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작가
모순이라는 말이 있다. 창을 뜻하는 모와 방패를 말하는 순이 만나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모순의 유래는 무기 상인의 말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창을 막는 방패와 모든 방패를 뚫는 창을 함께 파는 바람에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 생긴 것이다. 그런 창과 방패 같은 모순이 내게도 있다.
어느 날, 눈 주변에 있는 작은 점이 눈에 거슬렸다. 한 번 거슬리기 시작한 점은 거울을 볼 때마다 점점 크지는 느낌이었다. 더 커지기 전에 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왕 하는 김에 얼굴에 있는 점을 다 지우고 싶었다. 병원에 간 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턱선과 귀 쪽에 있는 작은 점까지 모두 없애버렸다.
사실 얼굴에 점이 많은 편은 아니다. 군대 간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점을 뺀 적이 있다. 막내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고 부모 모임을 처음 하던 날이었다. 모임에 참석한 엄마들은 나보다 열 살 이상으로 어린 엄마들이 대부분이었다. 말 그대로 얼굴에서 빛이 났다. 구김살 하나 없는 맑은 얼굴들뿐이었다. 그들의 깨끗한 피부가 거울이라도 된 듯 나이 든 내 얼굴이 자꾸 보여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모임이 끝나자마자 바로 점 빼러 병원에 갔다, 늦둥이 아들이 친구들 엄마보다 내가 더 늙어 보인다고 할까 봐 두려웠다. 점이 가득한 얼굴에서 내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얼굴에 있는 점이 마치 어머니 얼굴에 있던 주름살처럼 느껴졌다. 나도 아들처럼 어머니의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할머니 같은 어머니가 부끄러웠다. 학교에 들어가고 보니 시내에 사는 친구들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보다 훨씬 젊었다. 젊은 어머니를 둔 친구들이 할머니 같은 어머니를 보고 놀릴까 봐 겁이 났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 두려움이 늦둥이 아들 유치원에서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그날 나는 두려움을 털어내듯 병원에서 점을 태워버렸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막내아들이 청년이 되었다. 아들이 자라는 동안 얼굴엔 다시 점이 생긴 것이다. 이젠 점이 생겨도 신경 쓸 정도로 어린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내가 또 점을 뺐다니……. 더욱이 내 꿈은 캠핑카 타고 떠돌이 생활하는 것이다.
노년에 시골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게 꿈인 나는 햇살과 친해야 한다. 흙을 만지는 만큼 얼굴엔 점이 자랄 것이다. 전원생활을 한다는 것은 점도 주름살처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내가 또 점을 뺐다는 게 모순이다. 얼굴을 신경 쓰면서 전원생활을 즐긴다는 게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창과 방패를 판 장사꾼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전쟁터에서 창과 방패는 꼭 필요한 무기이다. 창을 휘두를수록 창의 위력을 알수록 두려움은 커지기 때문이다. 무서운 창을 상대방도 가지고 있기에 두려움은 배가 되지 않았을까.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방패라는 보호막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수완 좋은 장사꾼은 창과 방패를 같이 팔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도 얼굴을 신경 쓰는 나는 아이들과 그림책 놀이를 하는 사람이다. 어린아이들과 수업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어려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가끔 어린아이들이 내 나이를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너희들 엄마보다 많다고만 말해준다. 아이들이 정확한 숫자를 알려달라고 떼를 써도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래서일까, 어쩌면 그래서 점을 뺐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릴 때의 두려움이 나를 건드렸는지도.
평화를 위해 전쟁한다는 모순적인 상황처럼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모순을 만날 때가 있다. 살 뺀다면서 맛있는 음식 주문하는 것처럼,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일회용품을 쓰는 것처럼. 어쩌면 두려움을 품은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런 것은 아닌지. 모순덩어리인 나를 위해 변명 한번 해본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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