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죄

peccatum romance | péché de romance

by Rudolf

낭만. 낭만은 무엇일까? Roman. 로망. 가슴 설레는 것일까? 보기에만 그럴듯하고 실상은 괴로운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낭만은 허상일까? 그리고 또 하나, 낭만은……, 낭만은 누구의 것인가?

우선 낭만의 사전적 의미부터 알아본다.


낭만(浪漫) | 감정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적 상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서 인용)

낭만의 죄 | (라틴) peccatum romance, (프) péché de romance


위의 정의에 낭만적인 분위기, 즉 감미로운 상태를 더하면 일단 낭만에 대한 정의는 마무리되는 것 같다. 그런데 어딘지 좀 허전한 것 같지 않은가……? 하긴 사전은 사전일 뿐이다. 인간의 감정이나 뭐 그런 것은 고려할 필요 없이 그저 단어의 의미만 전달하면 사전의 임무는 끝나는 것일 테니.

그렇다면 낭만에 대해 좀더 알아보기로 한다. 영어로 로맨티시즘(romanticism). 흔히들 프랑스어인 로망(roman)으로 불리는 것. 어딘지 감상적이고 달콤하기까지 한 어떤 감정적인 상태. 그리고 이러한 로맨티시즘에는 이성과 감성이 복합되고, 현실적이면서도 상상 속에서 꿈꿀 수 있는 감미로운 분위기나, 또는 예술과 관련이 있을 듯하면서도 약간은 몽상적인 느낌까지 드는 것 등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이성과 지성까지 더해진다면 완성도가 더 높아질 것 같은 생각. 그러니까 낭만은 어딘지 모르게 무엇인가에 스스로 몰입하면서도 감정이 뭉클해지며 철학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져 글자 그대로 낭만스러워지는 것일 수 있다.

아무튼 참 어렵다. 이 ‘낭만’이라는 녀석 말이다. 사전적인 의미만으로는 도저히 낭만에 대해 설명할 수 없겠지만, 우리 모두 그 분위기는 알지 않을까? 봄비 맞으며 오솔길을 걸어갈 때도 낭만을 즐길 수 있으며, 도서관에서 학문에 파묻혀 있는 경우에도 낭만은 동반될 수 있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정을 쏟는 것이니까. 그러고 보니 낭만은 우리의 삶에 전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 같다. 심지어 현실에 힘겨워 공상적 상상을 할 때조차도 낭만은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자신의 감정을, 그리고 이성을 집중하며 그것에서 내적인 희열을 느낄 때, 그것이 바로 낭만이 아닐까.



로맨티시스트(romanticist)


낭만을 추구하는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멀든 가깝든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현실을 헤쳐나간다. 꿈을 이루려는 것이다. 그 꿈은 멀리 있을 수도 있고, 가까운 시일 내에 성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은 그러한 것들은 괘념치 않는다. 오직 미래를 위해 도전하는 것이다. 물론 그 보상이 생각보다 적거나 아주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은 설령 보상이 없다 해도 자신이 지나온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과정 속에서 낭만과 동행했으니까.

낭만은 우리의 삶에 동기를 부여한다. 사랑, 예술, 학문, 여행, 직업, 스포츠 등등 모든 면에서 낭만은 열정을 다하게 해준다. 그래서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삶이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 이외의 사람들에게서도 낭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낭만’에게 죄가 있는가?


이러한 낭만에게도 죄가 있는가? 좋다. 만일 그러하다면 ‘낭만의 죄’는 무엇일까? 낭만을 즐긴 죄? 혹 낭만을 지나치게 탐욕한 죄? 아니면 반대로 낭만의 꿈을 접거나, 아예 도전조차 해보지 않은 죄?

우선 낭만을 탐욕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사랑이나 학문이나 예술, 스포츠 또는 이상(理想)에 대한 추구가 지나치게 과도한 사람들. 이들은 사실 현실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탐욕은 종종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범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불협화음을 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감정적, 이성적, 신체적 손실을 가져오게 한다. 그리하여 결국 사회적 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영어로는 ‘addiction’ 또는 ‘disorder’라고 한다. 즉 중독이나 무질서, 혼란, 불협화음 등의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이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나아가 사회에까지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낭만의 죄’라고 하지는 않는다. 낭만의 죄는 정당한(?) 낭만이 오해나 곡해 또는 핍박(?)을 받아 불이익(?)이 생길 때,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받거나 손해, 오해가 발생했을 때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이밖에 낭만의 죄는 자기 스스로가 비이성적인 판단으로 인해 벌인 잘못을 회피할 목적으로 이용되는 거짓된 핑계가 되기도 한다. 마치 스스로가 희생양이 된 듯이. 이는 곧 균형감각을 상실한 낭만을 뜻하는 것이겠다.

