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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ㅁㅁㅁ Sep 13. 2022

현실 < 꿈 <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만, 이상을 꿈꾸며

1교시는 국어 수업이었다. 아침부터 말이 잘 안 나왔다. 수업 중에 한 학생이 돌아다녔다. 앉으라고 말했더니 보란 듯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가까이 다가가 책상을 가리키자, *발 *혐이라 말한다. 지지 않으려고 눈을 노려봤다. 헙. 그가 힘껏 배를 찼다.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교실 밖으로 나왔다. 근데 수업은 마저 해야 돼서 다시 들어갔다.

이번에는 모두가 돌아다녔다. 앉으라는 말이 통할 리 없다. 홧김에 리모컨을 던졌다. 앗. 앉아있던 학생 머리에 맞았다. 울면서 사과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난번에는 교탁 옆에다 벽돌을 떨어뜨리더니, 이번에는 리모컨을 던졌다.

물론 꿈에서다.      


프로이트는 꿈을 의미 있는 정신활동으로 봤다.


<꿈의 해석>에 따르면, 꿈은 최근의 인상을 뚜렷하게 반영하며, 특히 개인의 무의식적인 소망이 검열과 왜곡을 거쳐 기이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책에 실린 해석 사례가 믿거나 말거나 타로점과 다를 게 없어 보였는데, 그가 남긴 ‘어떤 세계를 풍부하게 갖는다는 것은 그 세계를 풍부하게 해석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납득했다. 프로이트는 탁월한 해몽가다. 정신분석학과 문학이 뒤섞인 듯한 그의 책에 깊은 인상을 받고, 1800년대 오스트리아 그의 사무실로 꿈 해석 의뢰 편지를 (가상으로) 보냈다.


운이 좋게도 그에게 답장이 왔다.  


“당신의 꿈을 잘 읽었습니다. 파괴적인 폭력성이 인상적인데요,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드리죠. 첫 번째로 당신은 ‘말’의 감옥에 갇혀 있어요. 1교시부터 말이 제대로 안 나오더니, 학생 욕설에도 아무 말 못 하고 노려보기만 하다가, 결국 말이 안 통해서 폭발했지요. 말하기 욕구가 억압되어 병적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평소에 자유롭게 말을 못 하고 사나요?

두 번째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 바꿔 말하면 강렬한 통제 욕구가 엿보입니다. 다른 인격체를 통제하려는 마음은 불안에서 기인하죠. 자신보다 어리고 미성숙한 존재에게 무시당하는 데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는 듯합니다. 피해의식이 있나요? 세상에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로 리모컨 자체도 하나의 메타포인데요. 원격 조종 장치 (remote control), 즉 원거리에서 조종하는 도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여요. 그러나 그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격렬한 충돌 끝에 패배를 인정하는 행위로써 리모컨을 내던진 것이죠. 무시받는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당신은 결국 애먼 사람에게 피해 입히고 사과합니다. 한마디로 이 꿈은 고장 난 리모컨의 최후입니다.”     (가상편지)


프로이트는 나의 두려움을 간파했다. 교실을 통제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교실이 붕괴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악몽은 현실이기도 했다. 배를 맞아보기도, 씨*이라고 들어보기도 했다. 5년 전 기간제 교사일 때 영어와 실과 과목을 맡았는데, 어떤 반에만 들어가면 좌절했다. 한 학생이 폭주하면 그야말로 아수라장. 급기야 보다 못한 다른 선생님이 대신 분위기를 잡아 주기도 했다.


스물넷의 나는 교사는커녕 어른 역할도 할 줄 몰라, 아이들에게 편하고 만만한, 질서도 못 잡고 마냥 밝아서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때의 실패 경험이 무의식에 새겨졌나 보다. 다행히도, 그동안 좌충우돌 부딪히며 마음에 굳은살이 박이고 옛날보다는 능숙해져서 악몽의 빈도가 줄었다.     


그러나 이 직업을 맡은 이상, 내가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고, 교직 생활도 당연히 그렇다. 우리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만난다. 아무도 손 쓸 수 없는 무법자 같은 존재가 있다. 기분이 상하면 손에 잡히는 걸 집어던지고, 장난으로 시비 걸고 때때로 친구를 위협한다. 교실을 뛰쳐나가거나,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드러눕기도 한다.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내면이 상처투성이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가장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고, 강해 보이지만 실은 약하다.

     

나도 그렇다. 능력도 노력도 안 통하는 상황에 압도된다. 그때 무참히 고통받는다.


나만 고통받으면 되는 문제도 아니다. 학급 전체의 일이다. 어깨가 무겁다. 아니 무섭다. 무력하다. 적대적인 눈빛과 폭발적인 에너지, 선 넘는 발언과 위협, 욕설, 교실 붕괴, 사건 사고와 민원, 그리고 좌절 혹은 자괴감.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시시때때로 나의 무의식을 넘어 의식까지 집어삼킨다. 악몽이 현실이 될 것만 같다.   


그럴 때면 눈을 감는다.
순간적인 감정에 휘말릴 때가 많습니다. 통제가 아닌 돕는 마음을 주시고 아닌 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목소리에 평안이, 눈빛에는 애정이 담기길,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거짓이 필요없는 사이가 되길, 누군가의 아픔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손잡고 함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현실의 이해관계와 힘의 논리를 넘어 소중한 가치를 가르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세요.


필사적으로, 출근길 버스에서 구하고 또 구한다. 이상을 꿈꾼다. 그렇게 매일 아침, 눈을 감고 되뇌면, 지난밤의 꿈이 지워진다. 어두운 마음이 새로운 꿈으로 뒤덮여, 정말로 꿈같은 현실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설령 하루 종일 시달리고 지치는 날을 보냈더라도, 월화수목금이 다 끔찍했다 하더라도, 내일은 다를 수 있다고 믿다 보면, 그래서 한 번이라도 정말로 괜찮은 변화가 있다면, 그 믿음이 삶을 지탱해준다. 미세한 빛줄기가 가슴 벅찬 신호로 느껴지는 것은, 간절하기 때문이고, 그만큼 힘겹다는 것이다. 가끔은 꿈보다 현실이 꿈같고, 꿈이 현실보다 현실 같다.


악몽에 시달리지만, 이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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