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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벌새 Jul 20. 2023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아빠가 물었다. “친구들 여행보다 가족들이랑 하는 여행이 더 좋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운전도 안 해도 되고…” 나는 “허허” 웃으며 “색깔이 다르지..?”라며 대충 얼버무렸다.


  부모님과의 여행은 안락하다. 가족 여행에서 나와 오빠는 보통 선택권이 없다.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하는 게 좋겠다. 식당도, 숙소도, 여행 코스도 엄마 아빠가 정해 놓은 계획을 따르면 된다. 선택하지 않음에서 오는 책임감의 부재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안락하다고 해서 재밌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락은 재미와 거리가 멀다. 그래서 때론 가족 여행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어떤가? 숙소와 식당, 교통편을 하나하나 결정하고, 기차를 놓칠까 전전긍긍하고, 때로는 길을 헤매기도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는 그 여행은 불확실하지만 재밌다. 여행의 잔상도 더욱 짙다. 때때로 선택에 따른 책임감에 짓눌려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하지만, 그 날카로운 침묵은 나를 이해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본가에서 샤워를 하며 문득 안락함의 족쇄가 일상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느꼈다. 울산 집은 나의 자취방보다 훨씬 넓고 시설도 훨씬 좋지만, 나는 왜인지 하루빨리 5평 남짓한 좁은 자취방에 가고 싶었다. 서울집은 모든 것들이 다 내 선택으로 이뤄져 있으니깐! 침대, 러그, 책상, 의자 등등. 내 선택으로 가득한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과 평안함이 그리웠다. 물론 서울 집엔 취준이라는 현실의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아주 조금 그리웠다.


  부모님과 배우자가 물에 빠졌을 때 누구를 먼저 구할 거냐는 질문에 정신과적으로 건강한 답은 배우자를 택하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는 내가 선택하지 못했지만 배우자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기 때문이며,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이라면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양재진, 양재웅)


어쩌면 오늘의 고찰은 건강한 어른으로서의 초석을 다졌음을 선언 혹은 암시하는 것일 수 있겠다.  물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엄마 아빠 덕분이겠지. 부모님께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해보려 한다. 뿌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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