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들에게 쉽게 토로하진 못했지만, 나에게는 갖가지 콤플렉스들이 자리하고 있다. 체형, 외모, 부정교합, 목소리, 운동신경, 성격, 취향, 관계성... 등등. 스스로 느끼는 특이하고 모자라고 애매한 단면들이 사춘기 시절부터 나의 마음과 행동을 은연중에 잠식하곤 했다. 어떤 것들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알아차리기도 했고, 또 어떤 것들은 인지한 지 오래되어 밑바닥에 깊게 내려앉아있다. 평소에는 별다르게 의식하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다가도, 어쩌다 내 자신의 부족함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를 하찮게 바라보고 업신여기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한다. 이러한 콤플렉스들 대부분 시기와 심리에 따라 조금씩은 해결되고 나아지기도 하지만,
아직까진 이들을 내면에서 완전히 떨쳐내고 지워내는 일은 아득히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거의 유일하게 완전히 극복했다고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게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손글씨'에 대한 콤플렉스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기억의 최전선에서 어렴풋이 회상되는 유년시절 장면들 속 어른들로부터 꼬부랑 글씨에 대해 여러 지적을 받았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판서를 옮겨 적거나 낙서를 몰래 하거나 상관없이 종이 위에 펼쳐진 한글의 모양은 천방지축 그자체였다. 유독 책 읽고 글 짓는걸 좋아하고
은근히 총명했던 아이였기에, 더더욱 글씨체에 대한 아쉬움을 주위에서 많이 품었었지 않았나 싶다. 엄마는 예쁜 필체를 손수 만들어볼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홈플러스 문화센터 POP글씨교실에 등록시켰고, 아빠는 한자를 익히고 연습하면 글씨체가 나아질거라 생각하여 학교 방과후 한문부에 몇년간 다니게 했다. 허나 위같은 노력들에도 별 성과는 딱히 없었던 듯 하다. 흘겨쓰는 삐뚤빼뚤한 손글씨는 여전하게 비슷했고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도
'악필'은 큰 변함 없이 고쳐지지 않았다.
너저분한 글씨체, 알아보기 힘든 필기는 그렇게 학창시절 동안 나를 늘 괴롭히고 성가시게 한 요인이 되었고, 무언가를 길게 오래 적어내야 하는 일에 머뭇거리게 만들어 버렸다. 여러 아이디어를 메모로 남기고 한 편의 글을 직접 써내는 걸 좋아하면서도, 못나고 구린 손글씨 때문에 글을 쭉 풀어 쓰는 것은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져왔다. 그랬기에 종이에 펜을 맛대는 순간마다 누구보다도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며 무진장 공을 들여야만 했다. 긴장감이 빡 들어간 채로 펜을 잡아야만 종이 위로 글이 원활하게 잘 이어질 수 있었고, 그 팽팽함을 풀거나 놓치면 글씨는 다시 이리저리 부숴지는 모래처럼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위와 같은 내면의 두려움이 다소 누그러진 건 스무살 이후부터였다. 성인으로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면서 청소년기에는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던 어버이날 기념 선물을 누나와 함께 준비하기 시작했다. 선물과 함께 내가 직접 편지를 적어 포장해서 엄마 아빠에게 드렸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두 분 모두로부터 필체에 대한 상당한 호평을 듣게 되었다. 옆에서 내가 편지를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걸 직접 목격하던 누나 역시 몇 년 전보단 글씨가 확실히 나아졌다고 말해줬다. 드디어 악필로부터 벗어나 나름 적당한 모양새로 글을 적어가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확실히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써내릴 수 있었고, 내 필기에 대해 나무라거나 흠잡는 말도 더는 듣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도 내 글씨를 탓하거나 못나게 여기는 경우
또한 점차 드물어졌다.
군대에 들어오고 난 뒤로는 콤플렉스가 거의 완벽히 사라지게 되었다. 신병교육대대와 후반기 야수교에서 가끔 글씨를 써서 보여주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말의 다수가 내 글씨에 대한 칭찬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내 글씨체에 대해서 자책 없이 만족하는 감정을 넘어서 큰 자신감과 애착까지도 느껴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한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적당하고 내 자신부터 욕을 하던 대상이, 이제는 나만의 소소한 장점이 되어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뿌듯하게 다가왔다. 과거의 나였다면 결코 상상하지도 바라지도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