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도종환은 신경림 시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신경림 시인은 시를 정확히 읽어내는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를 정확하게 읽어낼 뿐만 아니라 시인들에 대해서도 참 소상하게 알고 계신다. 한 시인의 시에서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할 것과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자상하게 짚어주시며, 시인의 삶에서 시가 어떻게 우러나는가를 재미있게 알려주신다. 시의 문학적 토대가 되었던 곳을 직접 찾아가 시인을 만나가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노라면 공연히 즐거워진다. 그 즐거움 속에는 정서적 기쁨과 지적 충만함이 들어 있다. 신경림 시인은 이미 우리 문학의 길이다. 그런 분과 함께 시와 문학의 바른 길을 찾아가는 이 길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뒤표지에서 인용)
다음은 신경림 시인이 이 책의 서두에서 밝힌 글이다
"어떤 면에서 시의 재미는 삶이나 사물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해석하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시인이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들어, 그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존재라는 뜻도 된다.
"그러나 시인의 눈이나 귀가 너무 깊은 데 숨어 있어 독자들이 미처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시는 그냥 독자 곁을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
아래는 이 책에 실린 시인들과, 신경림 시인이 그분들의 시 정신을 한 구절로 표현한 서사이며, 그 문구 자체가 목차가 되어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정지용 | 향수와 다알리아의 이미지
조지훈 | 멋과 지조
신적정 | 목가적인 참여시인
김종삼 | 내용 없는 아름다움
신동엽 | 민족적 순수와 반외세
박용래 | 눈물과 결곡의 시인
박봉우 | 조국이 곧 나의 직업
임 화 | 역사의 격랑 속에 침몰한 혁명시인
권태응 | 헐벗은 아이들의 가슴에 별을 심은 시인
이육사 | 변형된 자화상 - 초인
오장환 | 낭만과 격정의 민중시인
김영랑 | 쓸쓸함과 애달픔
이한직 | 우수와 허무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
박인환 |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
한용운 | 사랑의 시인, 민족의 시인, 구원의 시인
백 석 | 눈을 맞고 선 곧고 정한 갈매나무
신동문 | 삶을 통한 시의 완성
유치환 | 남성적 그리움과 호방한 울부짖음
박목월 | 자연, 생활, 향토
김수영 | 앞을 향하여 달리는 살아 있는 정신
천상병 |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마음과 눈
김지하 | 치열한 삶, 진정한 사고, 깊은 사색의 시인
정희성 | 낮고 작은 목소리의 높고 큰 울림
김종길 | 유가적 전통의 아름다움
김준태 | 빛고을에 빛을 더하는 새로운 서정
이상국 | 소의 시에서 탈속(脫俗)의 시로
양채영 | 풀꽃과 노새의 시인
도종환 |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
민 영 | 저자에 뒹구는 구도의 시인
조태일 | 크고도 다감한 시, 남성적이면서 섬세한
강은교 | 허무와 신비의 감수성의 시인
황명걸 | 실험과 참여를 넘나든 시인
이선관 | 시를 가지고 세상의 불구를 바로잡는 시인
고 은 | 끝없이 나아가고 끊임없이 부딪치는 시인
김규동 | 가지 못하는 고향을 그리는 간절한 통일 염원의 노래
김명수 | 맑고 투명하고 깨끗하고 슬픈 시인
이성부 | 산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시인
조오현 | 가장 승려답지 않은 가장 승려다운 시인
조향미 | 작은 것에서 큰 아름다움을 보는
서정춘 | 균열이 심한 물사발 혹은 마디 굵은 대 같은
이해인 | 진실하고 소박한 믿음의 시인
정호승 | 눈물과 사랑과 순결의 시인
김용택 | 섬진강의 나무와 풀 같은 시인
안도현 |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의 시인
이 시인들에 대해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풀숲 사이로 난 작은 들판 길을 거닐며 시 구절들을 풀어주듯 써내려간, 시보다 더 시적인 산문의 글들. 이렇게 해서 산등성이 넘고 뭉게구름 뜬 들판 너머로 책과 시와 시인들이 함께 거니는 향기로운 산책……. 이렇듯 곱고 고운 시인들과 함께하는 679쪽의 두툼한 책이 바로 이 시평서이다. 여기에 옛 추억 물씬 풍겨나는 낡은 흑백의 사진들…….
여기 실린 45분의 시인들 중 많은 분이 작고했지만, 아직 이 땅에 남아서 시인의 마음을 세상에 전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분들 모두 이 책 속에서는 생생하게 자신들의 생명을 시어로 전해 준다. 이 책에 실린 수백 편의 시는 또한 얼마나 현실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지. 시대를, 사상을, 생명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심을 꾹꾹 눌러 큼직한 자배기에 듬뿍듬뿍 담아주는 그분들. 그 시인들이 있기에 우리네 장삼이사들의 마음은 풍성해진다.
그리고 그분들의 시심을 한 권의 책에 담아 세상에 전해 준 신경림 시인은, 이 책에 의하면 1935년 충주에서 출생했으며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1936년으로 나온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었고,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고 한다.
현대에는 타인의 시를 함부로 옮길 수 없어서 그분의 시를 이곳에 싣지는 못하지만 시집 몇몇 권의 제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농무》, 《새재》, 《달넘세》, 《남한강》, 《가난한 사랑노래》,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등이다.
맞다. 시는, 그리고 시인은 마술사와 같다고 생각한다. 소설이나 산문에 비해 턱없이 짧은 글 행간으로 그러나 몇 권의 대하소설 못지않은 이야기를 전해 주는 것이다. 어떤 때는 가슴 뭉클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마음속에서 불덩이가 일게 하는가 하면, 우리네 마음이 요동치거나 침잠하거나 서글프거나 환희할 때, 시는 그리고 시인은 그 각각의 마음을 모두 애틋하면서도 아련한 시심으로 채워주고 다독여 주며 또한 뜨거운 마음으로 녹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곳에다 나는 슬쩍 내 시를 끼워넣고 또다시 슬며시 사라지련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현실에서 도피하며 살아왔기에 인류 중 아무라도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내 이름 석 자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그렇다고 현실을 완전히 차단하지도 못하여 익명의 존재이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삶에 대한 존속 본능 탓에 이렇게 글을 써나가는 그림자 존재이기에…….
[끝]