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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Feb 11. 2021

형사,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직업

22살 파출소 순경으로 시작하여 41살 강력형사의 이야기...


형사,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직업

몇 년 전 팀 회식을 마치고 팀원들 모두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이제는 퇴직을 하신 팀장님 집에서 2차를 하겠다며 팀장님 집을 불숙 쳐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야밤에 갑자기 들이닥쳤음에도 사모님께서는 남편의 부하직원들을 미소로 방겨주셨고,
사모님께서는 예전에는 사건이 터지면 팀장님이 며칠씩 집에 안 들어와서 경찰서 정문 앞으로 속옷이랑 양발을 갖다 준 적이 잦았다면서 "준형 씨 아내분도 경찰서에 속옷 배달해줘요?"라고 물으시기에, 저는 "아니요, 사모님 요새 그러면 큰일 나요, 이혼당해요ㅜㅜ"라고 대답했습니다.

경찰 조직은 12만 명이 넘는 인원만큼이나 각자 다른 업무를 담당하는 여러 부서로 나뉘어 있습니다.

최일선을 담당하는 파출소부터 경찰서, 기동대 등등 각 부서는 업무 특성이 맞추어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서 중에서 형사과, 수사과, 여청수사팀 처럼 수사파트에 근무하는 경찰관을 형사 또는 수사관이라 부릅니다.

저는 수사파트에서 업무강도가 가장 센 부서가 형사과이고 그중 단연 으뜸이 강력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업무강도가 세다는 것은 단순히 업무의 양이 많거나 근무시간이 길다는 것이 아니라, 그 업무가 개인의 생활에 어느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는가 일 것입니다.

2009년 형사과 막내들로 저와 함께 형사 생활을 시작한 친구들과 비슷한 시기에 형사를 시작한 동료들은 30여 명 정도가 됩니다.

아마도 모두가 그 힘든 형사를 하겠다고 결정을 했을 때에는, 나름 굳은 결심을 했었을 테고 결혼을 한 직원은 아내와도 깊은 상의를 하고 지원서를 냈을 겁니다.

업무가 고되거나 적성에 맞지 않아 형사를 포기하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정생활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맞벌이가 많고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이 점점 커져가는데 반해서, 형사 생활은 가정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가족의 이해 없이는 형사를 계속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저역시도 술자리에서 선배님에게 같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고, 형사를 하는 지금까지도 아내를 설득하고 형사 생활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논쟁의 기간이었습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범인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가족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관계 속에서, 그동안 형사를 포기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저와 함께 형사를 시작한 동료들 중 10여 년이 흐른 지금, 저희 경찰서 형사과에 남아있는 건 1~2 정도입니다.

그래서 형사라는 직업에는 열정과 사명감이 당연히 갖추어져야 할 테지만 여 조건이 갖추어지고 자신이 원한다고, 하고 싶다고 스스로 결정하더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은 아닌 거 같습니다.



2014년 서울도봉서 강력1팀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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