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랑곰 Mar 04. 2024

[스코틀랜드] 물이 흐르는 계단

넵튠의 계단(Neptune's Staircase)

글렌피난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한곳에 멈춰섰다. 이곳은 글렌피난으로 가는 길에 봤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러보기로 하고 그냥 지나친 곳이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면서 보기에도 흥미로운 장소라는 생각에 잠시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가 멈춰 선 곳은 바로 '넵튠의 계단(Neptune's Staircase)'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으로, 이름부터 이미 우리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했다. 그럼 넵튠의 계단이 어떤 곳인지 한번 살펴보자. 



"오오... 저기 뭔가 흥미로워 보이는데? 오는 길에 들러보자." 


우리는 글렌피난으로 가는 길에 물길이 길게 이어지고 양 옆으로 싱그러운 잔디밭이 있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때는 우리가 계획했던 목적지가 있어서 그냥 지나쳤는데, 그 모습이 계속 잔상이 남아서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우리는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따라 들어갔고, 그곳에는 우리의 예상보다 커다란 주차장이 있었다. 이 정도 크기의 주차장이라면 사람들이 꽤 찾아온다는 뜻일테고, 그만큼 흥미로운 장소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차장 크기를 보는 순간 이곳에 대한 우리의 기대감이 올라갔다. 전혀 계획에도 없던, 그저 단편적인 모습만 바라보고 들어선 곳, 그곳이 바로 넵튠의 계단이라는 장소이다. 


넵튠의 계단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긴 운하인 칼레도니아 운하의 일부 구간이다. 배가 다니도록 하기 위해 운하를 평평하게 만들다 보니, 곳곳에 낙차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 낙차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 바로 넵튠의 계단이다. 운하를 계단식으로 만들어서 각 계단에 수문을 설치하여 물을 가두고 내보내는 형식으로 수면 높이를 서로 맞춘 후에 배들이 통과하는 방식이다. 사실 칼레도니아 운하에는 이러한 계단식 운하 구조가 꽤 여러 군데 있다. 우리도 여행하면서 이곳 말고도 여러 군데서 목격했는데(앞의 글에서 언급한 코파치에 있는 것도 칼레도니아 운하의 계단이다), 그중에서도 이곳이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총 8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앞에서 보면 꽤 장관이다. 이곳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항공사진인데, 나는 드론이 없어서 항공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왜 넵튠의 계단일까? 이름 한 번 독특하네." 


처음에 이곳의 이름을 봤을 때 이름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왜 넵튠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을까. 넵튠이 해왕성을 의미하기도 해서 이곳의 이름을 해왕성의 계단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정말 많았고, 그 이름도 사실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해왕성보다는 넵튠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싶었다. 그 이유는 넵튠이 로마 신화에서 물과 관련된 신(바다의 신)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를 넘어 영국에서 가장 큰 운하 계단인 이 장소를 넵튠이라는 이름을 빌림으로써 상징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해본다. 하지만 바다의 신이라는 이름은 다소 거친 이미지가 느껴지는데 이곳 칼레도니아 운하는 거친 물결이 전혀 없었다. (운하에서 거친 물결이 일어날 리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름과 장소 사이에 약간의 괴리감이 있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그래도 한번 들으면 잘 각인되도록 이름을 잘 지은 것 같다. 


우리는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수문 하나하나의 높이가 꽤 높고 수문 간 간격도 좁지 않아서 8개의 운하 계단을 오르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열심히 운하를 오르다보면 오른쪽으로 멀리 웅장한 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산이 바로 영국에서 가장 높은 벤 네비스(Ben Nevis) 산이다. 가장 높다고는 하지만 해발 1,345m로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산보다도 낮은 높이이다. 하지만 독특한 모습을 가진 벤 네비스는 가장 높은 산이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그곳을 오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한다. 그 산을 보면서 조금 더 걸으면 운하 꼭대기에 다다른다. 그곳에는 운하 계단보다 조금 더 폭이 넓은 칼레도니아 운하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리고 반대편을 보면 우리가 올라온 넵튠의 계단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어딜 보더라도 참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이제 계단을 다시 내려가려는데 이 넵튠의 계단을 통과하고 있는 배가 있었다. 그래서 운하 계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볼 겸 자리를 잡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 계단이 작동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일단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완전히 정박해야 하고, 그 뒤에 수문을 열어 수면 높이를 맞춘다. 그리고 높이가 같아지면 배는 정박을 풀고 앞으로 한칸 나아간다. 그러면 뒷 수문을 닫고 배는 다시 정박해야 하며,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이렇게 글로 쓰니까 빠르게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는 정말 오래 걸렸다. 수문을 열고 닫는 시간도 짧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수면이 같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길었다. 실제로 찾아보니까 배 한척이 이 넵튠의 계단 8개를 모두 통과하려면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참... 급한 일이 있으면 배를 타고 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배가 통과하는 모습을 꽤 오랫동안 바라봤다. 수문 3개 통과하는 모습을 봤으니까 적어도 30분 이상은 그 자리에서 머물렀던 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라 더욱 흥미로웠기에 오랫동안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한 30분 정도 머물 것이라고 예상하고 도착한 이곳에서 1시간 넘게 머물러 있었다. 운하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넵튠의 계단이 어떻게 작동하고 배들이 운하 계단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옆에서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길어졌고, 그로 인해 우리는 다음 목적지에 생각보다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코틀랜드] 해리포터 기찻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