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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Aug 30. 2021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섬

강화 교동도

얼마 전, 짝꿍과 강화도로 짧은 휴가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강화도는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서울과 완연하게 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나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 싶을 때 찾는 곳이다. 그래서 이미 꽤 여러 번 강화도를 다녀왔었는데, 이번에도 짧은 여행지로 강화도를 택했다. 강화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서울로 오기 전에 갈 만한 곳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교동도에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짝꿍도 흔쾌히 가보자고 동의했다. 


교동도는 강화도 북단을 가로질러 가면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가 나온다. 교동대교를 건너면 우리나라 최북단의 섬, 교동도에 들어서게 된다. 교동대교는 2014년에 개통되었는데, 그 이전까지만 해도 접근성이 좋지 않고 북한과 가깝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섬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섬이었고, 덕분에 섬의 모습이 훼손되지 않고 잘 남아있는 곳이다. 지금까지도 교동도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면서 옛스러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 들어가도 되는 곳 맞아? 왜 총까지 메고 길을 막고 있는거야?"

"북한하고 거리가 가까워서 허가를 받아야 돼."

"이렇게 보니까 새삼 무섭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교동도에 들어가려면 출입허가를 받아야 한다. 교동대교를 향해 가다보면 군인들이 지키는 초소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임시출입증을 받아 들어가면 된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총을 메고 길을 지키고 있는 군인의 모습을 보는 것이 다소 무서웠나 보다. 평소에는 전쟁이나 북한에 대한 별다른 감정 없이 지내고 있는데, 막상 길을 통제하고 있는 군인을 보니까 새삼 한국이 분단 국가라는 사실을 실감한 듯 했다. 그렇게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교동대교를 건넜다. 



□ 북한 땅이 보이는 곳, 망향대


교동도는 크기로 보면 그렇게 크지 않다. 30분 정도면 차로 한바퀴 돌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작은 편이다. 그러면서도 교동도는 작은 공간 안에 꽤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우리가 첫 번째로 향한 곳은 교동도 최북단에 있는 곳, 그리고 북한 땅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 바로 망향대이다. 


망향대를 찾아가는 길은 쉬운 듯 하면서도 뭔가 쉽지 않았다. 지도에 교동도 망향대를 검색해서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순간 길에 있는 표지판의 안내와 엇갈리는 포인트가 나온다. 그럴 때 나는 지도보다는 길에 있는 표지판을 믿고 따라가는 편이다. 알고 보니까 지도가 안내하는 길은 조금 더 멀리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표지판을 따라간 덕분에 조금은 빠르게 도착했다. (불과 1~2분 차이긴 했겠지만...) 그리고 길도 동네 사이를 가로질러 가야하는 좁은 골목길이라서 운전에도 더욱 집중해야 하는 길이었다. 



망향대 주차장에 차를 대로 걸어오르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길을 바라보면 꽤 많이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보여서 짝꿍과 함께 살짝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한창 이 시기가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안 올라갈 수는 없으니까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고, 커브를 돌았다. 그랬더니 망향대가 거기 있었다. 주차장에서 망향대까지는 불과 2~3분만 올라오면 되는 거리이다. 


망향대의 규모는 크진 않다. 그래도 망향대를 한바퀴 둘러보면 북한의 모습, 한국전쟁의 모습, 우체통, 희망과 염원이 담긴 메시지 등 꽤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북한땅을 조금 더 가깝게 볼 수 있는 망원경도 있다. 이곳에서 북한땅까지의 거리가 워낙 가깝다 보니까 망원경을 통해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모습이 보인다. 분단되기 전까지만 해도 교동도의 주요 생활권이 강화도가 아닌, 저 너머에 보이는 곳이었다고 할 정도로 이 두 곳의 거리는 정말 가깝다. 정말 지척인데, 정말 가까운데, 그 가까운 곳을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새삼 내 가슴을 치는 순간이었다. 



□ 교동도의 중심, 대룡시장


망향대 다음으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교동도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룡시장이다. 대룡시장은 옛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방송에도 많이 소개된 곳이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서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는 이 대룡시장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대룡시장에 도착하기 전만 해도 우리는 꽤 활기 넘치고 다소 시끌벅적한 모습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우리 눈에 보인 모습은 조용함을 넘어 다소 적막함까지 감도는 공간이었다. 시장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간혹 물건이나 음식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뿐, 전반적으로 정말 조용한 시장이었다. 


시장은 정말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거나, 보수를 한 흔적이 많이 보이긴 했는데, 그러면서도 옛스러움을 버리진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일단 너무 좋았다. 그렇게 크지 않은 시장을 이리저리 걷다가 한 카페에 들어섰다. 그냥 갈까 하다가 날씨도 워낙 덥고, 조금 더 시장의 기운을 느껴보고 싶어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그러면서 카페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 날이 평일이어서 시장이 많이 조용한 거라고 했다. 주말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말 그대로 시장 분위기가 물씬 난다고 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지만, 그래도 시장은 시장다워야 제 맛인데 그 점이 다소 아쉬웠다. 그래도 친절하신 사장님 덕분에 편하게 쉬면서 이런저런 교동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젠가 주말에 이곳을 찾게 되는 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 해바라기 가득한 난정저수지, 연꽃 가득한 고구저수지


카페 사장님이 교동도 지도를 하나 주시면서 가볼만한 곳을 몇 군데 표시해주셨다. 그중 하나가 난정저수지였는데, 이곳을 설명해 주시면서 이때까지만 해도 해바라기가 피지 않았을 거라고는 덧붙여주셨다. 그래도 궁금하면 직접 가봐야 하는 법, 거리고 별로 멀지 않아서 우리는 난정저수지로 향했다. 


교동도 서쪽 끝에 있는 난정저수지는 해바라기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해바라기가 미처 꽃을 피어내지 못해서 그냥 그곳의 풍경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곳을 바라보면서 바라기가 만개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내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서,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아서 해바라기가 가득한 난정저수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리고 우리는 교동도를 빠져나오기 전에 고구저수지에 잠시 멈춰섰다. 교동도를 들어가면서 이곳에 연꽃이 가득한 모습을 보고 들어갔는데, 그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였다. 차를 세우고 연꽃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들어갔다. 조용한 저수지 한켠에 연꽃이 가득했다. 이 때에는 연꽃도 봉우리만 내밀고 있을 뿐, 완전히 피어내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연꽃 봉우리가 가득 펼쳐져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연꽃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그곳에 정자 하나가 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 올라가서 한참동안을 앉아있었다. 연꽃은 아름다웠고 저수지는 고요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람소리, 새소리 등 자연이 주는 소리 뿐이었다. 바로 옆에 차도가 있었는데, 다니는 차도 별로 없어서 차소리 조차도 많이 들리지 않았다. 자연이 주는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곳에 가만히 눈을 감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고구저수지를 끝으로 교동도를 빠져나왔다. 도시보다는 느리지만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가는 곳, 그러면서도 과거를 잘 간직한 곳, 또한 아름다운 자연을 한없이 내어주는 곳, 교동도는 그런 곳이었다. 그저 서두를 것 없이,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고 있었다. 교동도는 아름다웠고 편안한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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