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작가
소나무가 멋진 솔뫼성지를 좋아한다. 소나무는 하나같이 휘고 뒤틀리고 구부려져 있다. 곧게 뻗은 나무가 아닌 위로 자랄수록 휘어진 나무끼리 서로 의지하며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런 소나무들도 오후가 되면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잔디밭에 사뿐히 눕는다. 소나무의 그림자가 누운 잔디밭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그 옆에 눕고 싶어 진다. 그 마음이 나를 성모 경당으로 데려간다.
소나무 사이에 있는 성모 경당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나도 그림자처럼 성모 경당 안에서 고단함을 내려놓는다. 작고 낮은 그곳에 들어가면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세상에 나오기 전 어머니 품에 있던 태아 때로 돌아간 착각에 빠진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어머니가 안전하다고 걱정하지 말고 쉬어가라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늘도 나는 마음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쉬는 중이다.
순간 때복이가 생각났다. 때복이는 딸이 품고 있는 손주의 태명이다. 다음 달이면 때복이를 만날 수 있다. 이제 나도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 딸이 때복이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었다. 잘 자라고 있는 때복이의 모습이 귀엽고 기특했다. 때복이의 사진을 볼수록 보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할머니가 되면 부모라는 책임감이 없기에 마냥 귀엽기만 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손주에게 성모 경당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태아 때처럼 움츠리고 싶을 때 편하게 움츠릴 수 있는 안전한 품을 내어 주고 싶다. 작고 아늑한 곳 너무 작아서 저절로 움츠릴 수밖에 없는 곳 그 움츠림이 편안한 곳,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팔을 펴고 싶어지고 다리도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해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리고 태아 때처럼 물구나무를 서도 괜찮다고 지지해 주는 엉뚱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아마 딸과 사위는 부모이기에 아이에게 가슴을 펴라고 할 것이고 팔다리에 힘을 주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똑바로 서서 보라고 하겠지. 부모니깐. 때복이를 위해 세상에서 좋은 것은 다 주고 싶을 것이고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애쓸 것이다. 그리고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아니,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고생할 게 훤하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책임감이 장수의 갑옷처럼 단단해져서 딸과 사위의 마음에 잔뜩 힘을 주게 될 것이다. 힘이 들어간 마음이 가끔은 때복이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편하게 쉴 수 있는 할머니가 되어 주고 싶다. 때복이뿐만 아니라 딸과 사위도 가끔 쉬고 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경당 의자에 가만히 누워본다. 때복이처럼 몸을 움츠려본다. 편안하다. 평소에도 움츠리고 자는 버릇이 있다. 어쩌면 태아 때를 기억하는 무의식이 잠잘 때 몸을 움츠리게 해서 쉬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뒤통수가 짱구인가. 뒷머리를 만지면서 몸을 일으킨다. 옆에 앉은 남편에게 때복이 이야기하니 한마디 한다.
“나는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로 키울 겁니다.”
헉, 우리 부부는 딸네 부부와 안 싸우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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