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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Feb 25. 2024

[스코틀랜드] 해리포터 기찻길

글렌피난(Glenfinnan)

코파치(Corpach)를 떠나 에일호(Loch Eil)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던 우리는 글렌피난(Glenfinnan)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정말 작은 마을이지만 이곳에는 넓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곳은 이미 차들로 거의 다 차 있었다. 이 마을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만큼 유명한 곳으로, 우리도 이곳을 목적지로 삼아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다. 이 마을이 왜 이렇게 유명해진 것일까. 오늘은 글렌피난이라는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와... 사람 많다. 하이랜드 들어온 이후로 여기에 사람이 제일 많은 것 같은데?"


글렌피난까지 오는 길은 정말 한적했다. 길가에는 가로수가 시원하게 이어지고, 양 옆으로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펼쳐진 데다가 달리는 차들도 별로 없어서 한적하게 자연을 만끽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글렌피난이라는 마을에 가까워지면서 차들이 많아지고 길가에 걸어다니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그렇게 글렌피난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은 버스와 승용차가 뒤엉켜서 정말 복잡했다. 주차장이 정말 넓었는데, 언뜻 보기에도 차를 댈만한 공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일단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운이 정말 좋게도 우리 바로 앞에서 차 한대가 빠져나갔고, 우리는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은 채 차를 댈 수 있었다. 차를 대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정말 사람이 많았다. 하이랜드에 들어선 이후로 가장 많은 차와 사람을 보게 된 장소이다. 그렇게 늦게 찾아오지도 않았는데,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이미 정말 많았다. 


그렇다면 글렌피난이라는 작은 마을에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곳이 영화 '해리포터'의 촬영지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반 촬영지가 아닌, 해리포터에서 증기기관차가 지나가는 기찻길이 있는 곳이 바로 글렌피난이다. 이곳은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짝꿍이 꼭 가보고 싶다고 했던 장소이다. 하이랜드 로드트립을 계획하면서 짝꿍이 가장 먼저 가겠다고 선택한 장소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산 속을 지나가는 오래된 기찻길 정도로만 생각했고,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글렌피난에 오기 전에 했던 나의 모든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일단 주차장에 꽉 들어차 있는 수많은 차들의 숫자부터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해리포터 명소라서 사람이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일단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전망대라고 쓰여져 있는 표지판을 따라갔다. 산길을 조금만 따라 올라가면 글렌피난 고가교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길을 올라오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꽤 많았다. 우리는 좋은 장소에서 글렌피난 고가교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기 위해 조금은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공간에 다리를 바라볼 수 있는 포인트가 꽤 여러 군데여서 복잡하다거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위를 열심히 둘러보던 우리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지만 전망이 좋은 장소를 발견했고, 얼른 그곳으로 이동해서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글렌피난 고가교를 바라보았다. 산 속에 있는 다리일 뿐이라고 생각한 나의 또 다른 예상 하나가 빗나갔다. 산 속을 지나가는 다리인 것은 맞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까맣게 빛이 바랜 돌다리는 그 자체로 중후한 멋이 가득했고, 녹색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 다리는 여전히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일반 기차가 이 다리를 지나는 것은 아니고 시간에 맞춰서 관광객용 증기기관차가 이 다리를 건넌다고 한다. 해리포터 영화 속 모습을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잠시 운영을 중단한 상태라서 못 보고 돌아왔지만, 이곳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기차 운행 일정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구글링 해보니까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3시 정도(정시가 아니라 이 즈음)에 기차가 이 다리를 지나간다고 하는데, 이는 언제든지 중단되거나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여행하기 직전에 다시 한번 알아보는 것이 좋다. 



"난 저 반대편 풍경이 너무 좋은데? 저기도 가보자!" 


글렌피난 고가교 전망대에서는 해리포터 다리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반대편을 바라보면 산과 물이 어우러지는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글렌피난 고가교에 빼앗긴 사람들의 관심을 쟁취하려는 듯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열렬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해리포터 다리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이 반대편의 풍경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곳의 모습은 넓은 호수가 길게 뻗어있고 그 양 옆으로 산이 이 호수를 호위하는 듯한 형상이다. 언뜻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듯한 풍경이지만, 나무가 많이 없는 산의 모습이나 호수 바로 앞에 우뚝 솟아있는 기념탑 같은 것들이 이 풍경을 이국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준다. 나는 호수 근처에 가보고 싶었다. 기념탑의 모습도 보고 싶었고, 고요하게 일렁이는 호수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망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길을 건너서 호숫가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글렌피난 고가교를 주목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이 많은 탓에 호수로 가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호수에 다다르기 전에 왼쪽으로 나타나는 좁은 산책로는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는 싱그러운 녹색으로 가득한 그 길을 잠시 따라가다가 다시 되돌아 나왔다. 그 산책로도 매우 매력적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호숫가에 더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잔잔하게 물결이 이는 실호수(Loch Shiel)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전망대에서 봤던 글렌피난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고, 그 뒤로 마법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눈 앞의 풍경이 선사하는 걸작을 마음껏 감상했다. 그러다 문득 배를 타고 호수를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시야 너머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그곳의 풍경은 또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바람이었다. 실호수 위를 떠다니는 배는 단 한 척도 없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다리 아래까지는 가보자.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보고 싶어."


그렇게 한동안 호숫가를 바라보던 우리는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그리고 차를 타고 이곳을 떠날 예정이었는데, 차에 가까워지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주차장을 건너 글렌피난 고가교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문득 우리도 그들을 따라가 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우리는 차를 그대로 지나쳐서 사람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넓은 잔디밭이 나오고, 정겨운 물소리가 들려오는 개울을 지나면 전망대에서 봤던 글렌피난 고가교가 눈 앞에 나타난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다리는 생각보다 거대했고, 훨씬 더 위압감이 있었다. 오래된 다리에서 느껴지는 중후함과 다소 투박한 겉모습과 높게 쌓아올린 다리의 높이가 이러한 위압감을 더했다. 산 사이를 빠져나온 기찻길은 유려한 곡선으로 이어져서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간다. 문득 이 다리 위를 증기기관차가 지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사진에서 보긴 했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상상 속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내 해리포터 기차 운영이 중단된 현실을 자각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글렌피난 고가교 주변으로 가면 여러 방면으로 사람들이 흩어진다. 언덕을 올라가서 다리 위를 보려는 사람들고 있고, 심지어 먼 길을 돌고 돌아 반대편 산 중턱까지 올라간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가까이에서 본 것으로 만족하며 돌아가기로 했다. 이미 이 다리는 충분히 봤기 때문에 굳이 더 올라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데 우연히 한국에서 여행오신 분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멀리까지 오신 분들을 마음 속으로나마 응원했다. 그리고 나와 짝꿍은 글렌피난 고가교의 감상에서 쉽사리 빠져 나오지 못했다. 특히,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짝꿍은 이 다리를 더 특별하게 감상했을 것이다. 해리포터의 워낙 유명한 장면을 촬영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짝꿍처럼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이 멀긴 하지만 한번쯤 찾아가 볼만한 장소이다. 해리포터 다리뿐만 아니라, 그 주변으로 펼쳐지는 자연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것으로 글렌피난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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