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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Feb 20. 2021

사건 병합의 중요성

22살 파출소 순경으로 시작하여 41살 강력형사의 이야기


사건 병합의 중요성
(수사 종결을 잠시 미룰 때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

제가 형사당직팀에 있을 때 가정폭력 사건이 들어왔습니다.

별거 중인 남편이 집 현관문을 발로 차서 손괴하였다는 사건이었는데, 남편은 112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파출소 경찰관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경찰서 형사당직실로 인치가 되었고 제가 사건 담당이 되었습니다.

통상의 조사 순서는 이렇습니다. 먼저 피해자의 진술을 청취하고 증거를 확보한 다음에, 피의자의 조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는 대부분의 사건을 수사할 때의 순서입니다만, 112신고를 할 때에는 상황이 긴급하기 때문이고... 급박하게 신고가 되어 피의자가 현장에서 체포된 상태에서 수사가 시작되게 되면 중간 단계인 증거를 제대로 수집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의자의 조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증거를 수집하는 데에는 짧게는 몇 시간으로 충분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수일이 걸리기 때문에 경찰이 증거를 수집한다는 이유로 체포된 피의자의 석방을 미루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그것은 중대한 인권침해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집 현관문을 발로 차서 손괴하였다는 사건을 받고 부인분의 진술을 청취할 때 그 전에도 남편은 술에 취하면 가족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였 경찰에 신고를 하였지만, 남편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몇 시간 후에 매번 풀려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부인은 아이들 때문에 남편의 접근금지라는 임시조치는 신청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사건이 벌어진 그때 그 순간에만 미안하다며 가족들에게 사죄를 하였는데 다시 술에 취하면 그런 폭력이 반복되어 결국 별거를 하게 되었지만, 별거를 한 후에도 술에 취하면 계속 집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린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조사를 받을 때에도 현관문을 발로 찬 것은 잘못이라면서도, 부인과 아이들과의 불화에 이혼소송까지 겹치면서 자신도 미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과거 경찰서에 가정폭력으로 입건된 기록을 보니 이번 사건까지 3번째였기에 남편에게 또다시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구속수사를 검토하겠다고 고지하고 조사를 마치고 석방을 시켰습니다.

석방을 시켰으니 불구속 수사였지만 저는 사건을 빨리 끝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당분간 제가 가지고 있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차근히 이미 수사가 끝나 검찰에 송치되어 벌금형이 떨어진 첫 번째 사건의 기록을 사본하여 사건기록에 첨부하고, 한 달 전인 바로 앞전에 발생한 두 번째 사건을 수사 중인 다른 팀 후배로부터 사건을 받아 제 사건에 병합을 하였습니다.

이어서 이미 발생한 3건의 가정폭력 사건의 범죄유형과 동기를 찬찬히 살펴봤을 때 이혼소송 중일 때, 또는 이혼을 한 후에도 남편의 폭력이 계속 있을 것이란 것은 충분히 예상이 되었고, 이를 분석한 수사보고서를 기록에 따로 달아놓았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아내분에게 별일이 없는지 전화를 해서 확인을 했는데, 부인분은 보름 후에 남편이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인분이 이사를 가는 날 뭔가 불길한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고, 부인의 이삿날 결국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습니다.

부인분은 이삿날 남편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되어 미리 이삿짐센터 사장님에게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이사를 할 집에 먼저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삿날을 어떻게 알고 남편이 집에 찾아와 이삿짐을 차량에 옮기고 있던 인부들에게 부인이 이사할 집이 알려달라고 하였고, 인부들이 알려주지 않자 그것이 시비되어 인부의 멱살을 잡고 흔든 폭행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제가 비번이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하여 인부 폭행 사건을 맡은 다른 팀 선배를 찾아가 이전 사건에 대해 대략의 설명을 하고 폭행 사건을 제 사건에 병합해 처리하겠다고 넘겨달라고 습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사건을 넘겨주시겠다고 하시면서도... 실제로 가정폭력 사건이 아닌 제3자 폭행사건으로 별건인 사건을 제 사건에 병합해 처리하겠다는 저를 조금은 의하 해 하시면서 "설마 구속영장을 치려는 건 아니지?"라고 하시기에, 저는 "아니요, 구속영장 칠 겁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남편에게 ○○일날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잡혔으니 오전에 시간에 맞춰 출석하라고 통보를 해주었더니, 그날 저녁에 바로 변호 선임서가 제출되었습니다.

며칠 후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남편은 유치장에 입감 되었지만, 제가 신청한 구속영장은 채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판사님께서 기각을 하셨고, 결국 다시 남편을 석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치장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을 한 남편은 유치장에서 나오면서 저에게 "형사님 죄송하고요, 풀어줘서 감사합니다."라고 하기에, 저는 "저한테 감사할 필요 없어요. 제가 풀어드린 게 아니고 판사님이 풀어드린 겁니다. 그리고 다시 또 이런 이 있으면 그때도 제가 담당을 하고 다시 구속영장을 신청할 겁니다. 그리고 그때는 아마 쉽게 풀려나가지 못할 겁니다."라고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날 유치장에서 석방된 이후로 남편은 가족에게 더 이상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관련성이 있는 여러 사건 병합 처리하는 것이 제 주특기이기도 하지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건을 병합한다는 것은, 그것을 단순히 업무나 일로 본다면 다른 형사들의 일을 제가 대신 처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서... 만약 여러 건의 사건을 병합하게 되면 제 업무가 몇 배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건을 병합하여 처리한다고 월급을 더 준다거나 승진을 시켜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건 병합은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과 같 한 줄기에서 퍼진 동일한 성격의 여러 사건을 수사기관에서 각각의 개별 사건이 아닌 하나의 사건처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판단하면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국민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을 수 있고, 경찰 수사의 책임성에 부합하는 수사관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 탐문수사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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