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는 생각 따라 이리저리 흐르다
고대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Pygmalion)은 여인의 조각상을 사랑했다. 현실에서는 만족할 수 없는 플라토닉 사랑을 조각상에서 구한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현실의 여성들을 불신한 탓에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프로디테를 모델로 해서 자기 자신이 직접 한 여인의 모습을 조각했다. 그러고 나서 그 여인과 함께 잠도 자고 밥도 먹고 하며 항상 자기 곁에 두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실제로는 차디찬 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시름에 빠지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본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어 실제의 여인이 되었으며, 피그말리온은 그녀에게 갈라테이아(Galatea)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결혼했다. 갈라테이아는 ‘잠자는 사랑’이라는 뜻.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난 신화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즉, 칭찬과 기대를 받으면 그만큼 성장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실제 교육현장에서도 확인되었다. 1968년 하버드 대학의 사회심리학자인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 교수가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이러한 실험을 해서 칭찬과 기대를 받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좋아진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것을 ‘로젠탈 효과’라고도 한다.
그 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가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해서 1912년 ‘피그말리온’이라는 희곡을 썼으며, 이것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그 유명한 ‘마이 페어 레이디’란다.
피그말리온(Pygmalion)을 분해해서 ‘Pygm a Lion’으로 만들어 보았다. 게다가 이 단어를 한 번 더 왜곡시켜 보았다. ‘Pygma Lion’에서 ‘g’를 뺀 것이다. 즉 ‘Pyma Lion.’ 그러고 보니 ‘Pyma’라는 낯선 단어가 나온다. ‘Pyma’는 독일 육군의 탱크(장갑차) 이름이기도 하다. PYMA IFV. 어느 자료를 살펴보았더니 독일은 이 탱크(장갑차)를 350대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독일은 2022년 기준으로 세계 국방력 순위에서 16위에 해당한단다. (또한 ‘PYMA’는 ‘파키스탄 직물협회(Pakistan Yarn Merchants Association)’를 뜻하기도 한다.)
탱크. 남자들의 로망. [아차, 남녀차별 금지. 우선 남자들 중 일부의 로망이겠고, 이에 더불어 일부 여성도 포함될 수 있음.] 그런데 미래의 전장에서 탱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울한(?) 소식이 가끔 들려온다. 탱크가 주는 무게감 못지않게 그 효용성에 대한 의문도 전혀 가볍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요즘 우러(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자폭 드론에 그 비싼 탱크가 무지막지하게 박살나는 것을 두고 탱크 무용론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한국 탱크가 유럽에서 주목받는 것을 보면 아직은 탱크만큼 육상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도 없는 것 같다.
[출처] https://blog.naver.com/rlaehdrjs749/222673900436 (PYMA IFV)
Pygma는 프랑스의 한 건축회사다. 또한 컴퓨터 무료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어도비 XD, 스케치 등과 비슷한 프로그램인데 성능은 꽤 좋은 편이라고 하며, 2022년에 어도비가 피그마를 200억 달러에 인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수 후에도 피그마는 XD에 통합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계속 개발되고 있으며, 나중에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와 연계된다고 한다. 컴퓨터 계통에는 완전 깡통인 나로서는 뭔 말인지 통 모르겠다만, 아마도 어도비가 ‘크리에이티브 마케팅 및 문서 관리 솔루션’이라고 하니 어떤 상업용 프로그램 아니면 디자인 계통의 솔루션(?)인 모양이다.
피그(돼지), 말(馬), 이온 입자. 이온은 음(陰), 즉 마이너스 전하를 띠고 있는 분자를 말한다. 미립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리고 돼지는 한의학에서 음에 속한다고 한다. 이때의 음은 차다는 뜻이다. 말(mal, 馬)은 겅중겅중 뛰어다니니 당연히 양(陽)에 속한 동물이겠고.
아, 이렇게 단어를 조각내니 엉뚱한 데로 빠지고 마는구나. 이러다가 나중에는 배가 산으로 가는 일도 생기겠다. 그런 중에도 이렇게 말장난을 하다 보니 한 가지가 떠오른다.
웬 연산군? 사실은 연산군이 지었다는 회문고시에 대한 것이다.
芳樹吐花紅過雨(방수토화홍과우)
아름다운 나무들 붉은 꽃 토해 비처럼 내리고
위의 구절은 연산군이 지은 회문고시(回文古詩)의 첫 행이다.
