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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Aug 17. 2021

잔잔한 호수 위 기다란 출렁다리

파주 마장호수

나와 짝꿍은 주말이 되면 오전을 푹 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디론가 1박 이상의 여행을 떠나지 않는 이상, 늦게 일어나는 날이 많고 일찍 일어나더라도 어디론가 가기보다는 아침을 먹으면서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에 바람쐬러 나가는 날이 많은데, 그렇다 보니까 아무래도 서울이나 서울 근교를 많이 찾아가게 된다. 



"바람쐬러 갈까?"

"그래! 나가자! 근데, 어디?"

"서울을 벗어나면 좋겠는데..." 


이 날도 비슷한 루틴으로 흘러가는 일요일이었다. 평범하게 아침을 먹고 넷플릭스를 보면서 쉬고 있었다. 그러다가 밖에 나가자는 이야기가 동시에 나왔고, 우리는 어디를 갈까 검색하기 시작했다. 서울 도심의 빌딩 숲을 벗어나서 진짜 나무로 된 숲을 보고 싶었다. 일단 우리는 파주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운전하는 동안 차 안에서 짝꿍은 파주에서 가볼만한 곳을 열심히 찾아보고 있었다. 우리는 꽤 잘 맞는 여행 파트너이다. 


그렇게 한 10여분 동안 핸드폰만 열심히 바라보던 짝꿍이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그 사진 안에는 산과 호수가 있었고, 그 위에는 기다란 출렁다리 하나가 주탑이나 교각도 없이 매달려 있었다. 바로 마장호수 사진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최종 목적지를 결정했고, 나는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가 마장호수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세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늦은 오후로 접어드는 시간이라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고 차 댈 곳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장호수를 따라서 6~7개의 주차장이 있는데, 대부분 꽉 차 있었다. 길을 따라 주차장을 하나씩 살펴보았는데,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주차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호수 둘레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일단은 출렁다리에 가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다리 쪽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그렇게 5분 쯤 걸었을까, 짝꿍이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고 자석에 이끌리듯이 그곳으로 향했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나도 따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실체가 밝혀졌는데, 바로 카누와 수상자전거였다. 그중에서도 짝꿍은 카누를 타고 싶어했는데, 한번도 카누를 타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선뜻 타는 것에 동의했다. 갑작스럽게 발견한 카누 때문에 출렁다리 보는 것은 잠시 뒤로 미뤄두었다. 



처음 타보는 카누는 처음에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카누에 앉자마자 배가 물 속으로 쑥 들어갔는데 순간 가라앉을까봐 1차로 무서웠고, 물 위에 떠 있는 동안 수면이 카누와 너무 가까워서 2차로 무서웠다. 그래도 한 5분 정도 지나자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고, 카누가 생각보다 안정적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 이후부터는 짝꿍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주변의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경을 마음껏 즐겼다. 


항상 '나는 카리브해 섬 나라에서 자란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짝꿍은 처음부터 카누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평소 물과 친하고, 물만 보면 들어가고 싶어하는 짝꿍이기 때문에 물 위에서 하는 모든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바나나보트 같이 스피디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예외다.) 그래서 짝꿍은 카누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어린아이처럼 들떠있었다. 일단 짝꿍은 나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 


"배가 뒤집히거나 배에 물이 들어오면 어쩌지?"

"괜찮아. 구명조끼 입고 있잖아. 그리고 안되면 내가 헤엄쳐서 데리고 나갈게"


이럴 때 보면 짝꿍이 든든하다. 



카누 타는 시간이 끝나고 육지로 나왔다. 긴장이 풀리고 카누 안에서 꽤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음에도, 막상 육지로 나와서 두 발로 땅을 딛으니까 조금 남아있던 긴장이 마저 풀려버렸다. 이제 우리는 출렁다리를 보러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카누 타는 곳에서 출렁다리까지는 약 10분이 채 안걸린다. 커브 두 세개만 돌면 바로 다리가 보이는데, 가까이에서 다리를 보니까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더 아찔했다. 


꽤 기다란 다리 중간에는 아무런 교각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가운데 부분은 아래로 축 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건너다니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발걸음에 맞춰서 다리도 좌우로 흔들리는게 고스란히 눈에 보였다. 잠시 후, 우리가 그 흔들리는 다리 위를 걷고 있었다. 다리 중간에는 투명한 유리로 된 부분이 있어서 호수를 내려다 볼 수도 있었다. 다리에 들어서기 전에는 꽤 아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중간 정도 오니까 오히려 괜찮았다. 멀미에 약한 짝꿍은 한없이 흔들리는 다리에 멀미가 시작됨을 느끼지마자 나를 버리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다리 중간중간 사진도 찍으면서 천천히 건너온 그곳에 짝꿍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다리를 건넌 후에 우리는 호수 둘레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다리 위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오후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서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우리는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고즈넉한 호수를 마음껏 즐기면서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약 30분 정도 마장호수의 절반을 걸었다. 서울의 빌딩 숲을 벗어나 자연을 느끼고 싶었던 우리에게 파주의 마장호수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반나절 나들이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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