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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Jan 05. 2021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 월미도

아픈 역사, 찬란한 지금

가까울수록 소홀하다. 


오늘은 인천에 대한 여행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포스팅을 하기 전에 나의 다른 블로그를 살펴봤는데 지금까지 인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곳이고, 실제로도 지금까지 꽤 많은 곳을 다녀왔는데 한 번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가장 가까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소홀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이라도 가까울수록 오히려 더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야할 것 같다. 



짝꿍과 함께 인천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우리가 인천에서 찾아간 곳은 월미도였다. 짝꿍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내가 처음으로 데려갔던 곳이 월미도였는데, 그 추억을 되새길겸 다시 한 번 찾은 것이다. 그 때에는 워낙 바다를 좋아하는 짝꿍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서 가장 가깝게 갈 수 있었던 월미도를 갔었는데, 정말 무더웠던 8월이었다. 밖에서 오랫동안 걷지도 못할 정도로 무더워서 편의점으로 피신하고 그랬었는데, 이번에 찾은 월미도는 정말 추웠다. 



추웠던 월미도


워낙 추웠던 어느 날, 짝꿍과 월미도를 찾았다. 기온 자체도 워낙 낮긴 했지만, 바다바람이 더해지는 추위는 손이 시려서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할 정도였다. 사진 한두 장 찍고, 주머니에 손을 한참동안 넣고 있어야 했던 강추위를 뚫고 월미도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 월미도 문화의 거리를 바라보는데, 이번에는 마음이 추웠다. 우리가 갔던 날이 평일 오후이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월미도는 텅 비어있었다. 언제 가더라도 사람들의 북적임과 재잘거림이 있던 장소였는데, 전혀 볼 수 없었다. 


항상 돌아가던 디스코팡팡도, 그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많은 가게는 문을 닫고 있었고, 열려있는 가게도 손님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비어버린 월미도의 모습은 처음이라서 낯설었고, 슬펐다. 금방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1년이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일상이 아니었던 모습이 이제는 오히려 일상이 되어버렸고, 그 이전의 모습이 꿈 같았던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어디를 가더라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텅 비어버린 월미도의 모습은 그만큼 충격적이었고 많이 낯설었다. 



그렇게 우리는 월미도에서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다가 돌아왔다. 많이 춥긴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겨울에 바라보는 바다가 좋다. 겨울바다는 특히 더 싱그럽고 푸르다. 그리고 차가운 바다바람이 몸 속을 시원하게 관통하는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개운하다. 눈과 귀가 시원하고, 몸 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을 겨울바다를 보면서 받는다. 짝꿍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겨울바다에 대한 나만의 분명한 감상이 있다. 그렇게 월미도에서 올해 첫 겨울바다를 보고왔다. 


텅 비어버린 월미도와 가동하지 않는 분수광장을 지나서 돌아오는데 머리 위로 월미바다열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말도 많도 탈도 많았던, 말로만 듣던 월미도 모노레일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월미도 바다열차가 운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물론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이 모노레일이 월미도를 다시 북적일 수 있게끔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월미도 이야기


지금의 월미도는 젋은 사람들, 가족들이 많이 찾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이다. 작은 놀이공원과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매년 다양한 문화행사, 축제 등을 개최하여 밝고 활기찬 장소로 사람들이 즐겨찾는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월미도의 역사는 지금처럼 찬란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배경이 된 곳으로, 아픔도 많은 곳이다. 


한양과 가장 가까웠던 항구였던 탓에 인천은 수많은 서구 열강과 일본, 러시아 등이 당시 조선 또는 대한제국으로 진입하는 관문이었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건이 벌어졌는데 미국의 순양함이 월미도 앞에서 침몰하기도 했고, 일본의 함대가 인천 앞바다에 있는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여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전쟁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인천상륙작전이 월미도 앞에서 벌어졌다. 전쟁 이후 연합군과 한국군이 주둔하는 군사시설로 활용되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찬란함과 발랄한 생기가 있기까지 월미도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꿋꿋하게 견뎌왔다. 그 곳에서 묵묵하게 견뎌냈기에 지금의 찬란하고 활기가 넘치는 월미도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지난 아픔도 견뎌냈듯이, 오늘의 아픔도 견뎌내고 조금 더 싱그럽고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려본다. 그리고 그 날이 머지않아 찾아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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