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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벌새 Jan 08. 2024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영화 <졸업>, 마이크 니콜스

   영화 졸업에는 <The Sound of Silence (침묵의 소리)> 가 영화의 처음, 중간, 끝에 한 번씩 흘러나온다.  처음은 비행기에서 내린 벤저민이 공항 컨베이어 벨트 위에 서 있을 때였고, 중간은 벤저민이 낮에는 수영장에 떠다니고 밤에는 로빈슨 부인(앤 밴크로프트)과 만나기를 반복하던 때였으며, 마지막은 일레인(캐서린 로스)을 마침내 차지했을 때였다. 영화에서 벤저민(더스틴 호프먼)이 삶의 목적을 잃고 부랑할 때면 어김없이 "Hello darkness, my old friend"라고 인사하며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것도 아주 길게.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안녕, 내 오랜 친구, 어둠이여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너와 다시 이야기하려고 왔어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내가 잠든 사이 어떤 환상이 기어들어와                               

Left its seeds while I was sleeping  

자기 씨를 심어놓았거든                          

And the vision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내 뇌리에 박힌 그 환상은           

Still remains

침묵의 소리 속에                                                                  

Within the sound of silence

여전히 남아 있어.                                        


  벤저민은 자신의 졸업 축하파티를 앞두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혼란스러워한다.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어항 앞에 앉아 있는 벤자민은 주체성을 상실한 어항 속 물고기와 다름없다. 노래 가사 속 '어둠일 때만 나에게 이야기하러 오는, 뇌리에 자신의 씨를 깊숙이 박아둔 그 환상'은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싶은 벤저민의 자연스러운 욕망일지 모른다. 꺼질 위기에 있는 벤저민의 영혼이 침묵의 소리에 갇힌 채 나를 제발 봐달라고 발버둥 친 흔적일 지도 모른다.


In restless dreams I walked alone

쉴 수 없는 꿈 속에서                                          

Narrow streets of cobblestone

난 자갈이 깔린 좁은 길을 걷고 있었어                                                

'Neath the halo of a street lamp

 가로등 밑에 다다랐을 때                                             

I turned my collar to the cold and damp

차갑고 음습한 기운 때문에 난 옷깃을 세웠지                              

When my eyes were stabbed by the flash of a neon light

그때 반짝이는 네온 불빛이   

That split the night

내 눈에 들어왔고                                                                           

And touched the sound of silence

침묵의 소리를 흔들어놓았지.                                           


  어둠 속은, 침묵의 소리로 뒤덮인 곳은 절대 쉴 수 없는 꿈과 같은 곳, 자갈이 깔린 좁은 길과 같은 곳, 차갑고 음습한 기운으로 가득 찬 곳이다. 그러나 어둠 속이 아니라면,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영혼의 발버둥은 절대로 인식될 수 없다. 벤저민은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자신의 영혼이 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잠시 혼자 있고 싶은데 대신 말씀 좀 해주세요." "미래에는 좀 더 …. 달랐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침묵의 소리는 반짝이는 네온 불빛이 가득한 세상에 묻혀버렸다. 벤저민의 부모님은 벤저민을 파티에 데려갔고 벤저민은 로빈슨 부인이라는 번! 쩍! 이는 네온 불빛을 봐 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구도가 나온다. 그렇게 벤저민은 로빈슨 부인의 다리 사이라는 덫에 갇혀버리고 만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싶었던 벤저민의 영혼은 부모님 손에 이끌려 새까만 잠수복을 입고  구경거리가 되어 물속으로 침잠해 버렸다. 이 장면에서는 구경꾼들과 세상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벤저민의 숨소리만이 들리는데, 이 힘겨운 숨소리는 벤저민의 영혼이 꺼져가는 것을 상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혼이 침잠해 버리자 벤자민은 낮에는 강렬한 햇빛 아래 수영장을 떠다니고 밤에는 로빈슨 부인과 남몰래 만나는 생활만을 반복했다.