그러한 한편으로는 억울한 경우에도 ‘낭만의 죄’를 언급할 수 있다. 정당한 낭만이 억압받거나 외면당할 때, 또는 탈취당할 때 그 상황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도한 로맨티시즘으로 인한 부작용도 우리 주변에서는 종종 나타나곤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현실과 낭만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를 말한다.

이렇듯 로맨티시즘이 지나쳐 본인은 물론 남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경우도 ‘낭만의 죄’라는 말로 포장할 때가 있다. 현해탄에서 동반자살한 김우진과 윤심덕의 경우는 어떠한가? 당시 윤심덕은 도쿄대학 음대에 다니고 있었고, 강우진은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희곡 여러 편을 발표하여 두 사람 모두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둘 다 한창 청춘인 29세에 일본에서 조선으로 가기 위해 부관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던 중 한밤중 바다에 투신하여 동반자살했다. 이때가 1926년 8월 4일이었다.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은 부산과 일본 규슈의 항구 시모노세키(下關)를 오가는 여객선.]

하지만 두 사람의 시신을 찾지 못해 그 뒤로 숱한 의문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결국 당시 모든 이들은 두 사람이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김우진은 집안의 강요로 이미 결혼한 상태였으며, 그 이후 두 사람의 투신을 모방한 비극이 종종 발생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두 사람의 정사(情死)는 젊은이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당시 윤심덕이 불러서 레코드에 취입한 ‘사의 찬미’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정상적인 로맨티시즘이나 ‘낭만의 죄’로 표현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낭만에게 죄를 지은 사건이라고 해야 할 테지. 이는 빗나간 사랑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정상적인 로맨티시즘을 망각한 극단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왜곡된 로맨티시즘


따라서 ‘낭만의 죄’를 부정적으로 사용할 때는 위와 같이 왜곡된 로맨티시즘, 즉 빗나간 낭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낭만의 죄’라는 말은 순수한 로맨티시즘이 아니라 왜곡되거나 과도한, 그리고 현실성이 결여된 채 로맨틱한 행위 자체에만 집착해서 벌어진 사단을 표현할 때도 사용된다는 말이다.

이에 더해 ‘낭만의 죄’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나타난 아릿한 로맨틱한 감정이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때, 이를 극화시켜 표현하는 말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로맨스가 가정이나 주변으로부터 부당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때, 또는 스스로 과도한 로맨티시즘에 몰입하여 현실도피적이거나 지나친 이상주의에 빠져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방황에 빠질 때 자기 스스로에게 내리는 ‘로맨틱한’ 족쇄 같은 것 말이다.

이와 같이 원인이야 어떻든 과몰입된 로맨티시즘은 결국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렇듯 자기 스스로가 ‘낭만의 죄’라는 굴레에 얽매였다고 판단하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경우라면 이는 책임회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따라서 로맨티시즘과 과도한 로맨틱한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누가 로맨스 앞에서 늘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으랴. 때로는 과몰입된 로맨스도 우리의 ‘정상적’인 로맨스가 아니더냐. 이는 로맨스에 빠져보지 않은 분들은 평생 이해도, 적응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달콤쌉싸름한, 그 뭐랄까, 그래 바로 그 ‘거시기한’ 감정이 아닐는지.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낭만의 죄’ 역시 다른 모든 죄와 동일하게 ‘죄’라는 사실이다. 죄는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낭만의 죄는 어떠한 벌을 받아야 하는가? 잠 못 이루는 벌? 마음이 뜨거워지는 벌? 그대의 창문 아래로 달려가 ‘아리아’라도 한 곡 부르고 싶어지는 벌? 분홍색 편지지에 깨알 같은 연정을 적은 뒤 종이비행기로 접어 그대의 집 창문으로 날려보내는 벌?

아니면 그대의 어린 동생을 살살 불러내어 초콜릿 한 줌 사주고는 분홍색 마음우표를 붙인 연서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는 벌? 뭐 이런 것들을 벌써 죄다 써먹었어도 아무 효험이 없어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골목 저 끝에 느닷없이 나타난 그녀의 그림자에 감격해서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털썩 무릎 꿇게 되는 벌?

