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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혁H Aug 21. 2021

살고 싶다는 농담

21.02.21.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평정심과 바꿔여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밝은 눈을 갖게 되기를"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허지웅에 대해 가지는 인식은 부분적이고 단편적이었다. 몇몇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풍자를 자랑하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미디어를 통해서 봐온 모습과 특유의 냉철한 표현으로 인해, 어딘가 모르게 ‘까칠한 엘리트 지식인'이라는 이미지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투병 소식을 우연히 접했을 때도, 놀라움 이외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었다. ‘안타깝다'라고 가볍게 연민은 표할 뿐, 나와는 상관 없는 머나먼 타자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곤 했다. 1년 반 정도가 지나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쳤다는 소식에도,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그의 황동과 행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차라리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는 고통의 고백은, 그래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잘나가고 두려울 게 없어 보이던 허지웅이라는 사람에게 몰아닥친 어둠의 시간들이 책 속에 너무 생생히 남아있었고 그랬기에 오히려 더 믿기지 않았다. 손가락 한 마디조차 움직이기 버거울 만큼 지독하고 아픈 절망이 그의 투병 생활 한가운데 가득 차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바로 앞에서 겨우 밤을 버티던 그는 비로소 살아내기로 결심했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고 자신에게 다짐하듯 되뇌었다. 험난한 고개를 넘은 후 본인이 걸어야 했던 아픈 발자취를 사람들이 더는 걷지 않기를 바라면서 기록을 남기고 공유하였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드라운 힐링-위로의 글귀는 이 에세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간절하고 절실하게, 하지만 비참하지 않고 오히려 초연하게 삶의 가치를 읊조리는 문장들만이 페이지를 채워가고 있다. ‘넌 할 수 있어', ‘좋은 날이 오겠지' 등과 같은 문구가 아닌,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기를, 불행하거나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며 진심을 드러낼 뿐이다. 다시는 떠올리기도 끔찍한 세월까지 담대하게 마주하며, 우리의 인생 전체를 관망하고 관찰해간다. 그러면서도 그의 통찰과 시선은 가르침이나 연민에 향해 있지 않다. “여러분의 고통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고통이란 계량화되지 않고 비교할 수 없다"고 토로하면서, 먼저 아픔을 겪은 입장에서 품는 짙은 공감의 언어를 써낼 뿐이다.


 몇  달 전 친구에게 선물받은 <아침의 피아노>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철학자 김진영이 2017년 암 선고 이후 2018년 8월 임종 직전까지 적어갔던 하루하루의 일기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사유를 담고 있었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신체적 한계에도, 그의 지성과 이성 그리고 감성은 죽음 앞에 좌절하지 않은 채 주위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에 향해 있었다. 흔들리고 아파도 했으나 그 과정을 딛고 문학이란 예술로써 생애를 새로 빚어냈다. 허지웅의 담담하면서 진솔한 문체에서도 그러한 '승화(乘華)’가 느껴진다. 생사의 경계에서 본인의 불안과 번뇌를 솔직히 그려내, 그만의 독특하고도 두터운 고찰로써 고난을 바라보고 껴안았다.

 특히 철학적 사례를 통해 인생의 방도를 비유하고 전하는 부분에서 그의 폭넓은 식견과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반복되더라도 좋을 만큼 모든 순간에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토록 끔찍한 삶이라도 내 것이라고 외치고, 나아가 그런 삶을 사랑하라 주문하는 것이다"라며 니체의 ‘영원회귀'와 ‘아모르 파티'를 서술함으로써,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다가오도록 철학 개념을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허지웅은 비단 문장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이러한 ‘승화'를 실현하기도 했다.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본인과의 이야기가 꼭 필요한 이들과 담화를 나누기 위해 사서함을 만들어 사연을 받으며 경청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본인만의 관점과 대안을 답장의 내용으로 넌지시 제안하고 조언했다. 과거 자신과 똑같은 극한의 처지에 놓여 있던 사연자의 목소리를 듣고, 망설임과 두려움을 이겨내며 병동까지 직접 찾아가서 진심 어린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다. 그저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 있는 듯한 보통사람의 인생사를 다시금 정리하여 책에서 이를 상세하게 다뤄냈다. 어떤 형태의 삶이든, 어느 무늬의 인연이든 상관없이 인간을 존중하는 시선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구석이라고 생각된다.

 위와 같은 그의 표현과 실천은, 그렇기에 참으로 숭고하고 처연하며 경이롭다. 그가 겪어온 이야기를 따라가는 길 내내 감탄이 절로 맺혔다. 현실과 상황을 당당히 받아들이고 작은 결심들로 삶을 꾸려나가기. 상처를 과시하거나 핑계 삼지 않은 채 공생하는 방법을 터득해가기. 절망감에 꺾이지 않고 평정심과 객관성을 유지하며 균형을 회복하기… 죽음의 문턱에서도 위와 같이 고고하고 사려 깊게 세상을 품어내는 모습에 깊은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와 동시에 현재 나의 상태와 심정을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 그저 기분과 편의만 좇아 많은 걸 마냥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사소한 파편들에 연연해 중요한 가치를 간과했던 건 아니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스쳐가는 바람에 무작정 무너져내리면서, 자신을 못 미더워하고 주변에 무심해져 갔던 나의 일부가 부끄러워졌다.

 결국 지식은 이렇게 쓰이라고 있는게 아닐까, 분석과 해석을 넘어서 세상을 향한 통찰, 인간을 향한 공감과 도움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 온몸으로 겪고 마침내 깨달은 것을 기꺼이 나누고 알려주는 행위. 허지웅이 이 책에 담아냈던 지혜의 말들은 무척 깊이 있고 단단하며, 그 어느 감미로운 위안보다도 더 따스하고 섬세했다. 혹여 나중에 나 역시 그와 같은 극복과 회복의 기나긴 여정을 지내게 된다면,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들처럼 현명하게 삶을 버텨내고 비빌 언덕을 마련해서 주위를 향해 힘껏 손을 뻗어야겠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그리하여 살려내야겠다.

책을 덮고 나서, 인스타그램에서 그가 올린 게시물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여전히 사회의 부조리에는 날카로운 지적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고민과 걱정에는 든든하게 곁을 내주고 있는 정다움이 보였다. 뻔하지도 박하지도 않은 언어로 진정한 존엄과 치유를 건네고자 하는 멘토가, 그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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