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별명은 황소다. 이름은 황소녀.
소녀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지방 예선을 통과했으나, 부모님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그 이상은 포기하고 말았다. 부모 몰래 예선에 나갔는데 집에서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소녀는 그리 미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늘씬한 팔등신에 콧날이랑 눈썹 등이 시원시원하게 생기고 얼굴 전체는 활달한 느낌을 주어 마치 서양 여자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키도 큰 편에 속해서 주변에서는 모두가 미스코리아감이라고 했었다. 다만 입술이 약간 찌그러진 것이 흠이어서 남들이 성형을 좀 하라고 권했었는데 미스코리아에 나가기 위해 거부했었다. 그런데도 다행히 예선에서는 진선미 중 미에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밝힌 대로 부모님, 그중에서도 특히 어머니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자기 딸이 남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심사 대상이 되는 것이 싫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아버지는 소극적이긴 하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안의 경제권을 어머니가 쥐고 있었던 탓에 결국 어머니의 뜻대로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20여 년이 흐른 뒤, 소녀의 무남독녀 서이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였다.
서이는 늘 패싸움과 좀도둑질, 손찌검, 삥뜯기 등으로 사고를 치고 다녀서 그거 죄다 돈으로 해결하느라 소녀는 항상 쪼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보다 훨씬 전에 집안이 갑자기 몰락한 뒤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그에 대한 충격으로 어머니는 크게 낙담해서 폐인처럼 살다시피 하다가 어느 날 중풍까지 와서 반신불수에다 뇌까지 손상을 입어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남편은 딴살림 차려서 아예 나가 버렸고.
소녀는 젊은 시절에는 미인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입술이 약간 비뚤어진 것이 늘 마음에 걸려 그것이 스트레스를 넘어 나중에는 열등감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었다. 어머니의 치료비가 만만치 않은데다 딸이 종종 저지르는 사고의 뒤치다꺼리로 인해 경제적으로 늘 힘든 상태였다. 게다가 어렸을 때 넉넉했었던 집안 환경으로 인해 딸은 낭비벽까지 심했던 탓에 늘 돈에 쪼들리며 살았다. 더군다나 딸은 경제관념이 희박해서 남의 돈을 자기 돈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힘없는 여자애들 괴롭혀 노트북이나 핸드폰도 빼앗고 가끔은 커터 날로 협박도 하면서 낭비벽을 해결하고 그랬던 것이다. 게다가 한번은 어떤 못된 늙은 의사와 사귀게 되면서 낙태도 몇 번 한 것을 넘어 가짜 진단서를 만들어 보험금을 타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짓도 오래가지 못하고 들통이 났는데, 다행히 의사가 딸을 잘 막아주어 형사처벌은 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을 겪던 중 소녀는 권투도장에 나가게 되었다. 물론 시합에 나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운동 저런 운동을 조금씩 해보는 도중에 우연히 권투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그저 운동 삼아 재미로 해보고 싶어서 기웃거리다가.
그리고 몇 개월 뒤 스파링을 해보자는 권유에 링에 올라가 은퇴한 늙은 남자 복서와 툭탁툭탁 펀치를 치고받고 했다. 물론 아주 살살. 그렇게 해서 반은 호기심, 반은 재미로 여러 번 링에 오르게 되었다.
이것이 소문나자 도장에 여러 사람이 구경을 오게 되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일본인 남자를 소개받았다. 그 사람은 일본의 종합격투기대회인 Rizin FF(Rizin Fighting Federation, 리진 격투기연맹)과 연결된다고 했다. 더군다나 이번에 한국에 온 목적 중 하나는 일본의 격투기 이벤트에 어울릴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소녀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통역을 해주기는 했지만 어딘지 자신과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도장에 갔더니 그 일본인이 소녀에게 큰 선물을 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궁금증 반, 은근한 걱정 반으로 그 사람을 만나 보니 일본에 가서 돈 좀 벌어 보지 않겠느냐고 한다. 권투로 말이다.
그 내용인즉 이러하다. 일본에는 스포츠 마케팅이 아주 활발하다. 그중에서도 요즘 뜨는 새로운 것으로 40대 이상 중년여성들이 건강과 수입을 병행하는 스포츠가 있는데 특히 권투가 인기라고 한다. 게다가 미인이면 인기가 급상승해서 수입이 더욱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를 좀더 자세히 알아보면…….