회문은 앞으로 읽으나 뒤에서 거꾸로 읽으나 똑같은 것을 말한다. 숫자에서 292와 같은 것들. 또는 우리말에서 ‘인천인(仁川人), 강대강(强對强), 이날이’ 등과 같은 말들. 영어에는 radar, civic, madam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이러한 식의 회문을 이용한 글이나 시가 한때 유행이 되기도 했고, 고려시대 때 명문장가 이규보는 미인원(美人怨)이라는 회문시를 지어 재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한시에서도 회문이 종종 등장하는데, 연산군 역시 자신의 처량한 처지를 한탄하면서 회문고시를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한시는 칠언절구, 즉 일곱 자 네 행으로 되어 있는데 시 전체를 완전히 거꾸로 읽어도 뜻이 동일하도록 되어 있다. 연산군은 정치역사에서는 악명으로 남아 있으나, 시류에서는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브런치 Rudolf 작가가 쓴 장편 스릴러 《인간은 인간에게》에서 인용]
회문고시(回文古詩) | 연산군(燕山君, 1476~1506)
芳樹吐花紅過雨(방수토화홍과우)
入簾飛絮白驚風(입렴비서백경풍)
黃添曉色靑舒柳(황첨효색청서류)
粉落晴天雪覆松(분락청천설복송)
아름다운 나무들 붉은 꽃 토해 비처럼 내리고
주렴에 버들개지 날고 흰 꽃은 바람에 놀라니
누른빛에 새벽 빛 어려 버들잎 푸르게 퍼지고
꽃가루 맑은 하늘 내려 눈처럼 소나무 덮었네
[이 시는 연산군이 폐위된 뒤 지은 것으로 여겨지기에 당시의 심정을 고려해서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화려한 왕궁 나올 때 피눈물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역신들 한 떼로 몰려드니 천지일월 혼비백산하여
곤룡포 이슬 맞아도 늘푸른 왕의 기개 변함없으나
부귀영화 비가 되고 흩뿌려 폐왕 발길 적시는구나
조선조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대표적인 폭군으로 그 당시는 물론이고 후세 역사에서도 가장 먼저 떠올리는 폭군 중의 폭군 연산군. 그러나 그의 문학성만은 인정해 줄 만하겠다. 하긴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문학과 예술에 천재성을 보인 이들이 모두 선인(善人)은 아니었다. 로마의 네로 황제 역시 아름다운 시를 짓고 남달리 음악을 사랑했으나 인류 역사상 가장 잔악한 폭군 중의 폭군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서양 역사야 어떻든 우리네 선조들 속에서도 연산군은 아주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연산군은 성선설과 성악설 모두에서 종종 인용되곤 하는데, 그가 과연 태어날 때부터 악인이었는지, 아니면 삶의 어느 한순간 악인으로 변모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성선설과 성악설 중간에서 양쪽을 왔다갔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 모두 그러하지 않을지.
연산군(燕山君)은 조선의 제10대 왕으로서 재위기간은 1494~1506년, 즉 12년이다. 그리고 1476년(성종 7년)에 태어나서 1506년(중종 1년)에 극적인 삶을 마감했다.
연산군의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다고 한다. 이는 강북구와 도봉구 사이라고 하며, 우이천 상류에 해당한다. 그리고 바로 그 묘역 앞에는 우람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그 이름이 ‘방학동 대감나무’라는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조선 말엽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그 나무가 궁궐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 베어지기 직전, 마을사람들이 간곡히 부탁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러한 덕에 대감나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 보호수 제1호라고 하는데, 이 나무를 조금 지나가면 연산군 재실(齋室)이 나온다. 이는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을 말한다.
연산군이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국방 면에서는 꽤 공헌을 한 것 같다. 왕위에 오르고 초기 시절 비융사(備戎司)를 설치해서 각종 병기를 만들도록 하고, 북쪽 변경지방으로 많은 백성을 이주시켜서 국방을 강화하고, 왜구가 전라남도 해남의 울돌목에 있는 녹도(鹿島)에 쳐들어오자 이를 물리치는 한편 압록강의 한 지류인 파저강(波猪江)에 처들어온 왜구를 물리쳐 국방을 강화했다고 한다. 그밖에 빈민구제에도 힘을 쓰기도 하는 한편,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부활시키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가독서라 함은 조선시대에 유능한 젊은 문신들을 선별해서 휴가를 주어 공부에만 열중하게 한 제도를 말한다.
연산군은 성종의 큰아들이며, 어머니는 윤기묘(尹起畝)의 딸 폐비 윤씨이다. 연산군은 어머니가 사사(賜死)된 뒤 1483년(성종 14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우리가 잘 아는 서거정(徐居正) 등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그 뒤 1494년 12월 성종이 서거하자 곧바로 왕위에 올라 초기에는 꽤 선정을 베푼 것 같다. 학문과 국방에도 열심이었고 나름대로는 진지했으나, 1498년과 1504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의 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신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뿐만 아니라 세조의 즉위를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김종직을 부관참시한 데 이어 여러 신하들을 처형하고 귀양보내는 등 그때부터 폭군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연산군은 문필에 능해서 재위 12년 동안 신하들에게 수많은 시를 내려주었지만, 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내려가 위리안치된 뒤 그 시들을 모조리 거두어 불태워 버렸다. 그러나 실록에 실린 시들은 없앨 수 없어서 120여 편의 시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바로 그중 하나가 위에 소개한 ‘회문고시’이다.
인류 최대의 폭군 중 한 사람인 로마의 네로 역시 예술적 문학적 재능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는 음악과 연극, 문학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한편, 당시 유명한 시인인 루카누스(Marcus Annaeus Lucanus)를 재무관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네로의 눈에 벗어나 내쫓기고 말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