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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Feb 21. 2021

수사를 할 때의 마음가짐

22살 파출소 순경으로 시작하여 41살 강력형사의 이야기...


수사를 할 때의 마음가짐
(피해자의 아픔을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는가)

모든 법률의 제1조를  보면 그 법률을 만든 목적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법률뿐 아니라 하위 시행령과 시행규칙, 그에 따른 조직 내 훈령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청 훈령으로 경찰관이 범죄를 수사할 때 지켜야 하는 '범죄수사규칙'이라고 있는데, 이 규칙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제1조(목적) 경찰관이 범죄를 수사할 때에 지켜야 하는 마음가짐, 수사의 방법과 절차 ... 를 정함으로써 수사사무의 적정한 운영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이 규칙에는 아주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어떤 법률이나 규칙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 약간은 애매모호한 '마음가짐'이란 단어가 규칙 제1조에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경찰관이 어떤 마음으로 사건의 수사에 임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많이 느껴왔습니다.

처음 강력팀에 들어와 형사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였을 때, 형사로써 처음 가졌던 목표는 대한민국의 강력형사 1프로 안에 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술자리에서 아는 동료들과 동기들에게 제 목표를 거창하게 얘기하니 대부분이 저를 보고는 '야~!! 정말 웃기지도 않는 목표다'라며 모두 웃었습니다. 차라리 큰 사건을 하나 해결해서 특진을 하겠다는 목표가 더 현실감 있지 않겠냐고들 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계급 사회인 저희 조직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험이나 특진 또는 심사 승진, 즉 진급을 목표를 두고 있던 상황에 뜬금없이 제가 무슨 드라마의 멋있는 주인공인 듯 현실과는 전혀 동떠러진 목표를 얘기하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했을 겁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든 그 1프로라는 목표를 위해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하루 종일 범인을 잡겠다는 생각뿐이었고, 심지어 잠을 잘 때 조차도 범인을 쫓는 꿈을 꾸기도 하였습니다.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강력사범들을 검거하였지만, 범인을 잡아 구속을 시키고 교도소에 보내더라도... 피해자의 아픔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형사가 범인만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피해자의 아픔을 마음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언제부턴가 저의 형사로써의 모토가 대한민국 강력형사 1프로에서 자연스럽게 '국민이 원하는 형사가 되자'로 바뀌었습니다.

계급사회인 경찰 조직에서 승진이란 굴레에 붙잡혀 형사 생활을 조금은 늦게 시작하다 보니, 먼저 시작한 동료들을 따라잡기 위해 정말 이를 악물고 피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강력형사 1프로 안에 들기 위해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전력을 다해 달려가던 중에... 너무나도 갑자기 그 모토가 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프로라는 목표보다 피해자의 아픔을 나누겠다는 생각이 어찌 보면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미친개'와 '또라이'라는 별명은 갖게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제 마음이 피해자의 마음과 차츰 동화되는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오히려 범인을 쫓는 제 수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과거 성폭행 사건이 형사과에서 여청수사팀으로 분리되기 전 성폭행 사건을 수사할 때, 성폭행을 당한 여성분의 피해 진술을 들으면서 마치 피해자분이 저의 친누나 또는 여동생인 듯한 착각이 든 적이 많았고, 수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피해자분의 아픔에 더욱 동화되어 가는 감정을 자주 느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제 가족에게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제가 직접 담당 형사가 되어 수사를 하는 듯한 그런 형국이었습니다. 담당 형사의 경력이나 수사 실력을 떠나,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여동생을 감히 성폭행하고 도망친 범인을... 무지막지하게 화가 난 친오빠가 그 뒤를 쫓는다고 보시면 비슷할 것입니다.

담당 형사가 자기 가족에게 범죄를 저지를 범인을 쫓는다면 아마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듯이 범인을 잡아낼 것입니다.

뒤늦게 형사를 시작하여 짧은 경력임에도 주변 형사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형사로써 타고난 촉이나 감각, 사건운도 아니었고 열심히 사건을 수사하겠다는 업무자세도 아니었으며 대한민국 강력형사 1프로 안에 들겠다는 굳은 결심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담당 형사로써 얼마만큼 피해자의 아픔을 가슴으로 공감하고 다가갈 수 있었느냐 였습니다.

아마도 법률이 아닌 규칙일 뿐이니 범죄수사규칙 첫머리에 경찰관의 마음가짐이 명시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기성 경찰관들도 많이 있을 테지만,

공개채용의 시험과목인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줄줄 외우고 있는 후배들에게 저는 항상 범죄수사규칙 제1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범죄수사규칙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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