일본에 비공식 여성 프로권투가 있는데, 일종의 지하조직처럼 되어 있어서 여러 소속사에서 선수들을 내보내고 관중들이 베팅을 한다. 그런데 이것의 규모가 상당히 커서 꽤 큰돈이 되는 사업인 모양이다. 한마디로 지하도박과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
소소한 수입만으로는 낭비벽 심하고 툭하면 사고치고 다니는 딸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던 소녀에게는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머뭇거리는 소녀에게 통역이 다시 말을 한다.
“일단 일본에 가서 현지상황을 살펴본 뒤에 결정해도 된답니다. 여행 비용은 모두 이 사람들이 내준다네요.”
이렇게 해서 소녀는 일본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아, 두 번째 발이지. 그때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무작정 일본에 갔었으니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에 발이 묶여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일본을 포함해서 동남아 등지로 보름간 다녀왔으니까.
아무튼 일본에 간 첫날 소녀는 그 경기에 가서 관람을 했다. 중간에서 안내해 주는 사람이 베팅하는 법을 알려주어 약간의 돈을 걸었는데, 그것이 맞아떨어져 ‘약간’ 재미를 보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오전에는 여기저기 관광을 하고 오후에 어떤 매니저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는 간단한 체력 테스트를 하더니 다른 일본인과 뭐라고 말을 주고받은 뒤 미소를 크게 지으며 OK 소리를 마구 날린다. 얼굴에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빛이 돌았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소녀에게 곧바로 링에 오르라고 하는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올라야 할 것이라면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상대 역시 처음 링에 오르는 사람이라며, 체구도 아주 작고 나이도 꽤 많아서 스파링 삼아 올라가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얼떨결에 링에 올랐다. 약간은 복잡한 절차를 밟은 후에.
그 뒤에 나중에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서 공이 울리고 링 한가운데로 나가게 되었다. 상대방은 정말로 소녀보다 열 살은 많은 듯한데다 아주 못생긴 여자였다. 키도 좀 작은 편이었다. 시합은 3분 3회전.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소녀가 주먹을 몇 번 휘두르다 우연히 맞은 것 같았는데 상대방 여자가 엉덩방아를 찧고 뒤로 나가떨어진 것이었다.
그 후로도 그 여자와 몇 번 뒤엉키며 주먹을 주고받았으나 생각보다 여자의 주먹은 아프지 않았다. 아마 몸통에 몇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소녀가 주먹을 크게 휘두른 것에 상대방의 턱이 명중하고 여자는 또다시 나가떨어졌다.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그러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함성도 들리고 박수도 치고 하는 소리는 들렸는데, 그 모든 것이 소녀의 귀에는 그저 웅웅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날 밤 호텔로 돌아가는데 매니저라는 사람이 와서 약간의 돈을 내밀었다. 승리 수당을 포함한 무슨무슨 수당이라고 한다. 원래는 곧바로 지급하지 않지만, 첫 경기라서 맛만 보라며 매니저가 먼저 일부만 주는 것이라고 했다.
새벽이 다 되도록 잠을 자지 못한 채 소녀는 오만 가지 생각에 휩싸였다. 그리고 내린 결론…….
일단 자신이 받기로 되어 있다는 그 금액은 딸아이가 며칠 전 저지른 일의 형사합의금 일부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자 창문 커튼을 대충 내려서 그랬는지 한 귀퉁이에서 어렴풋한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때 통역을 통해 들은 말이 문득 귓가에 맴도는 것이었다.
며칠 뒤에는 4대4 경기를 할 것이라는 말. 머릿속에 남아 있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연결해 보면 그 뜻은 이러했다. 보통의 정사각형 링과 달리 좁고 기다란 링에 양쪽 팀에서 각각 네 명씩 올라가 경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 사람씩 나와서 시합을 하다가 KO로 지는 선수는 탈락하고 그 다음 사람이 계속해서 나와 경기를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선수가 많이 남아 있는 쪽이 이기는 경기다. 이러한 것을 ‘thermopylae teamcombat’이라고 한다. 이는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가 스파르타군을 대패시킨 전투에서 따온 것으로, 당시 페르시아 군대가 테르모필레로 불리는 좁은 산길을 지날 때 페르시아의 공격을 받아 크게 패한 것에서 나온 말이다. 이 경기는 좁고 긴 링 위에서 싸우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이러한 것들이 떠오르는 순간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몸을 가눌 수도 없을 정도로 극심한 피로가. 소녀는 그대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