근처에 하나 정도 있으면 좋을텐데..." 

"음... 여기 괜찮아 보이는데? 브리스톨에서 30분 정도 걸리네!"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지도를 보면서 어디를 다녀올까 브리스톨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짝꿍이 구글에서 코츠월드에서 가볼만한 마을을 찾아보더니, 캐슬콤이라는 마을 한곳을 찍었다. 나는 얼른 이 마을을 지도에서 찾았고, 이곳은 브리스톨에서 불과 30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도 탐색을 그만두었다. 갈 곳을 한곳 정했으니, 더이상 지도를 보면서 탐색할 필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리스톨에서 머문지 3일째 되는 날, 우리는 차를 몰고 캐슬콤으로 향했다. 브리스톨에서 캐슬콤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고속도로인 M4 도로를 타고 가기 때문에 비교적 편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 이후, 캐슬콤 마을까지 들어가는 길이 시골길이긴 하지만 그래도 운전하는 데 어렵지는 않았다. 되려 한적한 자연 속에서 영국의 시골마을을 향해 운전하는 그 순간이 설레고 즐거웠다. 


캐슬콤 마을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커다란 주차장이 마을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말에는 꽤 많은 차들이 찾는다고 들었는데, 이날인 평일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주차장에 차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주차장에서부터 마을까지는 약 5~10분 남짓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순간은 항상 설렌다. 목적지에 대한 궁금증과, 목적지와 나와의 궁합이 어떨까도 생각하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나의 발걸음을 천천히 만들어주는 또 다른 내면이 있다. 그 내면은 목적지까지 가는 길도 여행의 일부이고, 그 과정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전해준다. 그리고 나는 많은 경우에 후자를 택하는 편이다. 그래서 설렘을 잠시 가라앉히고 여행의 과정을 천천히 즐기려고 노력한다. 캐슬콤 주차장에서 마을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빠른 걸음보다는 여유롭게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그리고 마을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자연 풍경과 그 사이사이 자리하고 있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예쁜 건물들이 캐슬콤 마을에 대한 설렘을 배가시켰다. 



"와... 여기 완전 동화 속인데? 영국에 이런 마을도 있었다니..." 


얼마 후, 우리는 캐슬콤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들어서면 중간에 교차로 역할을 하는 공간이 있는데, 우리 눈에는 교차로보다는 마을 중심에 있는 작은 광장처럼 보였다. 그곳에 서서 360도 돌면 마을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그 모습은 말 그대로 동화 속 또는 역사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광장 한쪽에는 외벽에 꽃들인 가지런히 걸려있는 펍/카페가 있었고, 벽 바로 아래 놓여있는 테이블에는 동화 속에서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커피나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그 맞은 편에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이 마을의 분위기에 걸맞게 이 교회에서도 유구한 역사가 느껴졌다. 우리는 교회 안을 잠시 둘러봤다. 이렇게 작은 마을의 교회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그래서 교회가 주는 특유의 엄숙하고 고요한 느낌이 훨씬 진해진다. 나는 믿는 종교가 없지만 교회나 성당, 또는 절과 같은 종교 시설을 갈 때마다 그 공간이 주는 엄숙한 느낌이 좋아서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종교에 관계없이 잠시 들렀다 가곤 한다. 그래서 캐슬콤에서도 정말 작은 교회였지만, 마음의 평화를 위해 잠시 교회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교회를 나와서 우리는 길을 따라 걸어내려갔다. 그 길을 따라 가는 사람이 여럿 있었고, 마을 끝자락에 있는 다리 위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리까지 가는 길 양 옆으로는 정말 오래된 영국 전통적인 집들이 늘어서 있다. 이렇게 오래된 집들이 잘 관리되고, 여전히 그 안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물론 우리나라도 오래된 한옥을 잘 관리하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외국에서 이런 모습을 보니까 새로웠다. 해외를 여행할 때 주로 가는 곳이 도시나 자연 환경이 아름다운 지역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외의 시골 마을을 둘러볼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영국의 가장 깊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캐슬콤과 같은 마을을 여행하는 이 순간이 신기하면서도 즐거웠다. 마을을 거닐면서 이리저리 둘러보는 와중에도 영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시골 마을을 보고 있다는 그 설렘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개울 위에는 돌다리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 돌다리 위에서 개울을 따라 지어진 집을 구경하고, 사진찍고 있었다. 하나같이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집이었다. 문 앞에는 각 집의 개성을 보여주는 장식이 있어서, 비슷한 형태의 건물이지만 소소하게 집집마다 차이를 찾아보는 것도 재밌었다. 이 건물에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그 의문은 머지않아 풀렸다. 우리도 다리 위에서 집과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집 앞으로 차 한대가 들어섰고 그 차의 주인이 어느 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알고 있을까. 그들이 동화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모르지 않을까. 우리가 동화 같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곳에 처음 왔기 때문에 이 마을의 아름다움과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산다면, 이 마을의 모습을 매일 보면서 살아간다면 이 마을은 더이상 우리에게 특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연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이처럼 관광객이 매일 이곳을 찾고, 그들이 살고 있는 집들을 보면서 사진을 찍는 이런 상황을 매일 겪으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매일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더욱이 이 마을에는 편의시설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작은 슈퍼에 가려고 하더라도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하루 방문하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잘 관리되고 보존된 아름다운 영국 전통마을이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거주민에게는 이러한 타이틀이 오히려 족쇄가 될 것이다. 여행객의 입장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 살고 있는 그들이 순간 부럽기도 했지만, 이내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Wow! 저 나무 정말 크네! 나이가 몇 살일까?" 


