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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녀작가 Jun 04. 2024

달팽이처럼

엄마작가

 남편과 산책하다 달팽이를 만났다. 풀잎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 마치 까만 열매처럼 보인다. 한 발 더 다가간다. 인기척에 놀란 듯 더듬이를 안테나처럼 세운다. 큰 더듬이 끝에 눈이 있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그 모습이 마치 여차하면 집으로 숨을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등에 지고 있는 동그란 집이 오늘따라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몸 하나 숨길 집을 지고 풀잎에 앉은 달팽이가 참 자유로워 보인다.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의 모습이다. 

 

 나도 달팽이처럼 살고 싶다. 집 하나 등에 메고 발길 가는 대로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풍경을 담으면서 느리게 살고 싶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배고프면 먹고 가볍게 산책하면서 마을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려도 보고, 가만히 누워 바람 소리를 들으며 흘러가는 것을 느끼고 싶다. 어릴 적 마당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바람을 느끼던 때처럼 눈을 감고 햇살을 느끼던 그때처럼 그렇게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나도 흘러가고 싶다. 

  

 오 년 후면 남편이 정년퇴직한다. 몇 년 전부터 남편은 퇴직 후의 삶을 위해 나름 준비를 하고 있다. 퇴직하고도 일을 더 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자격증 공부도 한다. 취득하고자 하는 자격증이 만만치가 않아 퇴직 전에만 따면 된다고 했다. 남편 계획대로 자격증을 취득한다면 우리 부부가 달팽이처럼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게 된다. 떠돌이 생활도 건강하고 체력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퇴직하면 바로 집을 나서야 한다.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떠돌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청년이 아니니 배낭에 텐트보다는 캠핑카를 타고 다니는 게 좋을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본 장면이 기억난다. 작은 트럭을 캠핑카로 만들어서 전국을 다니며 살던 중년 부부가 있었다, 여행하다 돈이 필요하면 일손 부족한 시골에 가서 일도 도와주고 생활비도 벌면서 다녔다. 일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정도 나누다 보면 떠돌이 생활도 즐겁다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 

  

 남편의 반응이 시원찮다. 끄덕이는 고개와는 달리 눈빛이 반짝이지 않는다. 마치 안 될 일에 힘 빼지 말자는 듯이 적당히 장단만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어릴 적 농사일 도와준 이야기를 꺼낸다. 고추가 익을 때 일손이 부족해서 부모님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단다. 그때 날은 덥고 눈은 맵고 다리는 아팠던 기억이 지금도 느껴진다고 한다. 매워서 땀이 더 많이 났는지 땀이 나서 온몸으로 매운 내를 느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울면서 고추밭에서 일한 기억은 생생하다고 그런 것이 농사라고 말한다. 난 할 말이 없어서 우린 연금이 있으니 쉬운 일만 하면 된다고 남편 눈치 보면서 말했다. 대답이 없다. 나도 말이 안 되는 말을 했다는 걸 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돈 받고 하는 남의 집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냥 여행만 하면 된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초록빛과 함께 살면 되지. 한 달 살기처럼 그렇게 살면 되지 않나.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남편이랑 둘이 나들이 갔을 때가 떠오른다. 서로 할 말이 없어 조용했던 시간을. 쫑알거려주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즐거웠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을……. 

  

 내겐 아직 오 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퇴직하기 전에 남편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아직도 달팽이는 그 자리 그대로이다. 주변에 다른 달팽이는 보이지 않는다. 혹시 저 달팽이도 혼자 다니는 게 그런 이유일까? 등에 숙제를 메고 일어서는 내가 달팽이 같다.          


     


#달팽이 #미니멀라이프 #캠핑카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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