(이런 경험이 전혀 없는 아주 극히 일부의 그대들은 우주의 기운이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항상 감사하시길. ^^) [끝]


(혹 '사족'도 읽고 싶으신 분들은 이 글을 계속 아래로 내리시면. . . 숲속의 빈터에 마침맞은 작은 독서 테이블이 나옵니다.)



무대 뒤의 장면들


사족 (1) | 탈옥한 낭만


비 오는 골목길. 세 사람이 우산도 쓰지 않고 말없이 걸어간다. 그들의 머리와 어깨 위로는 이슬비가 조용히 떨어지고 있다. 이들은 화가, 몽상가 그리고 죄수였다. 탈옥한 죄수. 이 죄수는 ‘낭만의 죄’를 범했기에 화가이자 몽상가이며 동시에 간수인 두 사람에게 이끌려 감옥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탈옥한 뒤 붙잡힌 죄수. 그리고 탈옥범을 붙잡은 두 사람의 간수.

죄명은 다시 한번 밝히지만 ‘낭만의 죄’. 그리고 양옆의 두 간수도 다시 한번 확인하면 화가와 몽상가다. 그렇다면 죄수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감옥에 갇혔으며, 또 왜 탈옥했고, 그리고 어떻게 다시 붙잡혔을까? 그리고 간수는 왜 하필 화가와 몽상가일까? 그리고 또 하나 궁금한 것, 사실은 이것이 이 글의 키포인트일 수도 있는데, 그 감옥이라는 곳은 어디일까?

좋다.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하자. 화가와 몽상가는 늘 낭만 속에 갇혀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도둑이 들어와 두 사람에게서 낭만을 훔쳐간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빼앗긴 낭만을 되찾기 위해 두 간수는 눈에 불을 켜고 그 범인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잡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죄수는 교묘한 수단으로 탈옥했다. 그러자 두 간수는 필사적으로 수색을 해서 또다시 죄수를 붙잡았다. 바로 이것이 위에서 묘사한 비 오는 밤의 장면이다.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소설쟁이들은 그 뒷장면을 그럴듯하게 써내려갈 것이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사족 (2) | 떠나는 님, 낭만


계속 이어지는 의문부호들. 봄바람 부는 언덕,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아 먼 논밭 지나 아스라이 보이는 철도 길로 흰 연기를 뿜고 달리는 기차……. 그곳에 누군가가 타고 있어서 나에게 달려오고 있다면……. 아, 그 사람, 바로 그 사람, 그러나 나에게 아픔만 주고 떠나는 사람. 그러고 보니 그 기차는 나에게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아픈 가슴을 남겨놓고 떠나는 기차였단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홀로 남겨진 것이다. 진달래 무성한 언덕 위에. 그 사람은 저렇게 떠나고 있는데…….

내가 한없이 기다렸던 그 사람. 그는 그렇게 떠나간다.

봄비 맞으며 함께 걸었던 그 사람, 여름꽃들 사이로 숨바꼭질했었던 그 추억, 가을 낙엽 밟으며 시를 함께 읊었던 그 시간들, 펄펄 날리는 흰 눈 맞으며 깔깔댔었던 그 아리한 장면들…….

그 사람은 지금 떠나간다. 저 벌판 너머로, 산등성이 아래로 난 길고 긴 기찻길을 따라서. 그리하여 나는 허망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나무란다. 왜 잡지 못했을까? 정거장 역사 안에서 낡은 트렁크를 움켜쥐고 입술을 악물고 개찰구로 들어가는 그 사람을 왜 불러세우지 못했을까? 저 문을 지나면 그 사람은 떠나가는데 왜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왜 행여 돌아볼까 기대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서 나오고 말았을까? 왜 미리 써서 준비해 놓았던 편지, 밤을 새워 깨알같이 쓴, 후회한다고,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본심이 아니었다고 길게 길게 써놓은 그 편지지를 왜 전해 주지 못했을까?

그리고 그이는 왜 그렇게 깊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그냥 돌아서서 개찰구 속으로 사라진 것일까? 그때 그 눈망울은 틀림없이 망설임이었는데 왜, 왜, 왜 그냥 돌아서고 만 것일까? 내가 잡아주기를 바란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잘못한 것일까? 아, 왜, 왜, 왜…….

잠깐,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떠나는 이가 누구인지 밝힐 필요가 있겠다. 그는 바로 ‘낭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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