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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섭은 효자동을 통해 평창동 쪽으로 가다가 창의문에서 북악산 뒤쪽으로 올라가 삼청동으로 내려오는 길을 열 번도 더 돌았다. 송정섭은 지금 대한민국의 상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 어느 지점이 가장 대한민국스러울까? 북한 땅은 가볼 수 없으니 지구본에서 보면 손가락 끝마디 하나도 안 되는 남한 땅 어디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곳일까? 청와대? 독도? 제주도 아래 마라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독도와 마라도는 가보지 않았지만 국회의사당 주변도 여러 번 돌았다. 남산에 올라 N-타워라는 곳에도 올라가 보았다. 예전에는 남산타워라고 했는데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다. 한번은 세종로 사거리에 일부러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우뚝 서서 광화문과 그 너머 청기와 저택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 일대에서 어떤 난리가 났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송정섭은 생각했다. 자신이 대한민국의 적대세력인 것은 맞다고. 간첩은 물론 아니다. 간첩과 접선하지도 않았으며 아무런 지령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감옥생활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송정섭은 늘 대한민국의 최후를 꿈꾸었다. 그러니 적대세력이 분명하지 않은가. 따라서 대한민국은 그동안 옳았다. 송정섭을 수십 년간 격리시킨 것이. 그런데 어쩌자고 그런 인간을 풀어준 것일까? 저들은 바보인 모양이다. 아니면 송정섭이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 것에 깜빡 속은 것인지도 모르지.
송정섭은 아무런 능력이 없다. 지식도 없다. 주변에 함께할 사람도 없다. 그러하니 대한민국을 통째로 파괴할 만한 음모는 꾸밀 수 없다. 반면에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할 수는 있다. 송정섭 혼자 힘만으로도. 그렇지만 이것도 송정섭의 생각일 뿐, 남들은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렇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민이다. 또한 그것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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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의 언덕 클레이 가(街)에 있는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들어가 있었다. 이 총영사관은 샌프란시스코 지역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주 절반에 해당하는 북부지역과 콜로라도 주, 유타 주, 와이오밍 주까지 포함한 광활한 지역을 담당해서 실질적으로는 미국 서해안 북부의 대부분을 관장한다고 볼 수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미연은 카라카스의 한국대사관이 있는 센트로 호텔의 5층 어느 룸에 들어가 낯선 사람들을 만났다. 미국 마약단속국 소속 특별요원들이었다. 영어를 모르는 미연에게 대사관 직원이 통역을 해주었다. 그 사람들은 미연에게 그동안 어디에 있었으며,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일을 했는지 물었다. 하지만 미연은 베네수엘라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며 미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미연이 계속 버티자, 모든 것을 자백하는 조건으로 특별기편으로 샌프란시스코 한국 총영사관으로 오게 된 것이다. 비자도 여권도 없이. 그것이 바로 미국의 힘이었다.
처음에 마약단속국에서는 미연을 자신들의 비밀장소로 데리고 가려 했지만, 미연이 그것도 거부하고 한국대사관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 와서도 미연은 한국에 있는 자신의 딸 선희의 생사부터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총영사관에서는 한국 정부에 의뢰해서 선희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선희는 행방불명자로 나타났다. 어느 고아원에 들어가 초등학교까지는 다녔지만 그 이후의 기록은 없다고 했다. 범죄기록을 비롯해서 취직이나 결혼, 의료보험 등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이 없었다. 그리고 미연의 부탁에 의해 송정섭에 대한 것도 조사해서 알려주었다. 우선 그 가족의 부모와 형, 그리고 누나들 모두 사망했다. 그러나 송정섭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회신이 왔다.
그러자 미연은 이번에도 버텼다. 그렇다면 자신도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다고.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