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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Feb 10. 2021

방화사건

22살 파출소 순경으로 시작하여 41살 강력형사의 이야기...


방화사건


2013년 어느 날 반지하 주택에 화재가 발생했었습니다. 아니 화재가 아닌 누군가 불을 지른 방화였습니다.

도박에 중독된 수양아들이 도박빚을 대신 갚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홀로 사시는 연로한 어머님의 주택 지하방에 불을 질러 집이 전소된 사건이었습니다.

피해자이신 할머님은 젊은 시절 자신의 결혼도 미룬 채 동네에서 뛰어놀던 고아가 안쓰러워 데려다 호적에도 올리시지도 않고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하시며 키우셨습니다.

사건이 난 당시에도 할머님은 기초생활수급자 이시면서 혼자 살고 계셨고, 동네에서 파지를 모아 파시며 어렵게 생활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나마
전 재산이라면 2천만 원짜리 작은 지하 전세방이 전부였는데,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술에 취해 도박빚 800만 원 때문에 그 집에 불을 지른 것이었습니다.

사건이 난지 하루 만에 수양아들을 검거하여 구속을 시켰습니다. 범인을 검거하였으니 사건은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한 후에야 집을 잃고 오갈 곳 없는 처지가 되신 할머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머님의 안따까운 사연을 알고 나서 저희 수사팀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지원센터와 도봉구청, 주민센터, 종교단체, 아는 지인들...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두 발로 뛰어다니면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였는지, 찾아갔던 대부분의 곳에서 물품뿐만 아니라 금전적 도움까지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습니다.

한 번은 일면식도 없었던 관내 모 케이블 방송사 지사장님을 찾아가 무작정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그 지사장님께서 "저희 방송사에서 할머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요금을 받지 않고 무상으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즉석에서 답변해 주셨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 온정의 손길로 힘을 모아 잿더미가 된 할머님의 집을 새집처럼 만들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관내를 순찰하던 중에 삐리리~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전화를 받았더니, 할머님께서 들뜬 목소리로 "형사님~, 할미 집이 새집이 되었어요. 얼른 놀러 오세요~"라고 하셔서 단걸음에 할머님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새로 단장한 할머님 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순간의 감동은...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그날 저녁 퇴근하여 집에서 '엄마~'라는 말밖에 못 하는 1살 아들과 부인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여보, 왜 있잖아 예전에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 말이야, 오늘 할머니 집에 가니까 그 프로가 생각나더라고"라고 하였더니, 부인은 "당신이 그토록 잡고 싶어 했던 범인을 잡았을 때보다 지금이 더 기뻐하는 거 같네"라며 애교스러운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새롭게 단장한 할머니집에서






며칠 전 방화 사건의 피해자이신 할머님을 찾아뵙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도봉1동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순경 후배와 함께 찾아갔습니다. 관내에 있어서 친하게 지내는 식당 사장님께서 선뜻 지원해주신 쌀 한 포대와 인근 시장에서 구입한 작은 과일 한 박스를 들고 들어가니, 할머님께서는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와도 된다며... 제 얼굴을 보는 게 가장 좋다고 하십니다.

제 돈으로 산 게 아니라 저번처럼 관내에서 식당을 하시는 사장님께서 지원해 주신 거라 알려드리니, 그 사장님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감사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시면서, 혼자 살고 계셔서 쌀이 가장 반갑다고 하십니다^^

올해 90세이신 할머님은 다리 관절이 조금 아프신 거 말고는 아직까지정정하십니다. "할머님 오래오래  120세까지 사셔야 돼요"라는 제 말에, "에이, 그때까지 어떻게 사누~"하시면서 웃으십니다.

혹여나 8년 전 불을 지른... "아들은 연락 없죠?"라고 물으니, 할머님께서는 "김형사님이 이사까지 켜주고, 지금도 이렇게 숨겨주고 있는데, 아직까지 연락 없네"하셨습니다.

할머님께서는 항상 제가 다른 경찰서로 옮기지 말고 10년, 20년... 도봉경찰서에 계속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할머님 살아계신 동안에는 최대한 여기 경찰서에 있어 보게요"라고 답해드렸습니다.

할머님을 뵙고 집에서 나오는데 마침 옆집 사시는 할머님께서 대문에서 나오는 저와 후배를 보시고는 "아니~ 이 젊은 청년들은 누군고?"하고 물으시니,
 
할머님께서는 제 손을 꼬옥~ 잡으시면서 "내 아들이여, 아들~, 국가에서 내려준 막둥이 아들~"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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