그럼에도 캐슬콤 마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는 돌다리를 뒤로 하고 다시 마을 중심으로 올라왔다. 광장(교차로)를 지나 교회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들어갔다. 그 길에도 영국 전통 모습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고, 이 집도 안에 사람이 사는 것처럼 보였다. 집집마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길을 계속 따라 걸었다. 그곳에 늘어선 집들을 모두 지나자 전혀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잔디로 뒤덮인 정말 넓은 공터가 있었고, 공터 위에는 거대한 나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역시나 역사를 머금고 있는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 건물은 바로 호텔이었다. 해리포터나 영국 역사 영화에 나올 법한 외관이었는데, 문득 하루 정도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는 브리스톨에 숙소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생각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사실 이 공터에 있는 이 나무는 세콰이어 나무로 캐슬콤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구글에서 캐슬콤 마을을 검색하면 이 나무의 모습이 꽤 많이 나오는데, 짝꿍도 이곳에 오기 전에 이 나무를 사진으로 이미 봤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이 공간을 처음 봤는데, 온통 초록색으로 가득 뒤덮인 풍경이 일단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다음 그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나무가 나를 압도했다. 그 옆에는 호텔에서 준비해 놓은 듯한 쉼터와 테이블 등이 놓여 있었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산책하고 있었다. 나무가 워낙 커서 사람과 테이블이 정말 작게 느껴졌다. 잠시 서서 관망하던 우리도 잔디밭 위로 올라섰다. 비가 스르륵 왔다 간 뒤라 시원한 물기를 머금은 잔디밭은 싱그러움이 극에 달했다. 잔디밭 위를 걷는 내내 기분 좋은 느낌이 내 몸을 감쌌다. 비가 내린 뒤에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했고, 물기 머금은 잔디밭은 상쾌했다. 



"이제 돌아갈까? 여기 너무 좋아서 돌아가기 싫다. 여기는 다음에 꼭 다시 오자!" 


잔디밭을 한바퀴 거닌 후에, 우리는 그 공간을 나와서 다시 마을 중심부로 향했다. 마을 중심부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고, 그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대중교통으로 캐슬콤을 가려면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 버스도 그렇게 자주 있는 편은 아니다. 한두시간에 한 대 정도 있기 때문에, 사실 이 마을에 대한 접근성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의미는 그만큼 이 마을이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캐슬콤 마을을 둘러보는 내내 이 마을이 가진 특별함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중심부를 지나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한없이 느렸다. 이 마을이 너무 좋아서 1초라도 더 오래 머물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너무 오래 걸어서 힘들었던 것일까. 아마 후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브리스톨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짝꿍의 정신은 캐슬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찍은 사진을 둘러보기도 하고, 마을에서 촬영한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했다. 우리는 이 마을은 다음에 꼭 다시 와보자는 다짐을 굳게 했다. 우리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참 여러 마을과 도시를 돌아다녔다. 도시와 마을이 가진 매력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캐슬콤은 우리가 영국에서 가봤던 그 어떤 장소보다 특별했다. 자연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수도 없고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마을이지만, 이 마을이 주는 분위기는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그 묘함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아서, '특별하다'는 단어로 묘사할 수밖에 없다. 다음에 영국을 여행할 때 이 근처를 지날 일이 있다면 캐슬콤은 꼭 다시 한번 들러서, 이날 우리가 느꼈던 특별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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