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청소기에서 죽음을 떠올린다.

by 정상가치

로봇 청소기를 돌렸다.

매일 돌리면 좋겠지.

라는 생각으로 매일 돌렸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은 일이 많다는 핑계로 이틀에 한 번 돌리고 있다.

피곤하다는 핑계는 항상 효과가 있다.

그리고 오늘이 이틀이 되는 날이다.


로봇 청소기를 돌리고 부엌에 있는 싱크대에서 손을 씻는다.

문득 발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로봇 청소기였다.


좌우로 오며가며 내 발을 노리고 있다.

뜬금없이 저게 죽음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마치 영원히 살 것 처럼 하루를 보낸다.


딸아이가 같이 놀자고 했는데, 웃는 낯으로 같이 놀지 못 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어땠을까?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애써 웃으며 같이 놀지 않았을까?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에서 조인성이 주먹을 입에 넣고 우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 장면을 모르는 분은 나보다 청춘이시다.

아무튼 그 장면보다 더 서럽게 울지 않을까?


어쩌면 내일 아침에 일어나지 못 할 수도 있다.

생각보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을 수도 있다.

애써 두려움을 감춘 채, 영원히 살 것처럼 시간을 보낸다.


로봇 청소기를 돌리면서 무슨 궁상인가 모르겠다.

그냥 로봇 청소기가 내 실내화에 탁탁 부딪히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번엔 로봇 청소기가 내 발로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평소엔 아무 신경도 쓰지 않던 움직임이 유달리 신경 쓰인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왠지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오늘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걸 보면 많이 피곤한 게 분명하다.

글을 쓰고 있는데, 딸아이가 와서 읽어달라고 한다.

이걸?

동화책도 아니고 글자만 잔뜩인 내 글을?


이미 수시간 전에 목마를 태워달라고 했는데 힘이 없다는 핑계로 거절했던 나다.

이제는 거절할 핑계도 없다.

그냥 소리 내어 읽었다.

읽으면서 이게 뭔 난리인가 생각했다.

기왕이면 긍정적으로 썼으면 좋았을텐데.


비가 와서 그런지 오늘은 내내 이런 글만 나온다.

문득 이 글이 비가 오는 날에 어울리는 해물파전 같다.

막걸리 말고 파전만 먹고 싶어지는 늦은 밤이다.


<교훈>

야식은 역류성 식도염에 안 좋다.(경험담)


<진짜 교훈>

죽음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우리, 오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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