And in the naked light I saw

그 적나라한 불빛 속에서                                    

Ten thousand people, maybe more

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보았어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소통 없이 말만 하고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경청 없이 듣기만 하고                         

People writing songs that voices never share

공감할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No one dared

하지만 누구도 감히                                                             

Disturb the sound of silence

침묵의 소리를 깨지는 못했지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네온사인이 가득한 공간에는 영혼이 꺼진 사람들의 소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저 입이 뚫려 있어 말을 하고 귀가 뚫려 있어 듣기만 할 뿐이다. 공감과 소통은 없다. 때문에 주체성과 진정성만이 가 닿을 수 있는 침묵의 소리를 그 누구도 듣지도, 따라서 깨지도 못한다. 영혼이 꺼져버린 벤저민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 "미술은 젬병이니 너부터 말해봐"라고 이야기하던 로빈슨 부인이 대학 때 미술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로빈슨 부인이 그녀의 아픈 결혼생활을 이야기할 때, 벤저민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슬픔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저 기계적인 반응만 할 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관심도 사라졌나 보네요." "어땠어요? 로빈슨 씨 방으로 갔어요? 아니면 호텔에서?"


"Fools" said I, "You do not know

나는 말했어 "바보들!"                           

Silence like a cancer grows

"침묵이 암처럼 자라는 걸 모르는군                                  

Hear my words that I might teach you

당신을 일깨워 줄 내 말을 들어봐                 

Take my arms that I might reach you"

당신에게 내민 내 손을 잡아봐 .                 

But my words like silent raindrops fel

하지만 이 말은 소리 없는 빗방울처럼 떨어져              

And echoed in the wells of silence

침묵의 구덩이에서 메아리칠 뿐이지

             

  공감할 줄 모르고 헤아릴 줄 모르고, 주체성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벤저민은 악마다. 동시에 그는 스스로의 악마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바보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는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을 헤아리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자신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일레인을 만나지 말라는 로빈슨 부인의 말에, 그 말의 심중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왜곡해서 해석한 후 발끈한 벤저민은 “지옥에나 가버리라"며 "나라고 알코올 중독자랑 어울리고 싶은 줄 알아요?"라며 로빈슨 부인에 상처를 준다. 첫 데이트에서 일레인을 스트립쇼에 데려가 울리고, 로빈슨 부인이 자신을 자극하자 단지 자신이 하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일레인에게 로빈슨 부인과의 비밀을 폭로해 버린다. 그리곤 수습한다. "욱해서 한 말이었어요. 심했다면 죄송해요. 당신이 좋아서 계속 만났던 거예요. 나도 즐거웠어요." "여기 데려와서 미안해. 나 이런 사람 아니야. 나도 정말 이러기 싫어." 어떤 말로도 수습할 수 없자 일레인과 결혼을 결심한다.


And the people bowed and prayed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To the neon god they made

네온 신에게 허리 굽혀 기도했어                                  


  벤저민은 일레인과의 첫 데이트에서 말한다. "말도 안 되는 규칙이 있는 게임을 하는 느낌이야. 잘못된 사람들이 만든 규칙 같아. 아니다 만든 사람도 없이 저절로 생겨났달까?" 일레인과 결혼하겠다는 벤저민의 결심은, 벤저민이 졸업 전까지 따라오던 '말도 안 되는 규칙'을 다시 가져와 그대로 따른 결과이다.  벤저민의 삶에서 다른 규칙이 제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벤자민은 자신들이 만든 말도 안 되는 규칙에 허리 굽혀 기도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세상과 규칙이 있다고 알려준, 영혼을 일깨워주고 영혼에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더라도 벤저민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소리 없는 빗방울처럼 침묵의 구덩이에서 메아리치기만 할 것이다.)

 

And the sign flashed out its warning

그러자 네온이 만들어낸 사인이                           

In the words that it was forming

경고하듯 번쩍였어.                                 

And the sign said, "The words of the prophets

사인은 이렇게 말했지        
Are written on the subway walls

'선지자의 말은 지하철 벽이나’                                
And tenement halls

 ‘아파트 현관에도 적혀 있다’                                                     
And whispered in the sounds of silence"                   

그렇게 속삭였어


  네온사인이 만들어낸 규칙에 따라 승리하게 된 벤저민은 일레인과 손잡고 결혼식장을 뛰쳐나와 도취의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버스에 앉아 현실을 마주한 벤저민은 다시 영화 도입부에서의 그 공허한 표정을 짓는다. 일레인과 벤저민은 각자의 프레임(두 개로 나눠진 뒤편 버스 창문) 속에 앉아있다가 끝끝내 한 프레임으로 합쳐지지 못한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다시 벤자민에게 침묵의 소리는 인사한다.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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